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춘 (1962년)
정치인, 국회의원, 장관, 국회사무총장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6:59:40
김영춘은 3선 국회의원이자 해양수산부 장관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정치인입니다.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민주화 운동을 이끌며 정치에 입문했으며, 한나라당 탈당 후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하는 등 정치적 소신을 보여주었습니다. 만년 야당 인사로 부산에서 힘든 과정을 겪었지만 해양수산부 장관, 국회사무총장 등 주요 요직을 거치며 활발히 활동했으며, 2022년 정계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1962
[출생 및 학창 시절]
경상남도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진구에 소재한 성지초등학교, 개성중학교, 부산동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김영춘은 1962년 2월 5일 경상남도 부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이후 부산진구에 위치한 성지초등학교, 개성중학교, 부산동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1981
1981년 부산동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습니다.
1984
[고려대 총학생회장 및 민주화 운동 주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되어 당시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며 정치적인 역량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1984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되어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습니다. 이 시기 그의 활동은 훗날 정치인으로서의 행보에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1985
[민주화 운동 관련 전과 기록]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교사,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1985년 3월 28일,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교사,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는 1984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서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것과 관련된 사건입니다.
1987
1987년 7월 10일, 이전 폭력행위 등 법률 위반으로 선고받았던 형 집행에 대해 특별사면 조치를 받았습니다.
1988
1988년에 고려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1991
1991년에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1993
1993년 청와대 정무비서관으로 김영삼 정부에 입각하여 중앙 정치 무대에 발을 들였습니다.
1996
1996년, 34세의 젊은 나이에 제15대 총선에 출마했으나, 단 1,000여 표 차이로 낙선의 고배를 마셨습니다.
2000
[제16대 국회의원 당선]
38세에 재도전 끝에 서울 광진구 갑 지역구에서 제16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처음으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습니다.
2000년 4월 13일, 38세의 나이에 재도전하여 서울 광진구 갑 지역구에서 제16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국회에 입성했습니다.
[제16대 국회의원 임기 시작]
제16대 국회의원 임기를 시작하여 2004년 5월 29일까지 국정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2000년 5월 30일부터 제16대 국회의원으로서 의정활동을 시작했으며, 이 임기는 2004년 5월 29일에 종료되었습니다.
2003
[한나라당 탈당 및 열린우리당 창당 참여]
민주화 운동 동지인 이부영, 김부겸 등과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하며 정치적 노선을 변경했습니다.
2003년, 민주화 운동을 함께했던 동지들과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하며, 기존 상도동계와는 다른 새로운 정치적 노선을 걷게 되었습니다.
2004
[제17대 국회의원 재선]
42세에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광진구 갑 지역구에 출마하여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2004년 4월 15일, 42세의 나이로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광진구 갑 지역구에서 재선에 성공하며 국회에서 연속적인 의정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제17대 국회의원 임기 시작]
제17대 국회의원 임기를 시작하여 2008년 5월 29일까지 활동하며 국회 국회운영위원회 간사,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 등을 역임했습니다.
2004년 5월 30일부터 제17대 국회의원으로서 임기를 시작했으며, 2008년 5월 29일까지 활동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열린우리당 의장비서실장, 대변인, 원내수석부대표, 사무총장, 윤리위원회 위원장 등 당내 주요 직책과 함께 국회 운영위원회 간사,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 등 국회직을 역임했습니다.
2007
[열린우리당 사무총장 역임]
열린우리당의 사무총장으로 임명되어 2007년 8월 18일까지 약 한 달간 당의 살림을 맡았습니다.
2007년 7월 24일 열린우리당 사무총장으로 임명되었고, 한 달 뒤인 2007년 8월 18일까지 직을 수행했습니다.
2008
2008년, 열린우리당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제18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습니다. 이는 그의 정치 경력에서 잠시 휴지기를 갖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0
[민주당 복당 및 활동 재개]
손학규의 요청으로 민주당에 복당하여 최고위원 및 영남미래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2010년 10월, 손학규의 요청을 수락하여 민주당에 복당했습니다. 이후 최고위원과 영남미래위원회 위원장 등의 직책을 맡으며 정치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2011
2011년, 가족과 함께 자신의 고향인 부산으로 귀향하여 부산 지역에서의 정치적 기반을 다지기 시작했습니다.
2012
[제19대 총선 부산 출마 및 낙선]
제19대 총선에서 부산진구 갑에 민주통합당 소속으로 출마했으나, 3,500여 표 차이로 낙선했습니다.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고향인 부산의 부산진구 갑 지역구에 민주통합당 소속으로 출마했으나, 3,500여 표 차이로 아쉽게 낙선했습니다.
2014
[부산시장 후보 사퇴]
제6회 지방 선거에서 부산광역시장 후보로 출마했으나, 무소속 오거돈 후보와의 단일화를 위해 후보직에서 사퇴했습니다.
2014년 제6회 지방 선거에서 부산광역시장 후보로 출마했지만, 야권 후보 단일화를 위해 무소속 오거돈 후보에게 양보하고 사퇴했습니다.
2015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 위원장 선출]
새정치민주연합 부산광역시당 위원장으로 선출되어 2016년 8월까지 당 활동을 이끌었습니다.
2015년 1월부터 2016년 8월까지 새정치민주연합(이후 더불어민주당) 부산광역시당 위원장으로서 당의 지역 활동을 총괄했습니다.
2016
[오륙도연구소 출범 주도]
부산광역시당 위원장 선출 후, 대한민국 정당사상 최초의 지역 기반 연구소인 오륙도연구소를 출범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2016년, 부산광역시당 위원장으로 선출된 후, 정당사상 대한민국 최초로 지역에 기반한 연구소인 오륙도연구소를 출범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제20대 국회의원 당선 (3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진구 갑 지역구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며 3선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2016년 4월 13일,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진구 갑 지역구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습니다. 이로써 그는 3선 국회의원으로서 다시 국회에 입성했습니다.
[제20대 국회의원 임기 시작 및 상임위원장 역임]
제20대 국회의원 임기를 시작하여 2020년 5월까지 활동했으며, 이 기간 동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습니다.
2016년 5월부터 2020년 5월까지 제20대 국회의원으로서 의정활동을 펼쳤습니다. 특히 2016년 6월부터 2017년 6월까지 제20대 국회 전반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며 농해수 분야 정책을 이끌었습니다.
2017
2017년 6월, 문재인 정부의 초대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었습니다. 6월 15일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인사청문 보고서가 채택되며 장관 임명 절차를 진행했습니다.
[해양수산부 장관 임명]
문재인 정부의 초대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2019년 4월 2일까지 해양수산 정책을 총괄했습니다.
2017년 6월 16일, 문재인 정부의 초대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공식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2019년 4월 2일까지 장관직을 수행하며 해양수산 정책 전반을 이끌었습니다.
2018
2018년 5월, 해양수산부 장관으로서 정부의 탈원전 정책 기조에 따라 해상태양광 발전 사업을 추진하며 에너지 전환 정책에 기여했습니다.
2019
2019년 4월 2일, 해양수산부 장관으로서의 임무를 마치고 퇴임했습니다.
[오륙도연구소 소장 취임]
더불어민주당 부산광역시당 오륙도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하여 2020년 6월까지 지역 정책 연구를 이끌었습니다.
2019년 5월, 더불어민주당 부산광역시당 오륙도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하여 2020년 6월까지 부산 지역의 발전과 관련된 다양한 정책 연구를 총괄했습니다.
[부·울·경 메가시티 비전위원회 상임위원장]
부·울·경 메가시티 비전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맡아 부산, 울산, 경남 지역의 공동 발전을 위한 비전을 제시하고 중앙당 특별위원회로 지정되도록 이끌었습니다.
2019년 12월, 부·울·경 메가시티 비전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맡아 부산, 울산, 경남 지역의 상생 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추진했습니다. 같은 해 12월 18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서 해당 비전위원회를 중앙당 특별위원회로 지정했습니다.
2020
[제33대 국회사무총장 취임]
제33대 국회사무총장으로 취임하여 2020년 12월 28일까지 국회의 행정 업무를 총괄했습니다.
2020년 6월 29일, 제33대 국회사무총장으로 취임했습니다. 그는 2020년 12월 28일까지 장관급 공직인 국회사무총장으로서 국회의 운영과 지원 업무를 총괄했습니다.
2020년 12월 28일, 제33대 국회사무총장직을 사임했습니다. 사임과 동시에 자택이 있는 부산으로 내려가 지역 활동을 준비했습니다.
2021
2021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일본학과를 졸업하며 또 다른 학업적 성취를 이루었습니다.
[부산시장 재보궐선거 출마 및 낙선]
부산광역시장 재보궐선거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등록했으나, 박형준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습니다.
2021년 3월 18일, 부산광역시장 재보궐선거에 더불어민주당 기호 1번 후보로 등록했으나,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에게 패배하여 낙선했습니다.
2022
2022년 3월 21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정계 은퇴를 공식 선언했습니다. 이로써 1980년대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민주화 운동을 시작한 이래 40여 년간 이어진 그의 정치 활동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2023
2023년 4월, 대한민국헌정회 이사로 활동하며 정치 원로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