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범
태수, 관리, 후한의 인물, 삼국지 인물
최근 수정 시각 : 2026-01-26- 12:18:52
후한 말기 계양 태수로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조범은 난세의 소용돌이 속에서 생존을 위해 극적인 선택을 거듭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유비의 형주 평정 당시 조운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 항복을 선택하고, 동성이라는 인연을 이용해 조운과 의형제를 맺으며 정치적 안정을 꾀했습니다. 특히 자신의 형수인 번씨를 조운에게 개가시키려 했던 사건은 조범의 처세술과 당시의 관습, 그리고 조운의 결백한 성품이 충돌한 삼국지의 유명한 일화 중 하나입니다. 비록 자신의 뜻이 꺾이자 모반을 꾀하다 실패하여 도주하는 것으로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지만, 그의 이야기는 강대국 사이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지방 관료의 현실적인 고뇌와 한계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조범의 행보는 단순한 항복자를 넘어 권력의 이동 속에서 개인이 취할 수 있는 기회주의적 면모와 그 비극적 결말을 동시에 함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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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양 태수직 승계]
형의 뒤를 이어 후한의 계양군을 다스리는 태수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지방 관료로서 지역의 행정과 치안을 담당하며 세력을 유지하기 시작했습니다. 형이 죽고 난 뒤 그 자리를 이어받아 계양의 실권자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조범은 전임 태수였던 형이 사망하자 그 직위를 물려받아 계양군을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후한 말기의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계양군은 지리적 위치 덕분에 비교적 평온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가문을 지키고 지역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행정력을 집중하며 태수로서의 입지를 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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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의 남하와 압박]
북방을 평정한 조조의 대군이 형주를 침공하면서 지방 태수였던 그에게도 선택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거대한 세력의 움직임에 맞서기보다는 대세를 살피며 생존 전략을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향후 그가 취하게 될 항복과 전향의 전조 현상이었습니다.
형주 자사 유종이 조조에게 항복하면서 형주 남부의 4개 군도 거대한 권력의 재편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조범은 독자적인 군사력을 갖추기보다는 조조의 위세에 눌려 일단 관망하는 태도를 취했습니다.
이 시기 그는 자신의 지위를 보전하기 위해 중앙 권력과의 관계 형성에 부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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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군의 형주 평정]
적벽대전에서 승리한 유비군이 세력을 확장하며 형주 남부 4개 군을 정벌하기 위해 진격을 시작했습니다. 조운이 이끄는 정예군이 계양의 경계에 도달하자 지역 사회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외부의 강력한 침공에 대응해 성문을 닫고 방어 태세를 갖추었습니다.
유비는 적벽대전의 승세를 몰아 형주 남부의 영토권을 확보하기 위해 제갈량의 계책에 따라 군사를 보냈습니다.
조운은 선봉에 서서 압도적인 군사력과 명망을 바탕으로 계양군을 압박해 들어왔습니다.
조범은 무력 대결의 승산이 희박함을 직감하고 내부적으로 대응책 마련에 고심했습니다.
[부하 장수 진응의 패배]
계양의 장수 진응이 출전을 자처하여 조운의 앞길을 막아섰으나 압도적인 무력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배했습니다. 아끼던 장수의 패전 소식은 성안의 사기를 크게 꺾어 놓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의 저항은 무의미하다는 판단 아래 새로운 국면을 모색했습니다.
진응은 조운에게 맞서 용맹하게 싸웠으나 단 몇 합 만에 조운의 창끝에 제압당하고 말았습니다.
조운은 진응을 죽이지 않고 돌려보내며 조범에게 투항을 권고하는 대범함을 보였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조범은 조운의 무용과 인품에 경외감을 느끼며 항복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조운에 대한 무조건 투항]
성문을 열고 인장을 직접 받들어 조운에게 바치며 아무런 조건 없이 항복의 뜻을 전했습니다. 이는 불필요한 유혈 사태를 막고 자신의 태수 직위를 보전받기 위한 현실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조운은 그의 항복을 받아들였고 계양은 평화로운 상태로 유비군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조범은 성 밖으로 나와 무릎을 꿇고 태수의 인장을 조운에게 헌납하며 전폭적인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조운은 그의 태도를 높이 평가하여 성안의 백성들을 해치지 않고 평화적으로 입성했습니다.
이로써 조범은 유비 세력의 일원으로 편입되며 정치적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조운과의 의형제 맹약]
조운과 성씨가 같고 고향이 가깝다는 점을 내세워 형제의 연을 맺자고 제안하여 승낙을 받아냈습니다. 적대 관계였던 두 사람은 술잔을 나누며 의형제가 되었고 이를 통해 정치적 결속력을 강화했습니다. 사적인 인연을 공적인 관계에 활용하여 자신의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하려 했습니다.
조범은 조운과 같은 상산 조씨라는 점을 강조하며 친근감을 표시하고 적극적으로 다가갔습니다.
두 사람은 제단을 쌓고 하늘에 맹세하며 형제의 의를 맺어 주변의 축하를 받았습니다.
조범은 이 관계를 통해 유비군 내에서 조운의 영향력을 빌려 자신의 안전을 담보받고자 했습니다.
[성대한 환영 연회 개최]
의형제가 된 것을 축하하고 조운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청사에서 성대한 연회를 열었습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술과 음식을 나누며 두 사람의 신뢰 관계를 대외적으로 과시했습니다. 이 연회는 조범이 준비한 또 다른 은밀한 계획이 실행되는 무대이기도 했습니다.
조범은 계양군의 최고급 음식과 명주를 준비하여 조운을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연회 중 조범은 조운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하며 향후 계양의 통치에 대한 협력을 당부했습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조범은 미리 준비했던 형수 번씨를 연회장으로 불러내어 소개했습니다.
[형수 번씨의 혼사 제안]
절세가인으로 소문난 형의 미망인 번씨를 조운에게 개가시키려 하며 정략적인 결합을 시도했습니다. 형수와의 혼인을 통해 조운과 완전한 가족 관계를 형성하고 강력한 배경을 얻으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제안은 조운의 엄격한 윤리 의식과 충돌하며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번씨는 당시 매우 아름답고 지혜로운 여인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조범은 그녀를 정략의 도구로 활용했습니다.
그는 조운에게 형수가 홀로 지내는 안타까움을 전하며 영웅인 조운이 그녀를 거두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조범은 이 혼인이 성사되면 조운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혈연관계가 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조운의 분노와 제안 거절]
의형제를 맺은 관계에서 형수와 혼인하는 것은 인륜에 어긋난다는 조운의 강력한 꾸짖음을 듣고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조운은 동성 간의 혼인 또한 불가함을 역설하며 조범의 불순한 의도를 날카롭게 지적했습니다. 호의로 시작한 제안이 오히려 두 사람 사이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조운은 상을 뒤엎으며 크게 노하여 "이미 형제의 의를 맺었거늘 어찌 짐승 같은 짓을 권하느냐"고 일갈했습니다.
조범은 조운의 강직함에 당황하며 사과했으나 이미 분위기는 싸늘하게 식어버린 뒤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조범은 조운이 자신을 진심으로 믿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불안감에 휩싸이기 시작했습니다.
[모반 음모와 실패]
혼담 거절 이후 조운에게 보복하기 위해 부하 장수들과 공모하여 암살하거나 군사적 반란을 일으킬 음모를 꾸몄습니다. 하지만 이미 기세를 잡은 조운의 치밀한 방어망을 뚫기에는 역부족이었으며 계획은 사전에 누설되었습니다. 결국 신뢰를 잃고 쫓기는 신세로 전락하며 권력의 정점에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조범은 진응, 포룡 등과 결탁하여 조운을 습격하려 했으나 조운은 이미 그의 움직임을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조범의 계획을 역이용한 조운에 의해 반란 가담자들이 제압당하면서 음모는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자신의 목숨마저 위태로워진 상황에서 조범은 계양을 버리고 도주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도주 및 행방불명]
실패한 모반 이후 유비군의 추격을 피해 조조의 세력권으로 도주하며 역사의 무대에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태수로서 누렸던 모든 권위를 잃고 고립무원의 처지가 되어 정처 없는 유랑 길에 올랐습니다. 이후 조범의 구체적인 행적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조범은 밤을 틈타 소수의 심복만을 데리고 계양군을 탈출하여 북쪽의 조조 진영으로 향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조조에게 귀순하여 관직을 얻으려 했으나 이전만큼의 대우는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난세를 헤쳐 나가려 했던 한 지방 태수의 야심은 결국 허망한 도주와 행방불명으로 마침표를 찍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