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 (1969년)

야구인, 스포츠인,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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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6:5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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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야구인 김기태는 KBO 리그의 전설적인 좌타 거포입니다. 선수 시절 쌍방울 레이더스, 삼성 라이온즈, SK 와이번스에서 활약하며 홈런왕, 타격왕 등 수많은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은퇴 후에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타격코치를 거쳐 LG 트윈스와 KIA 타이거즈의 감독을 역임했으며, 특히 2017년 KIA 타이거즈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국가대표팀 코치로서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에도 기여하며 선수와 지도자 모두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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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

[전설의 시작, 김기태 탄생]

전라남도 광산군에서 태어나, 훗날 KBO 리그의 전설적인 좌타 거포이자 성공적인 감독으로 성장합니다.

김기태는 전라남도 광산군에서 태어났습니다. 이후 인하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한국 프로야구에 큰 발자취를 남기게 됩니다.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 참가]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로 베이징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며 국제 무대에서 활약했습니다.

인하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김기태는 베이징 아시안 게임에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로 참가하여 국제 대회 경험을 쌓았습니다. 이는 그의 프로 경력 전 중요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1991

[쌍방울 레이더스 입단 및 프로 데뷔]

인하대학교 졸업 후, KBO 리그 신생팀 쌍방울 레이더스의 특별우선 지명을 받아 창단 멤버로 입단하고, KBO 리그 첫 공식 경기에 출장하며 프로 선수로서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인하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한 김기태는 신생팀 쌍방울 레이더스의 특별우선 지명을 받아 창단 멤버로 입단했습니다. KBO 리그 빙그레전에서 첫 경기를 치르며 프로 무대에 데뷔했습니다. 데뷔 첫해 2할대 타율, 27홈런, 95타점을 기록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으나, 팀 동료 조규제에 밀려 아쉽게 신인왕을 놓쳤습니다.

1992

[최고 출루율 및 골든 글러브 수상]

3할대 타율과 31홈런을 기록하며 지명타자 부문 골든 글러브와 함께 KBO 최고 출루율 타이틀을 차지했습니다.

김기태는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3할대 타율과 31홈런을 기록했습니다. 이 해 그는 지명타자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으며, KBO 최고 출루율 타이틀을 획득하며 리그 정상급 타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94

[3년 연속 골든 글러브 (지명타자 부문)]

3년 연속 지명타자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며 최고의 지명타자임을 증명했습니다.

김기태는 1992년부터 1994년까지 3년 연속 지명타자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며 리그 최고의 지명타자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습니다.

[좌타자 최초 KBO 홈런왕 등극]

25홈런으로 좌타자 최초 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하고, KBO 최고 장타율을 기록하며 리그 최고의 강타자로 위상을 떨쳤습니다.

김기태는 25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좌타자 최초로 KBO 홈런왕 타이틀을 거머쥐는 역사적인 기록을 세웠습니다. 또한 이 해 KBO 최고 장타율을 기록하며 리그를 대표하는 강타자임을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같은 해 지명타자 부문 골든 글러브도 수상했습니다.

1995

[시즌 최다 2루타 1위]

KBO 리그에서 34개의 2루타를 기록하며 시즌 최다 2루타 부문 1위에 올랐습니다.

김기태는 34개의 2루타를 때려내며 KBO 리그에서 2루타 부문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는 그의 정교하고 파워풀한 타격 능력을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1997

[타격 3관왕 달성 (타격왕, 출루율, 장타율)]

KBO 리그 타격왕, 최고 출루율, 최고 장타율 타이틀을 모두 획득하며 최고의 타격 시즌을 보냈습니다. 이승엽과 함께 타격 3관왕을 기록하는 등 절정의 기량을 선보였습니다.

은 김기태 선수 경력의 정점을 찍은 해였습니다. 그는 KBO 타격왕을 차지했고, 최고 출루율과 최고 장타율 타이틀까지 휩쓸며 타격 3관왕에 올랐습니다. 당시 이승엽 선수와 함께 압도적인 타격 실력을 보여줬으나, 후반기 부상으로 15경기를 결장하며 누적 기록 경쟁에서는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1998

[KBO 통산 600타점 달성]

LG 트윈스전에서 통산 600타점을 달성하며 KBO 리그 역대 8번째 기록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김기태는 잠실 LG 트윈스전에서 통산 600타점을 달성하며 KBO 리그 역대 8번째로 이 기록을 세운 선수가 되었습니다. 이는 그의 꾸준한 장타 생산 능력을 입증하는 기록입니다.

1999

[삼성 라이온즈로 현금 트레이드 이적]

모기업 쌍방울의 재정난으로 팀의 핵심 투수 김현욱과 함께 삼성 라이온즈로 현금 트레이드되며 팀을 옮겼습니다. 이는 선수 생활의 큰 전환점이 됩니다.

IMF 사태로 모기업 쌍방울이 부도 처리되면서 재정난을 겪게 되자, 김기태는 팀의 핵심 불펜 투수 김현욱과 함께 당시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양용모, 이계성 선수와의 2:2 현금 트레이드(20억 원)를 통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습니다. 이적 후 해태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된 양준혁 선수를 대신해 중심 타자로 활약하며 2할대 타율, 28홈런, 88타점을 기록하며 꾸준함을 보였습니다.

2000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획득 기여 및 2000루타 달성]

시드니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로 참가하여 대한민국 야구 역사상 첫 동메달 획득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또한 KBO 통산 2000루타를 달성했습니다.

시드니 올림픽에 야구 국가대표팀의 중심 타선으로 이승엽 선수와 함께 활약하며,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첫 올림픽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습니다. 같은 해 대구 두산 베어스전에서 KBO 통산 2000루타를 달성하며 31세 1개월 12일의 나이로 역대 5번째 기록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2001

[김응용 감독과의 불화 및 SK 와이번스 이적]

김응용 감독과의 불화로 출장 기회가 줄어들었고, 시즌 후 SK 와이번스와의 6:2 대형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이적했습니다. 이는 KBO 리그 역사상 전례 없는 빅 딜로 기록됩니다.

삼성 라이온즈의 김응용 감독과의 불화로 인해 출장 경기 수가 크게 감소하며 타격 부진을 겪었습니다. 시즌 후 김기태를 포함한 6명의 삼성 선수와 브리토, 오상민 선수 및 현금 11억이 오가는 SK 와이번스와의 6:2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이적했습니다. 이 트레이드는 KBO 리그 역사상 최고의 빅 딜로 불립니다.

2003

[생애 첫 한국시리즈 출전 (준우승)]

SK 와이번스 소속으로 데뷔 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았으나, 현대 유니콘스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김기태는 SK 와이번스 소속으로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거쳐 데뷔 13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 출전하는 감격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팀은 현대 유니콘스에 패배하며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2004

[현역 마지막 골든 글러브 수상]

3할 타율, 10홈런, 67타점을 기록하며 현역 선수로서 마지막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습니다.

김기태는 노련한 타격으로 3할 타율, 10홈런, 67타점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그의 현역 선수 생활 중 마지막으로 골든 글러브를 수상한 해로 기록됩니다.

2005

[15년간의 프로 선수 생활 은퇴]

대전 한화전 경기를 마지막으로 15년간의 빛나는 프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며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김기태는 대전 한화 이글스전을 끝으로 15년 동안 KBO 리그를 풍미했던 선수 생활을 공식적으로 마감하고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그는 은퇴 후 일본으로 건너가 지도자 연수를 받으며 새로운 야구 인생을 준비했습니다.

2006

[SK 와이번스 타격보조코치 활동 시작]

은퇴 후 일본 한신 타이거스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던 중 SK 와이번스의 타격보조코치로 조기 귀국하여 코치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선수 은퇴 후 일본 한신 타이거스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던 김기태는 SK 와이번스 코치진 개편으로 인해 조기 귀국하여 SK 와이번스의 타격보조코치를 맡으며 지도자로서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2008

[요미우리 자이언츠 코치 및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기여]

순수 한국인 최초로 일본프로야구 정식 코치로 요미우리 자이언츠 타격코치에 임명되었고, 베이징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팀 타격코치로 참가하여 대한민국 야구의 금메달 획득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2007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육성군 지도자 연수를 받은 김기태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타격코치로 정식 임명되며 순수 한국인 최초로 일본프로야구 정식 코치가 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또한 같은 해 베이징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팀의 타격코치로 활동하며 대한민국 야구의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 획득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2010

[LG 트윈스 2군 감독 선임]

박종훈 감독의 요청으로 귀국하여 LG 트윈스의 2군 감독으로 선임되며 KBO 리그 지도자 경력을 이어갔습니다.

2009년까지 요미우리 자이언츠 코치로 활동했던 김기태는 당시 LG 트윈스 박종훈 감독의 요청으로 귀국하여 LG 트윈스의 2군 감독으로 선임되었습니다. 이는 그의 KBO 리그 지도자 경력의 중요한 시작점이었습니다.

2011

[LG 트윈스 수석코치 및 감독 선임]

LG 트윈스 분위기 쇄신을 위해 수석코치로 보직을 변경한 뒤, 박종훈 감독 사임 후 LG 트윈스의 제10대 감독으로 선임되었습니다.

김기태는 LG 트윈스의 분위기 쇄신을 위해 2군 감독에서 수석코치로 보직을 변경했습니다. 이후 박종훈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시즌 최종전에 사임하자, LG 트윈스의 제10대 감독으로 선임되며 정식으로 1군 사령탑에 올랐습니다.

2012

['신동훈 대타 사건' 논란 및 징계]

SK 와이번스전에서 '투수 신동훈 대타 사건'으로 논란을 일으켜 KBO로부터 벌금 500만원과 엄중 경고를 받았습니다.

김기태 감독은 SK 와이번스전에서 LG 트윈스의 에러와 SK 선발 투수 윤희상의 호투에 밀려 3점 차로 끌려가던 중, 아웃카운트 하나를 남기고 마무리 투수 정우람이 등판하자 다음 타자 박용택 대신 투수 신동훈을 대타로 내세워 삼진을 당하게 했습니다. 이 사건은 상대 팀을 무시하는 행동으로 비춰져 큰 논란을 낳았고, 김기태 감독은 KBO로부터 벌금 500만원과 엄중 경고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포기태'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2013

[LG 트윈스 11년 만의 포스트 시즌 진출]

LG 트윈스를 11년 만에 포스트 시즌에 진출시키며 정규 시즌 2위로 이끌었고, 팬들로부터 '갓기태'라는 별명을 얻으며 큰 인기를 모았습니다.

김기태 감독은 부임 후 선수단 분위기를 쇄신하며 LG 트윈스를 2002년 이후 11년 만에 포스트 시즌으로 이끌었습니다. 특히 투수 류제국의 맹활약에 힘입어 정규 시즌 2위로 마감하며 팬들로부터 '갓기태'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큰 지지를 받았습니다. 비록 플레이오프에서 두산 베어스에 패해 한국시리즈 진출은 좌절되었으나, 팀의 재도약을 이끌었습니다.

2014

[LG 트윈스 감독 자진 사퇴 및 KIA 타이거즈 감독 취임]

LG 트윈스 감독으로서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습니다. 이후 6개월 만에 KIA 타이거즈의 새 감독으로 취임하며 KBO 리그에 복귀했습니다.

김기태 감독은 LG 트윈스의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습니다. 하지만 불과 6개월 뒤인 10월 28일, 선동열 감독의 뒤를 이어 고향 팀인 KIA 타이거즈의 제8대 감독으로 취임하며 KBO 리그 감독으로 전격 복귀했습니다.

2017

[KIA 타이거즈 한국시리즈 우승 이끌다]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서 시즌 최종전 대승으로 8년 만의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 베어스를 꺾고 선수 시절 이루지 못했던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하며 여러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김기태 감독은 KIA 타이거즈를 이끌고 kt 위즈와의 시즌 최종전에서 대승을 거두며 2009년 이후 8년 만이자 개인 첫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어진 한국시리즈에서는 두산 베어스를 꺾고 선수 시절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한국시리즈 우승의 영광을 안았습니다. 이로써 지명타자 출신 감독 최초 우승, 타이거즈 역사상 최초 호남권 출신 감독 우승 등 여러 기록을 세웠습니다.

2018

[임창용 선수 방출 결정으로 질책]

시즌 종료 전 팀의 레전드 임창용 선수를 방출시키며 팬들로부터 큰 질책을 받았습니다.

김기태 감독은 KIA 타이거즈의 상징적인 선수이자 팀의 레전드였던 임창용 선수의 방출을 결정했습니다. 이 결정은 많은 팬들에게 큰 충격과 아쉬움을 안겨주며 질책을 받았습니다.

2019

[KIA 타이거즈 감독직 시즌 중 자진 사퇴]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시즌 중 KIA 타이거즈 감독직에서 자진 사퇴했습니다. 이는 두 번째 시즌 중 사퇴입니다.

김기태 감독은 KIA 타이거즈의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시즌 중 감독직에서 자진 사퇴했습니다. 이는 LG 트윈스 감독 시절에 이어 두 번째로 시즌 중에 사령탑에서 물러난 사례입니다.

2021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 수석코치 활동]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부름을 받아 2군 수석코치로 활동하며 다시 한번 일본 무대에서 지도자 경력을 이어갔습니다.

김기태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부름을 받고 2군 수석코치로 다시 일본 무대에 진출했습니다. 그는 일본에서 젊은 선수들을 지도하며 지도자로서의 경험을 더욱 폭넓게 쌓았습니다.

2022

[요미우리 자이언츠 타격코치 선임 및 건강 문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타격코치로 선임되었으나, 시즌 전 폐결핵 진단을 받고 귀국하여 요양했습니다. 시즌 후 요미우리와 재계약하지 못했습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타격코치로 선임된 김기태는 시즌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폐결핵 진단을 받아 한국으로 귀국하여 잠시 요양했습니다. 동년 4월 팀에 복귀했으나, 시즌 후 요미우리와 재계약하지 못하고 팀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2023

[kt wiz 2군 감독 및 WBC 코치 중도 사임]

kt wiz의 2군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국가대표팀 타격코치로 발탁되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두 직책 모두 중도 사임했습니다.

김기태는 kt wiz의 2군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같은 해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국가대표팀 타격코치로도 발탁되었습니다. 그러나 건강상의 이유로 kt 2군 감독직을 1시즌 만에 사임했으며, WBC 국가대표팀 코치직도 중도 하차하고 심재학 코치에게 자리를 넘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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