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연
사상가, 철학자, 음양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10-19- 23:37:47
BC 4C
중국 전국시대 제나라 사람으로, 제자백가 중 음양가의 대표적인 인물인 추연이 기원전 305년에 태어났다. 그는 맹자보다 조금 뒤의 사람으로 평가된다.
BC 3C
제나라 땅의 강한 미신적, 주술적, 신비적 사상 경향 속에서 추연은 중국 재래의 오행사상과 음양이원론을 결합해 독자적인 음양오행사상을 정립했다. 이 사상은 후대 중국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추연은 왕조가 그 왕조에 부여된 오행의 덕의 운행 논리에 따라 필연적으로 흥폐가 교체된다고 하는 일종의 신비적인 역사철학인 오덕종시설을 제창했다. 그는 진나라를 수덕의 왕조로 보고, 이전 왕조들을 토덕, 목덕, 금덕, 화덕에 배치하여 오행상극의 이론대로 각 왕조가 타도될 운명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물은 오행상극의 마지막으로, 진나라에서 왕조 순환이 그친다고 보아 진나라 왕조의 정통성과 절대성을 강조했다.
[적현신주설 제창]
우주 전체가 81개 주(洲)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중 9분의 1인 9주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중국이라는 적현신주설을 제창했다.
추연은 우주 전체가 81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의 9분의 1인 9주를 점거하고 있는 것이 적현신주 또는 간단히 신주이며, 이것이 바로 중국이라는 주장인 적현신주설을 제창했다. 이는 일종의 신비적인 우주철학으로, 《서경》 〈우공편〉에 쓰인 9주설을 확장하여 우주를 설명하려는 관념론적인 시도였다.
중국 전국시대 제나라 출신의 사상가이자 음양가의 대표 인물인 추연이 기원전 240년에 사망했다. 그는 음양오행사상, 오덕종시설, 적현신주설 등을 통해 중국 사상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BC 2C
[추연 사상의 한나라 시대 확산]
추연의 오덕종시설이 진나라 멸망 후 한나라 왕조의 정통성을 설명하고 역사를 예언하는 데 광범위하게 활용되었다.
추연의 오덕종시설은 그가 사망한 후 진나라가 망하고 한나라 왕조가 출현하는 현실을 목격하며, 새로운 한나라 시대의 왕조론에 의해 권력의 교체를 설명하고 역사의 예언을 하게 되는 데 활용되었다. 그리하여 추연에서 시작된 음양과 오행의 조합은 한나라 시대에서 더욱 복잡하고 세밀해져서 자연현상이나 인간사회의 모든 현상, 심지어 정치와 율령의 방식에까지 그 논리가 이용되며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