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한 (1958년)

야구 선수, 야구 감독, 스포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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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6:5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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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의 레전드 '오리궁둥이' 김성한은 해태 타이거즈의 전설적인 원년 멤버이자 '기록 제조기'였다. 투수와 타자를 겸업하며 10승-타점왕-3할 타율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두 차례 MVP를 포함해 홈런왕, 타점왕, 최다 안타 등 수많은 타이틀을 휩쓸며 해태의 7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은퇴 후에는 감독으로도 활동하며 한국 야구사에 깊은 족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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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

[전설의 야구 선수 김성한 탄생]

전 KBO 리그 해태 타이거즈의 선수이자 감독, 현 한화 이글스 수석코치였던 김성한이 전라북도 군산시에서 태어났다.

KBO 리그의 대표적인 강타자로 알려진 김성한은 1958년 5월 18일 전라북도 군산시에서 태어났다. 후에 해태 타이거즈의 전설적인 선수이자 감독으로 한국 야구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게 된다.

1982

[KBO 최초, 투타 겸업 10승-타점왕-3할 타자 진기록]

KBO 리그 원년, 투수로서 10승, 타자로서 타점왕(69타점)과 3할 타율(0.305)을 동시에 달성하는 전무후무한 진기록을 세웠다.

1982년 KBO 리그 원년, 김성한은 해태 타이거즈의 핵심 선수로 맹활약했다. 그는 포수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소화하며 타자로서 13홈런, 3할 타율(0.305), 69타점으로 타점왕을 차지했고, 투수로서는 10승(3선발승)을 기록하며 KBO 리그 사상 최초이자 유일무이한 10승 투수·타점왕·3할 타자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그의 투타 겸업은 1985년까지 이어져 투수로서 총 15승 10패의 기록을 남겼다.

[KBO 리그 원년, 해태 타이거즈 입단]

1982년 프로 야구 원년, 김성한은 2차 드래프트 2위로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1982년 KBO 리그 원년, 김성한은 2차 드래프트 전체 2위로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며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해태 타이거즈의 초미니 선수단 14명 중 한 명으로 리그에 합류했다.

[KBO 리그 첫 출장]

구덕 야구장에서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 출장하며 KBO 리그에 첫 발을 내디뎠다.

1982년 3월 28일, 김성한은 구덕 야구장에서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 출장하며 KBO 리그에 공식적으로 데뷔했다. 이는 그의 길고 빛나는 프로 선수 경력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1983

[해태 타이거즈 전성기 이끌며 한국시리즈 7회 우승 달성]

선수 생활 중 1983년부터 1993년까지 총 7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하며 해태 타이거즈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김성한은 1983년 해태 타이거즈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시작으로 1986, 1987, 1988, 1989, 1991, 1993년에 걸쳐 총 7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이 되었다. 그는 이른바 'KKK포' 타선의 핵심이자 이순철-한대화-김성한으로 이어지는 강력한 타선을 이끌며 해태 타이거즈의 초창기와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의 전성기를 견인했다.

[KBO 통산 150경기 출장 달성]

사직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KBO 통산 15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1983년 8월 10일, 김성한은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KBO 리그 통산 150경기 출장을 달성하며 선수로서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다.

1985

[리그 최고 타자로 우뚝, 첫 정규 시즌 MVP 수상]

정규 시즌 MVP에 선정되며 리그 최고 타자임을 입증했다. 이 해 그는 홈런왕, 최다 안타 타이틀을 거머쥐었으며, 1루수 부문 골든 글러브까지 수상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1985년, 김성한은 개인 커리어의 정점을 찍으며 KBO 리그 정규 시즌 MVP를 처음으로 수상했다. 그는 이 시즌에 홈런 1위, 안타 1위, 타점 2위, 득점 2위, 타격 3위를 기록하며 리그를 압도하는 활약을 펼쳤다. 또한 1루수 부문에서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며 공수 양면에서 인정받았다. 이 해를 기점으로 김성한의 투타 겸업은 사실상 종료되었고, 그는 타자로서 더욱 집중하게 된다.

1988

[KBO 최초 '20-20 클럽' 가입 및 '30홈런' 돌파, 두 번째 MVP]

KBO 리그 최초로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하는 동시에 최초로 한 시즌 30홈런을 돌파하는 전인미답의 기록을 세웠다. 이 해 그는 두 번째 정규 시즌 MVP와 함께 홈런왕, 타점왕, 최다 안타왕을 석권했다.

1988년은 김성한에게 또 한 번의 전설적인 시즌이었다. 그는 KBO 리그 사상 최초로 20홈런-20도루 클럽(26홈런-32도루)에 가입하며 호타준족의 대명사가 되었다. 또한, 같은 해 최초로 한 시즌 30홈런을 돌파(30홈런)하며 한국 프로 야구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이러한 압도적인 활약을 바탕으로 그는 두 번째 정규 시즌 MVP에 선정되었으며, 홈런왕, 타점왕, 최다 안타왕까지 모두 석권하며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기록 제조기'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했다. 올스타전 MVP 또한 그의 몫이었다.

[경기 중 불운의 팔목 골절로 한국시리즈 불참]

빙그레 이글스전에서 장종훈과 충돌하여 팔목 골절 진단을 받았다. 이 부상으로 소속팀 해태 타이거즈가 우승한 한국시리즈에 출전하지 못했다.

1988년 9월 7일, 청주에서 열린 빙그레 이글스와의 경기 도중, 내야 땅볼을 치고 1루로 달려오던 빙그레의 장종훈 선수와 1루를 지키던 김성한이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김성한은 팔목 골절상을 입고 8주 진단을 받았다. 당시 팀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여 우승을 차지했으나, 그는 부상으로 인해 한국시리즈에 출전하지 못하는 불운을 겪었다. 그의 1루 자리는 1982년 이외에는 지명타자로 활동했던 김봉연 선수가 대신했다.

1989

[2년 연속 홈런왕 및 최다 득점 타이틀 획득]

2년 연속 홈런왕 타이틀을 지켜냈고, 최다 득점 1위까지 기록하며 타선의 핵임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1989년 김성한은 2년 연속 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했으며, 최다 득점 1위를 기록하며 해태 타이거즈 타선의 중심 역할을 굳건히 했다. 또한 이 시즌 도루 3위에 오르는 등 뛰어난 주루 능력도 과시했다.

1990

[KBO 역대 두 번째 500득점 금자탑]

청주 LG 트윈스전에서 KBO 리그 역대 두 번째로 통산 500득점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며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다.

1990년 6월 5일, 김성한은 청주 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KBO 리그 통산 500득점을 달성하며 역대 두 번째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그의 꾸준한 출루와 득점 생산 능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였다.

1991

[한일 슈퍼 올스타전 3홈런 폭발, 배트 도쿄 돔 전시]

최초로 열린 한일 슈퍼 올스타전에서 3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당시 사용했던 그의 배트는 일본 도쿄 돔에 전시될 정도로 인상 깊은 활약이었다.

1991년, 역사상 최초로 열린 한·일 슈퍼 올스타전에서 김성한은 홀로 3개의 홈런을 터뜨리는 파괴적인 모습을 선보였다. 그의 압도적인 활약은 일본 야구계에도 깊은 인상을 남겨, 당시 그가 사용했던 배트가 일본 도쿄 돔에 전시되는 영광을 얻었다.

[KBO 역대 두 번째 600타점 달성]

대전 빙그레 이글스전에서 KBO 리그 통산 600타점을 달성하며 역대 두 번째 600타점의 주인공이 되었다.

1991년 5월 23일, 김성한은 대전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빙그레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KBO 리그 통산 600타점을 달성했다. 이는 KBO 역대 두 번째 600타점 기록으로, 그의 꾸준한 장타력과 해결사 본능을 입증하는 순간이었다.

[KBO 통산 600득점 달성]

대구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KBO 리그 통산 600득점을 기록하며 개인 기록을 꾸준히 쌓아나갔다.

1991년 7월 14일, 김성한은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KBO 리그 통산 600득점이라는 기록을 달성했다. 이는 그의 뛰어난 출루 능력과 득점 기여도를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이다.

1992

[1992년 올스타전 '미스터 올스타' 선정]

올스타전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미스터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그는 총 12차례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1992년, 김성한은 KBO 올스타전에서 맹활약하며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그 결과 '미스터 올스타'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그는 프로 생활 동안 총 12차례 올스타전에 출전하며 리그를 대표하는 스타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KBO 통산 2000루타 달성]

광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KBO 리그 통산 2000루타를 달성하며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1992년 8월 20일, 김성한은 광주 무등경기장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KBO 리그 통산 2000루타를 달성했다. 이 기록은 그의 꾸준한 장타력을 바탕으로 쌓아 올린 빛나는 성과였다.

1993

[KBO 통산 700득점 달성]

광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KBO 리그 통산 700득점을 기록하며 꾸준한 득점력을 보여주었다.

1993년 5월 26일, 김성한은 광주 무등경기장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KBO 리그 통산 700득점을 달성했다. 이는 그의 높은 출루율과 득점권 찬스에서의 집중력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1995

[14시즌 선수 생활 마감, 영광의 은퇴]

광주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14시즌간의 빛나는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은퇴했다. 은퇴 당시 통산 안타, 루타, 득점, 2루타 부문에서 KBO 1위를 기록했다.

1995년 9월 24일, 김성한은 광주 무등경기장 야구장에서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를 끝으로 14시즌에 걸친 위대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공식 은퇴했다. 그는 은퇴 당시 KBO 리그 통산 안타(1389개), 루타(2285개), 득점(762점), 2루타(247개) 부문에서 모두 1위를 기록하며 '기록 제조기'다운 영광스러운 마무리를 했다.

1997

[해태 타이거즈 수석코치로 지도자 경력 시작]

선수 은퇴 후 해태 타이거즈의 수석코치로 부임하며 지도자로서의 새로운 경력을 시작했다.

1995년 선수 생활을 마감한 김성한은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친정팀 해태 타이거즈의 수석코치를 맡으며 지도자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이는 김응용 감독의 뒤를 이어 팀을 이끌기 위한 준비 과정이기도 했다.

2001

[김응용 감독 후임, 해태/KIA 타이거즈 3대 감독 부임]

김응용 감독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자, 해태 타이거즈(이후 KIA 타이거즈로 변경)의 3대 감독으로 부임하며 팀을 이끌게 되었다.

2001년, 오랜 기간 해태 타이거즈를 이끌었던 김응용 감독이 삼성 라이온즈로 자리를 옮기면서, 김성한이 그 뒤를 이어 해태 타이거즈의 3대 감독으로 부임했다. 이후 팀이 KIA 타이거즈로 변경된 후에도 감독직을 수행하며 2004년까지 팀을 지휘했다.

2002

[2군 포수 폭행 사건 발생]

감독 재임 중 2군 포수였던 김지영을 폭행한 사건이 발생하여 감독 생활에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2002년,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 재임하던 중 2군 포수였던 김지영 선수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언론을 통해 크게 보도되었고, 김성한 감독은 구단으로부터 징계를 받는 등 감독으로서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으며 오점을 남기게 되었다.

2004

[모교 군산상업고등학교 감독 역임]

KIA 타이거즈 감독직에서 물러난 후, 모교인 군산상업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부임하여 후배 양성에 힘썼다.

KIA 타이거즈 감독직에서 물러난 김성한은 2004년부터 2005년까지 자신의 모교인 군산상업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을 맡았다. 이는 프로 무대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마추어 야구 발전에 기여하고 후배들을 양성하기 위한 행보였다.

2006

[한국 야구 위원회 경기 운영 위원 활동]

한국 야구 위원회 경기 운영 위원으로 활동하며 한국 야구 발전에 기여했다.

2006년, 김성한은 KBO 한국 야구 위원회의 경기 운영 위원으로 활동하며 프로 야구 리그의 원활한 운영과 발전에 기여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2007

[MBC ESPN 야구 해설 위원 활동]

MBC ESPN 야구 해설 위원으로 활동하며 야구팬들에게 전문적인 해설을 제공했다.

2007년, 김성한은 MBC ESPN 야구 해설 위원으로 활동하며 그동안 쌓아온 풍부한 선수 및 감독 경험을 바탕으로 심도 깊은 야구 해설을 제공, 팬들에게 사랑받는 해설위원으로 자리매김했다.

2009

[2009 WBC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로 활약]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를 맡아 대한민국 야구의 선전에 기여했다.

2009년, 김성한은 국제 대회인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수석코치로 참여했다. 그는 선수들을 지도하며 대표팀의 좋은 성적에 기여했다.

2012

[야구 박람회 조직위원장 및 한화 이글스 수석코치 복귀]

제1회 대한민국야구박람회 조직위원장을 맡았고, 같은 해 한화 이글스의 수석코치로 임명되며 프로 야구 지도자로 복귀했다.

2012년, 김성한은 제1회 대한민국야구박람회 조직위원장을 맡아 한국 야구 문화 발전에 기여했다. 같은 해, 한화 이글스의 수석코치로 임명되며 프로 야구 지도자로서 다시 한번 현장에 복귀, 2013년부터 2014년까지 코치직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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