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1960년)

영화 감독, 각본가, 프로듀서, 배우,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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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6:5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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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독, 각본가, 프로듀서, 배우,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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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화 감독이자 각본가, 프로듀서, 배우, 화가로 활동했다. 독특하고 파격적인 작품 세계를 선보이며 국내외 영화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세계 3대 국제 영화제 본상을 모두 석권한 유일한 한국인 감독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말년에는 성폭력 논란에 휩싸여 비판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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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

[봉화군에서 출생]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다.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으며, 이후 경기도 고양으로 이주하였다.

1968

[경기도 고양으로 이주]

국민학교 3학년 때 경기도 고양으로 이주하여 성장기를 보냈다.

국민학교 3학년이던 에 가족과 함께 경기도 고양으로 이주하여 성장기를 보냈다.

1980

[해병대 부사관 복무]

20세가 되던 해 해병대에 부사관으로 임관하여 5년간 복무했다.

국민학교 졸업 후 집안 형편으로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전수 학교와 전자 공장을 다녔다. 20세가 되던 해 해병대 부사관으로 임관하여 5년간 복무하였다.

1986

[화가 활동 및 봉사 시작]

해병대 제대 후 화가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장애인 보호 시설에서 봉사하고 야간학교 신학반을 다녔다.

해병대 제대 후부터 화가로 활동을 시작했고, 개신교 계열 남산 장애인 보호 시설에서 봉사자로 일하는 동시에 야간학교 신학반에서 1년간 신학을 공부하며 30세까지 서울에서 지냈다.

1990

[프랑스 유학 중 영화의 꿈을 키우다]

백남준 관련 기사를 계기로 31세에 프랑스 파리로 떠나 3년간 유럽 각지를 다니며 회화를 공부하던 중 영화에 매료되었다.

평소 그림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그는 백남준 관련 기사를 읽고 영감을 받아 31세가 되던 해인 1990년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1990년부터 1992년까지 3년간 프랑스와 유럽 각지를 다니며 회화 공부를 하던 중 우연히 영화관에서 《양들의 침묵》, 《퐁네프의 연인들》을 보고 영화감독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1993

[각본가로 데뷔]

프랑스 귀국 후 《화가와 사형수》로 영상작가교육원 창작 대상을 받으며 각본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1992년 귀국한 뒤, 이듬해 《화가와 사형수》로 영상작가교육원 창작 대상을 받았고, 1995년에는 《무단 횡단》으로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 대상을 수상하며 각본가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았다.

1996

[영화 감독 데뷔, 《악어》 개봉]

직접 연출한 영화 《악어》를 통해 영화 감독으로 데뷔하며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펼치기 시작했다.

각본가로 활동하다가 1996년작인 《악어》를 통해 자신이 직접 감독하여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의 초기작은 잔인하고 어두운 영상과 내용으로 이름을 알렸다.

2004

[베를린, 베네치아 감독상 석권]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사마리아》로,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에서 《빈 집》으로 연이어 감독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2004년 제54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사마리아》로 은곰상(감독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제61회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에서 《빈 집》으로 은사자상(감독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2011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상 수상]

영화 《아리랑》으로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상을 수상하며 세계 3대 영화제에서 모두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2011년 칸 영화제에서 영화 《아리랑》으로 '주목할 만한 시선' 상을 수상했다. 이로써 그는 베를린, 베네치아, 칸 등 세계 3대 영화제 본상을 모두 수상하는 감독이 되었다.

2012

[한국인 감독 최초 베네치아 황금사자상 수상]

《피에타》로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 한국인 감독 최초로 세계 3대 영화제 본상을 모두 석권하는 역사를 썼다.

제69회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에서 영화 《피에타》로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이는 한국인 영화 감독 최초로 세계 3대 영화제(베를린, 칸, 베네치아)의 본상을 모두 석권한 유일한 기록이다.

2014

[베니스 데이즈 최우수 영화상 수상]

영화 《일대일》로 제71회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베니스 데이즈 최우수 영화상을 수상했다.

제71회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에서 영화 《일대일》로 베니스 데이즈 최우수 영화상을 수상하며 연이은 국제 영화제 수상 경력을 이어갔다.

2017

[여배우 A씨, 성폭력 폭행·강요 혐의로 김기덕 고소]

여배우 A씨가 2013년 영화 촬영 중 폭행과 베드신 강요를 당했다고 폭로하며 고소하여 성폭력 논란이 불거졌다.

2017년 8월 동아일보 보도를 통해 여배우 A씨가 2013년 영화 <뫼비우스> 촬영 중 감정 이입을 핑계로 폭력을 당하고 대본에 없던 베드신 촬영을 강요받았다고 폭로하며 김기덕 감독을 폭행·강요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김기덕 감독은 뺨을 때린 것은 연기 지도 목적이었으며, 대본에 없는 베드신 강요는 없었다고 부인했다.

2018

[폭행 혐의 벌금형 및 PD수첩 성폭력 추가 폭로]

검찰은 폭행 혐의에 대해 벌금 500만원 약식기소 처분을 내렸고, 같은 해 에서 추가적인 성폭력 피해 사례가 폭로되어 논란이 확산되었다.

2018년 서울중앙지법은 폭행 혐의에 벌금 500만원으로 약식기소 처분을 내렸다. 같은 해 은 여러 피해자의 증언을 통해 김기덕 감독의 성폭행 의혹을 집중 보도하며 논란은 더욱 커졌다. 김기덕 감독은 이에 대해 호감에 의한 만남을 인정했지만 성폭행 혐의는 부인했다.

2019

[성폭력 폭로 관련 명예훼손 소송 제기]

한국여성민우회와 MBC를 상대로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으나, 소송은 기각되거나 불기소 처분되었다.

2019년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한국여성민우회에 대한 3억 손해배상 청구 소송 첫 변론에서 김기덕 감독은 자신을 성폭행범으로 몰았다며 민우회를 비난했다. 또한 MBC의 보도에 대해서도 10억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으나, PD수첩 보도는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며 불기소 처분되었다.

2020

[라트비아에서 코로나19로 사망]

라트비아 리가에서 코로나19로 인해 향년 59세로 사망했다.

2020년 12월 11일 라트비아 리가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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