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신 (시인)
시인, 문인, 관료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6:58:07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시인 김득신은 어릴 적 천연두와 뒤늦은 학습 능력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만 번이 넘게 독서를 반복하는 지독한 노력으로 59세에 성균관에 합격했다. 시에 뛰어나 백곡집을 남겼으며, 끊임없는 정진으로 결국 이름을 떨쳤다.
1604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시인인 김득신이 1604년 12월 8일(음력 10월 18일) 한성부에서 태어났다. 자는 자공, 호는 백곡이며 본관은 구안동 김씨이다. 임진왜란 영웅 김시민의 손자이며, 경상도관찰사를 지낸 김치의 아들이다.
1605
김득신은 어린 시절 천연두를 앓아 후유증으로 글을 깨우치는 데 늦고 학습 내용을 오래 기억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1614
[10세, 지독한 노력으로 만 번 독서를 시작하다]
10세부터 글 공부를 시작했으나 학습 내용을 쉽게 잊어버리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그는 책을 놓지 않고 만 번이 넘는 독서를 통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 노력했다.
김득신은 10세에 글을 깨우치기 시작했지만, 몇 시간 전 공부한 것을 다 잊는 등 학습 내용을 오래 기억하지 못해 공부가 매우 힘들었다. 그의 아버지 김치는 공부를 멈추라는 유언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김득신은 밥을 먹을 때나 보행할 때도 책을 놓지 않으며 한 권은 11만 3천여 번, 다른 책들은 2만여 번 읽는 등 엄청난 노력으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매진했다.
1642
수년간의 지독한 노력 끝에 김득신은 1642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의 반열에 올랐다. 이는 그의 꾸준한 학문 정진의 첫 번째 결실이었다.
1663
김득신은 59세라는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학문 연마 끝에 성균관에 합격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는 '재주가 남만 못하다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이도 없겠지만, 결국에는 이름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데 달려있을 따름이다.'라는 그의 삶의 철학을 증명하는 사건이었다.
1670
성균관 합격 이후 김득신은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안풍군(安豊君)에 책봉되는 등 문관으로서의 경력을 쌓았다.
1684
1684년 10월 8일, 김득신은 충청도 괴산 땅에서 지내던 중 재물을 노린 명화적(明火賊) 떼에게 피살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