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조 (육조)
중앙 행정 기관, 역사적 기관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6:56:56
공조(工曹)는 고려와 조선 시대의 핵심 중앙 행정 기관입니다. 국가의 건설, 제조, 농업, 교통 등 다양한 산업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했습니다. '공관', '공부' 등 여러 명칭을 거쳐 1390년 '공조'로 최종 확립되었고, 갑오개혁 이후 기능이 분리·통합되며 현대 한국 정부의 여러 부처로 계승되었습니다. 그야말로 한국 행정 역사의 산증인입니다.
BC 5C
고대 주나라에서 공조는 '대사공(大司空)'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공자가 53세 되던 해에 이 대사공 직책을 역임했다.
공자가 대사공을 지내다가 이듬해인 54세 되던 해에 대사구(大司寇, 지금의 법무부 장관 직에 해당) 지위로 자리를 옮겼다는 기록이 있다.
981
고려 성종 이전, 공조는 '공관(工官)'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성종 대에 이르러 '공부(工部)'로 변경되기 전까지 사용된 명칭이다.
고려 성종 이후 공조의 명칭이 '공부(工部)'로 변경되어 사용되었다.
1273
원 간섭기 초엽, 고려 원종 14년(1273년)에 공조의 전신인 공부(工部)가 잠시 혁파되었다.
1324
고려 충숙왕 11년(1324년)에 공부(工部)가 '공조(工曺)'라는 명칭으로 다시 환원되었다.
1325
공조(工曺)로 환원된 이듬해인 1325년에 다시 혁파되었다.
1356
고려 공민왕 5년(1356년)에 다시 '공부(工部)'로 환원되었다.
1359
고려 공민왕 8년(1359년)에 '전공사(典工司)'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365
고려 공민왕 14년(1365년)에 다시 '공부(工部)'가 되었다.
1368
고려 공민왕 17년(1368년)에 또 다시 '전공사(典工司)'로 환원되었다.
1390
고려 공양왕 1년(1390년)에 비로소 '공조(工曺)'라는 명칭으로 최종 확정되었으며, 육조 가운데 국가의 토목 공사, 공예품과 도량형 제작, 산림 및 농업 관리, 소택 관리, 교통 업무 등을 관장하게 되었다.
1894
갑오개혁이 실시된 대한제국 고종 31년(1894년)에 공조의 기능이 '공무아문(工務衙門)'과 '농상아문(農商衙門)'으로 분리되었다.
1895
공조에서 분리되었던 공무아문과 농상아문이 이듬해인 1895년에 '농상공부(農商工府)'로 합쳐졌다.
1910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시절에는 농상공부가 조선시대와 대한제국의 공조의 업무를 이어받았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노동국, 교통부, 선전부가 그 기능을 이어받았다.
1948
해방 이후 미군정 체제를 거쳐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 정부에서는 교통부, 상공부, 체신부, 농림부가 조선시대 공조의 기능을 이어받았다. 오늘날에는 국토교통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소벤처기업부, 환경부, 고용노동부 등 다양한 기관이 공조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