김일권 (야구인)
야구인, 스포츠인, 프로야구 선수, 코치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01:10
김일권은 대한민국 프로 야구의 전설적인 '대도'이자 KBO 리그 원년 멤버입니다. 5번의 도루왕과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며 해태 타이거즈와 태평양 돌핀스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습니다. 개인주의적인 성향과 팀 내 갈등으로 여러 팀을 옮겼지만, 한국 야구사에 그의 이름은 최고의 도루왕으로 남아있습니다.
1956
[전설의 대도, 김일권의 탄생]
전라북도 군산시 둔율동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야구에 대한 꿈을 키웠습니다.
김일권은 전북 군산시 둔율동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직업은 교육 행정직 공무원으로, 겨우 가난을 면할 수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그는 야구에 대한 열정을 키워나갔습니다.
1966
[야구 인생의 시작]
군산 남초등학교 4학년 때 특별 활동으로 야구를 시작하며 투수와 3루수를 겸했습니다. 이때부터 영호남 대회 2연패를 달성하는 등 뛰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군산 남초등학교 4학년 때 특별 활동을 통해 야구를 시작하여 투수와 3루수를 겸했습니다. 이때부터 영호남 대회 2연패를 하는 등 운동장을 누볐습니다. 군산 남초등학교 야구부는 군산 시내 4개 초등학교 중 가장 강팀으로 성장했습니다.
1968
[군산남중학교 특기생 입학]
군산 남초등학교 야구부 선수들과 함께 1968년 창단된 군산남중학교에 특기생으로 입학했습니다. 이후 군산상고로 진학하며 엘리트 야구의 길을 걸었습니다.
김일권, 송상복, 양종수, 조양연, 김기철 등 11명의 선수가 당시 전북 야구협회 이용일 회장과 군산 남중·상고 김병문 교장의 눈에 띄어 1968년 창단한 군산남중학교에 특기생으로 입학했습니다. 그중 김일권, 송상복, 양종수, 조양연 등은 3년 후 나란히 군산상업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1981
[월드 게임 야구 은메달 획득]
1981년 미국 샌타클래라에서 열린 월드 게임 야구 종목에 대한민국 대표팀으로 출전하여 은메달을 획득하며 국제 무대에서 활약했습니다.
1981년 샌타클래라에서 열린 월드 게임 남자 야구 단체전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일원으로 출전하여 은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이는 그가 프로 입단 전 국제 무대에서 거둔 중요한 성과였습니다.
1982
[KBO 리그 해태 타이거즈 입단 및 초대 도루왕 등극]
한국 프로 야구 원년인 1982년에 해태 타이거즈의 프로 원년 멤버로 입단하여 첫 시즌부터 53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초대 도루왕에 등극했습니다. 이는 그의 화려한 프로 경력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1982년, 한국 프로 야구 원년 해태 타이거즈의 창단 멤버로 프로에 입단했습니다. 그 해 75경기에 출전하여 53개의 도루를 성공시키며 KBO 리그 최초의 도루왕 타이틀을 차지했습니다. 이 기록은 김일권이 '대도'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1983
[KBO 리그 최초 100도루 달성 및 2년 연속 도루왕]
프로 데뷔 2년차인 1983년 9월 26일, 인천에서 열린 삼미 슈퍼스타즈와의 경기에서 한국 프로 야구 최초로 통산 100도루를 달성하며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그 해 두 번째 도루왕과 좌익수 부문 베스트 10에 선정되었습니다.
1983년 9월 26일, 인천에서 삼미 슈퍼스타즈를 상대로 한국 프로 야구 통산 100도루를 달성하는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이 해에도 48개의 도루로 도루왕 타이틀을 지켜냈고, 좌익수 부문 베스트 10에 선정되며 리그 최고의 외야수로 인정받았습니다.
1984
[팀 내 갈등 시작: '불고기 화형식' 사건 논란]
1984년 경향신문 기사를 통해 '불고기 화형식' 사건과 조창수 코치와의 충돌 등 개인주의적이고 팀의 단합을 저해하는 행동으로 인해 해태 구단 내에서 '애물단지'로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김일권은 이순철, 이종범 이전 타이거즈의 초대 도루왕 겸 부동의 1번타자로 80년대 스타였으나 소위 '불고기 화형식' 뿐 아니라 조창수 전 코치와 충돌사고를 빚는 등 개인주의적인 것 외에도 팀 내부의 단합을 저해하는 스타일이라 해태 측으로부터 애물단지가 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 1984년 4월 16일자 경향신문 기사를 통해 보도되었습니다. 이 사건들은 그의 선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1986
[KBO 리그 통산 200도루 달성]
광주에서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통산 200도루를 달성하며 KBO 리그에서 두 번째로 200도루 고지를 밟은 선수가 되었습니다. 이는 그의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1986년 8월 21일, 광주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통산 200도루를 달성했습니다. 이는 406경기 만에 달성한 기록으로, 당시 29세 11개월 1일의 나이였습니다.
1987
[태평양 돌핀스로 현금 트레이드]
해태 타이거즈에서 '애물단지'로 여겨진 끝에 태평양 돌핀스로 현금 트레이드되었습니다. 이는 그의 커리어에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팀 내부의 단합을 저해하는 스타일로 인해 해태 타이거즈로부터 애물단지가 되었고, 1987년 11월 19일 태평양 돌핀스로 현금 트레이드되었습니다. 이는 그가 새로운 팀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는 계기가 됩니다.
1988
[태평양 이적 후 첫 3할 타율 기록]
태평양 돌핀스 이적 첫 해에 데뷔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3할 타율을 기록하며 타격에서도 빛을 발했습니다. 이 해 그는 0.301의 타율을 기록했습니다.
태평양 돌핀스 이적 첫 해인 1988년에 89경기에 출전하여 0.301의 타율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그의 프로 경력 중 처음이자 마지막 3할 타율 기록으로, 새로운 팀에서 성공적으로 적응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1989
[KBO 리그 최초 300도루 달성 및 골든 글러브 수상]
인천에서 해태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통산 300도루를 달성하며 KBO 리그 통산 최다 도루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이와 함께 외야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고 62개의 도루로 도루왕에 등극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습니다.
1989년 9월 7일, 인천에서 해태 타이거즈를 상대로 한국 프로 야구 통산 300도루를 달성하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이 해 113경기에 출전하여 62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개인 통산 네 번째 도루왕을 차지했으며, 외야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며 제2의 전성기를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
1990
[개인 통산 5번째 도루왕 달성]
이 해에도 48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2년 연속이자 개인 통산 5번째 도루왕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이는 그의 '대도'로서의 면모를 다시 한번 각인시키는 기록이었습니다.
1990년에도 태평양 돌핀스 소속으로 98경기에 출전하여 48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도루왕 타이틀을 지켜냈습니다. 이로써 그는 개인 통산 5번째 도루왕에 오르며 KBO 리그 최다 도루왕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이 해 12월 16일 태평양에서 자유계약선수로 풀리게 됩니다.
1991
[LG 트윈스 입단 및 현역 은퇴]
태평양에서 풀려난 후 잠시 소속팀을 찾지 못하다가 1월 9일 LG 트윈스에 입단했습니다. 그러나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그 해를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하게 되었습니다.
1990년 시즌 후 태평양 돌핀스에서 자유계약선수로 풀린 뒤 한동안 소속팀을 찾지 못했습니다. 1991년 1월 9일 LG 트윈스에서 둥지를 틀었으나, 58경기에 출전하여 0.151의 타율과 8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한 채 결국 그 해를 끝으로 현역 선수 생활을 마감했습니다.
1993
[쌍방울 레이더스 주루코치 부임]
은퇴 후 한동안 현장을 떠났다가 한동화 감독의 부름을 받아 고향 팀인 쌍방울 레이더스의 주루코치를 맡으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991년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뒤 한동안 야구 현장을 떠났습니다. 1993년 시즌 후 한동화 감독이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에 부임하자 고향 팀인 쌍방울의 주루코치를 맡아 지도자로서 현장에 돌아왔습니다. 이는 11월 12일자 문화일보 기사를 통해 알려졌습니다.
1995
[해태 타이거즈 주루코치 이적]
쌍방울 레이더스 코치직을 마친 후 프로 첫 팀이었던 해태 타이거즈의 주루코치로 이적하며 다시 친정팀으로 돌아왔습니다.
1995년 시즌 후 김성근 감독이 쌍방울에 부임하면서 팀을 떠났고, 프로 첫 팀인 해태 타이거즈 주루코치로 이적했습니다. 이는 10월 19일자 연합뉴스 기사를 통해 보도되었습니다.
1997
[현대 유니콘스 주루코치 이적]
해태 타이거즈 코치직을 마치고 LG 트윈스 시절 팀 동료였던 김재박 감독의 부름을 받아 현대 유니콘스 주루코치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1997년 시즌 후 프로 마지막 팀이었던 LG 트윈스 시절 팀 동료인 김재박 감독의 부름을 받아 현대 유니콘스 주루코치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는 12월 19일자 경인일보 기사를 통해 알려졌습니다.
1998
[현대 유니콘스 코치직 사퇴]
현대 유니콘스에서 김재박 감독과의 관계 악화로 1년 만에 코치직에서 물러나 또다시 현장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현대 유니콘스 주루코치로 부임했지만, 김재박 감독과 사이가 안 좋아졌는지 결국 1년 만에 물러나 또다시 야구 현장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이는 그의 지도자 경력에 있어 또 다른 난관이었습니다.
2002
[삼성 라이온즈 2군 주루코치 영입]
주루플레이와 기동력 강화를 위해 삼성 라이온즈 2군 주루코치로 영입되며 다시 프로야구계로 복귀했습니다.
한동안 현장을 떠나있다가 2002년 시즌 후 주루플레이와 기동력 강화를 위해 삼성 라이온즈 2군 주루코치로 영입되어 현장에 돌아왔습니다. 이는 11월 21일자 일간스포츠 기사를 통해 보도되었습니다.
2004
[삼성 코치직 자진 사퇴 및 야구계 은퇴]
당뇨병으로 인해 삼성 라이온즈 2군 주루코치직에서 자진 사퇴한 후, 현재까지 프로야구계와 인연을 끊고 있습니다. 개인주의적인 성향과 팀 단합을 저해하는 스타일로 인해 복귀가 어렵다는 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당뇨병 탓인지 2004년 9월 삼성 라이온즈 2군 주루코치직에서 자진 사퇴한 후, 프로야구계와 인연을 끊었습니다. 개인주의적인 것 외에도 팀 내부의 단합을 저해하는 스타일이라는 평가 때문에 2004년 9월 삼성 2군 주루코치직에서 자진 사퇴한 뒤 현재까지 프로야구계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