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 (1977년)
야구 선수, 투수, 스포츠 해설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6:58:31
김선우는 대한민국 출신 전 메이저리그 및 KBO 리그 투수이자 현 MBC 스포츠플러스 야구 해설위원입니다. 고려대 중퇴 후 보스턴 레드삭스와 계약하며 미국에 진출, '투수들의 무덤' 쿠어스 필드에서 완봉승을 기록했습니다. KBO 복귀 후 두산 에이스로 활약하며 다승 2위를 달성했고, 국가대표로 올림픽과 WBC에도 참가했습니다.
1977
[김선우 탄생]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선우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이후 메이저리그와 KBO리그에서 활약한 투수이자 해설가로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김선우는 대한민국 경기도 인천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훗날 '써니'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한국과 미국 무대를 누비는 야구 선수로 성장하게 됩니다.
1995
[휘문고 에이스로 청룡기 우승 견인]
휘문고등학교 야구팀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 우승으로 이끌며 고교 최고의 투수로 주목받았습니다.
김선우는 휘문고등학교 소속으로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에서 팀의 우승을 이끌며 '격이 다른 초 고교급 투수'로 큰 기대를 받았습니다.
1996
[OB 베어스 지명 후 고려대 진학]
OB 베어스의 고졸우선지명을 받았으나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하며 프로 직행 대신 대학 진학을 선택했습니다.
프로야구 OB 베어스로부터 고졸우선지명을 받았지만, 김선우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하여 학업과 야구를 병행하는 길을 걸었습니다.
고려대 1학년 재학 중 애틀랜타 올림픽에 야구 국가대표로 출전했으나, 일본전에서 1이닝 6실점(4자책)을 기록하며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1997
[아시아 야구 선수권 우승 기여]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우승에 크게 기여하며 직전 올림픽에서의 부진을 딛고 명예를 회복했습니다.
애틀랜타 올림픽의 부진을 만회하며 1997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우승을 차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보스턴 레드삭스 입단 계약, MLB 진출]
고려대학교를 중퇴하고 계약금 130만 달러를 받고 보스턴 레드삭스와 입단 계약을 체결하며 메이저리그 진출의 꿈을 이뤘습니다.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중퇴한 김선우는 130만 달러라는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 계약을 맺으며,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한국인 선수가 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1라운드 중하위권~2라운드 선수 수준의 높은 금액이었습니다.
2000
[MLB 유망주 TOP 100 선정]
베이스볼 아메리카가 발표한 MLB 유망주 TOP 100에서 94위를 차지하며 높은 잠재력을 인정받았습니다.
베이스볼 아메리카가 선정한 2000년 메이저리그 유망주 TOP 100에서 94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는 2007년 내셔널 리그 MVP를 차지했던 지미 롤린스보다 한 단계 높은 순위로, 그의 기대치를 짐작하게 했습니다.
2001
상위 싱글A, 더블A, 트리플A를 거쳐 마침내 메이저리그 무대에 발을 디뎠습니다. 보스턴 레드삭스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 첫 출장을 기록하며 오랜 노력의 결실을 맺었습니다.
2002
2002년 시즌 중 보스턴 레드삭스는 전년도 3할-30홈런-세 자릿수 타점을 기록했던 클리프 플로이드와의 트레이드에 그를 포함시켜 몬트리올 엑스포스로 이적시켰습니다. 이때 함께 우완 유망주 송승준도 트레이드되었습니다.
2005
몬트리올 엑스포스가 워싱턴 내셔널스로 연고지를 이전한 해, 워싱턴에서 지명 할당되었고, 이후 콜로라도 로키스로 이적하여 선수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쿠어스 필드 완봉승 달성]
'투수들의 무덤'이라 불리던 쿠어스 필드에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상대로 생애 첫 완봉승을 기록하는 대단한 활약을 펼쳤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선발 등판하여 배리 본즈, 모이세스 알루 등 강타자들이 포진한 타선을 3안타 1볼넷으로 꽁꽁 묶으며 쿠어스 필드에서 완봉승이라는 기념비적인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는 그에게 '써니'라는 별명을 안겨준 활약 중 하나입니다.
2006
2006년 WBC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국제대회에서 활약함으로써 병역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신시내티 레즈 트레이드 및 방출]
시즌 중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되었으나, 시즌 후 방출되며 메이저리그 생활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WBC 참가 후유증으로 부진에 빠지면서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되었으나, 결국 시즌 후 방출 통보를 받으며 메이저리그 경력의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2007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마이너 계약]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마이너 계약을 맺고 재기를 노렸으나, 더 이상 메이저리그 무대에 서지 못했습니다.
메이저리그 재진입을 위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마이너 계약을 체결했지만, 끝내 빅리그에 콜업되지 못하고 메이저리그에서의 선수 경력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2008
[두산 베어스 입단, KBO 리그 복귀]
처음에 지명됐던 두산 베어스와 계약금 9억원을 포함한 총액 15억원에 계약하며 국내 KBO 리그에 복귀했습니다.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KBO 리그 복귀를 선언한 김선우는 처음에 자신을 지명했던 두산 베어스와 계약금 9억원, 연봉 4억원, 인센티브 2억원 등 총액 15억원에 계약을 맺고 국내 무대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KBO 리그 첫 출장은 4월 2일 광주 KIA전 선발 등판이었습니다.
2011
[개인 최고 시즌, 다승 2위 달성]
두산 베어스에서 16승 7패를 기록하며 다승 2위, 평균자책점 3위를 차지했고, 데뷔 이래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하며 개인 최고의 시즌을 보냈습니다.
2011년 시즌 두산 베어스의 에이스로 맹활약하며 16승 7패를 기록, 리그 다승 2위와 평균자책점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또한 데뷔 이후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하며 전 구단 상대 승리를 기록하는 등 최고의 한 해를 보냈으며, 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 기량 발전상을 수상했습니다.
[데뷔 첫 세이브 기록]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깜짝 구원 등판하여 데뷔 첫 세이브를 기록하는 이색적인 경험을 했습니다.
선발 투수로서 주로 활약하던 그는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구원 등판하여 인상적인 투구를 선보이며 데뷔 후 첫 세이브를 기록했습니다.
2013
[두산 베어스 방출 및 LG 트윈스 이적]
두산 베어스에서 코치직 제안을 거절하고 합의 하에 방출을 요청하며 팀을 떠났습니다. 이후 LG 트윈스로 이적했습니다.
무릎과 종아리 부상 등으로 부진을 겪던 그는 2013년 한국시리즈 종료 후 구단이 제시한 코치직 제안을 거절하고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합의 하에 방출을 요청했습니다. 이후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서울 연고팀인 LG 트윈스와 1억 5천만원에 계약하며 이적을 완료했습니다.
2014
LG 트윈스에서 6경기에 등판해 1패와 높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후, 2014년 시즌을 끝으로 현역 야구 선수로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하며 '행복한 야구선수였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그의 마지막 KBO 경기는 10월 17일 사직 롯데전 구원이었습니다.
2015
[MBC 스포츠플러스 야구 해설위원 데뷔]
메이저리그 경력을 인정받아 MBC 스포츠플러스의 야구 해설위원으로 영입되며 새로운 직업을 시작했습니다.
은퇴 후 김선우는 그의 풍부한 메이저리그 경험과 KBO 리그 지식을 바탕으로 MBC 스포츠플러스에서 야구 해설위원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부담 100배지만 나답게 하겠다'는 각오를 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