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1921년)

시인, 수필가, 번역문학가, 문학 연구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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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6:5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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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겪으며 치열한 삶을 살았다. 자유와 저항 정신을 노래하며 독재에 맞섰다. 일상에서 시적 영감을 찾아 독특한 문학 세계를 구축했으며, 사후에도 큰 영향력을 가진 문학계의 거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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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

[시인 김수영, 서울에서 탄생]

일제 강점기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서 아버지 김태욱과 어머니 안형순 사이의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21년 11월 27일, 일제 강점기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서 아버지 김태욱과 어머니 안형순 사이의 8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병약했다고 전해진다.

1941

[선린고등상업학교 졸업]

오스카 와일드의 시작품을 원문으로 외울 정도로 뛰어난 영어 실력을 자랑하며 선린고등상업학교를 졸업했다.

선린고등상업학교 5년 과정을 졸업했다. 학창 시절 오스카 와일드의 원문 시작품들을 외워 읽을 만큼 영어 성적이 우수했다.

1942

[일본 유학, 학업 포기 후 연극에 몰두]

몰락하는 집안의 기대를 안고 일본 도쿄로 유학을 떠났으나, 대학 입학 자격 예비학교에 잠시 적을 두다 학업을 포기하고 연극에 몰두했다.

1941년 선린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 대학 입학 자격을 얻기 위해 도쿄 조후쿠 고등예비학교에 들어갔으나, 서너 달 만에 학업을 포기하고 해방 전까지 연극 활동에 몰입했다. 이는 현실 도피에 가까웠다고 언급된다.

1945

[광복과 함께 귀국, 시 창작 시작]

일제강점기 말 학병 징집을 피해 만주 길림성으로 이주했다가 광복과 함께 귀국하여 시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말 학병 징집을 피해 만주 길림성으로 이주했으며, 광복과 동시에 귀국하여 시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또한 연희전문학교에서 잠시 수학했으나 중퇴했다.

1947

[<묘정의 노래> 발표하며 문단 등단]

연희전문학교 중퇴 후 예술부락에 시 〈묘정의 노래〉를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했다. 이후 김경린, 박인환과 함께 시집을 발표하여 주목받았다.

연희전문학교에서 잠시 수학했으나 졸업하지 못한 채 중퇴했으며, 1947년 예술부락에 시 〈묘정(廟庭)의 노래〉를 발표하면서 등단한 후 김경린, 박인환과 함께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표하여 주목을 끌었다.

1949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출간]

김경린, 박인환 등과 함께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펴내며 한국 문단에 이름을 알렸다.

김경린, 박인환과 함께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표하여 주목을 끌었다. 이는 김수영 시인의 첫 시집 활동으로 볼 수 있다.

1950

[한국 전쟁 참전 및 거제도 포로수용소 수감]

한국 전쟁 발발 후 서울을 점령한 조선인민군에 징집되어 참전했으며, 이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석방되는 고난을 겪었다.

한국 전쟁 때 서울을 점령한 조선인민군에 징집되어 참전했다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되었다고 전해진다. 당시의 심정은 수필 《내가 겪은 포로생활》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1957

[제1회 시인협회상 수상]

대한민국 문단에서 권위 있는 제1회 시인협회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1957년 제1회 시인협회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일본어와 영어에 능통하여 통역 일과 잡지사, 신문사를 전전하며 시작과 번역에 전념했다.

1958

[첫 단독 시집 《달나라의 장난》 출간]

춘조사에서 첫 단독 시집 《달나라의 장난》을 출간했다. 이 시기의 시들은 현실의 갈등과 슬픔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1958년 춘조사에서 첫 단독 시집 《달나라의 장난》을 출간하였다. 이 시기의 시들은 바로 살고자 하는 의지와 그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현실 사이의 갈등과 슬픔의 극복이 중심적인 내용을 이루고 있다.

1960

[4.19 혁명, 참여 시인으로 변모하는 계기]

4.19 혁명을 기점으로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탄압에 맞서 적극적으로 자유와 저항 정신을 강조하는 참여 시를 쓰기 시작했다.

한국의 대표적 참여 시인으로 평가받는 김수영은 초기에는 현대문명과 도시생활을 비판하는 시를 주로 쓰다가 4.19 혁명을 기점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탄압과 압제에 맞서 적극적으로 부정과 타협하지 않는 정신을 강조하는 시를 썼다. 그는 4.19 혁명 당시 "하늘과 땅 사이에서 통일을 느꼈소....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그처럼 아름다워 보일 수가 있습니까!"라고 말했다.

1968

[비극적인 교통사고로 영면하다]

6월 15일 밤 술자리 후 귀가 중 서울 마포구에서 버스에 치여 다음날 새벽 48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번역과 작품 활동을 계속하다가 1968년 6월 15일 밤 술자리가 끝나고 귀가하던 길에 서울 마포구 구수동에서 인도로 뛰어든 좌석버스에 치여 병원으로 옮겨진 뒤 다음날 새벽에 48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1974

[사후 시집 《거대한 뿌리》 출간]

김수영 시인 사후 그의 시집 《거대한 뿌리》가 출간되어 그의 문학적 유산을 기렸다.

김수영 시인의 사후인 1974년, 그의 시집 《거대한 뿌리》가 출간되었다. 이 시집을 통해 그의 독창적인 언어 사용과 시론을 엿볼 수 있다.

1976

[사후 산문집 《퓨리턴의 초상》 출간]

김수영 시인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산문집 《퓨리턴의 초상》이 사후에 출간되었다.

김수영 시인의 사후인 1976년, 그의 산문집 《퓨리턴의 초상》이 출간되었다.

1981

[김수영 문학상 제정 및 첫 시상]

민음사에서 김수영 시인을 기념하며 김수영 문학상을 제정하고 매년 시상하기 시작했다. 이 상은 한국 문학의 중요한 등용문이 되었다.

김수영 시인의 사후, 민음사에서는 그를 기념하는 김수영 문학상을 제정하여 1981년 이후 매년 수여하고 있다. 이 상은 한국 현대 문학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13

[김수영문학관 설립]

그가 생전에 거주했던 서울 도봉구에 김수영 시인을 기리고 그의 시문학 업적을 기념하는 김수영문학관이 설립되었다.

2013년, 김수영 시인이 생전에 거주했던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그를 기리고 그의 시문 및 시학의 업적을 기리는 김수영문학관이 설립되었다. 이곳에서는 김수영 시인의 삶과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다.

2021

[김수영 시인 100주년 기념 출판 활발]

김수영 시인 100주년인 2021년을 맞아 그의 문학 세계를 재조명하는 다양한 출판물이 발간되었다.

김수영 시인 100주년인 2021년에 한겨레에 연재된 글을 엮은 《이 모든 불온한 반동이 좋다》와 이영준 편집의 《시여 침을 뱉어라》 등 김수영 시인의 문학 세계를 다룬 다양한 출판물이 발간되며 그의 문학적 위상을 재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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