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첨

정치인, 군인, 서예가,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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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1-26- 14:5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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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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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첨은 촉한의 승상 제갈량의 아들로, 아버지의 지략과 충의를 이어받아 국가의 위기 앞에서 끝까지 절개를 지킨 인물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영민함으로 기대를 모았으며, 아버지의 후광과 본인의 재능을 바탕으로 조정의 핵심 요직을 두루 거쳤습니다. 비록 정치적으로 환관 황호의 전횡을 완전히 막지 못했다는 비판도 존재하지만, 등애의 대군에 맞서 목숨을 걸고 싸운 면죽관 전투에서의 장렬한 전사는 그가 진정한 충신임을 증명합니다. 그의 생애는 위대한 아버지의 그림자 속에서도 국가를 위해 헌신했던 비극적인 영웅의 서사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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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

[제갈첨의 탄생]

촉한의 승상 제갈량과 황부인 사이에서 아들 제갈첨이 태어납니다. 그는 위대한 정치가의 아들이라는 배경 속에서 많은 이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제갈첨의 자는 시원이며, 제갈량이 늦은 나이에 얻은 귀한 아들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영특하여 제갈량은 형 제갈근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의 재능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일찍 성숙하여 큰 그릇이 되지 못할까 우려하는 아버지의 근심 섞인 사랑을 받았습니다.

234

[무향후 작위 계승]

아버지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세상을 떠나자 여덟 살의 나이로 가문의 작위를 이어받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어린 나이에 촉한 조정의 귀족으로서 공식적인 지위를 갖게 됩니다.

제갈량의 사후, 제갈첨은 아버지가 가졌던 '무향후' 작위를 정식으로 계승했습니다.
비록 어린 나이였으나 승상의 아들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백성들의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조정에서는 제갈량의 공적을 기려 그의 아들인 제갈첨을 특별히 대우했습니다.

243

[공주와의 혼인]

촉한의 황제 유선의 딸과 혼인하여 부마의 자리에 오릅니다. 이 혼인을 통해 제갈첨은 황실의 일원이 되어 정치적 영향력을 더욱 공고히 다집니다.

제갈첨이 17세가 되던 해에 황제 유선은 자신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습니다.
이로써 제갈첨은 황실과 혈연으로 연결된 핵심 인사가 되었습니다.
부마로서의 지위는 그가 향후 조정의 고위직으로 빠르게 승진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기도위 임명]

황실의 부마가 됨과 동시에 기도위에 임명되어 첫 관직 생활을 시작합니다. 기병을 통솔하고 황제를 보좌하는 역할을 맡아 실무적인 능력을 쌓아갑니다.

기도위는 황제를 가까이서 보위하는 무관직으로, 젊은 인재들이 거치는 요직이었습니다.
제갈첨은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조정의 업무에 참여하며 가문의 명성을 이어갔습니다.
황제의 사위로서 그는 궁중 내부의 사정에 밝았으며 점차 신임을 얻었습니다.

244

[우림중랑장 승진]

황실 친위대를 이끄는 우림중랑장으로 승진하며 군사적 지위가 높아집니다. 정예 부대를 관리하며 지휘관으로서의 역량을 시험받는 시기를 보냅니다.

우림중랑장은 황실의 안전을 책임지는 핵심적인 무관직 중 하나였습니다.
관직에 나간 지 불과 1년 만에 승진을 거듭하며 탄탄한 경력을 쌓았습니다.
당시 조정은 제갈량의 아들인 그에게 거는 기대가 매우 컸음을 알 수 있습니다.

245

[사성교위와 시중 역임]

사성교위와 시중을 차례로 역임하며 황제의 측근으로서 조언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군사적 직무와 정치적 자문 역할을 병행하며 조정의 핵심으로 자리 잡습니다.

시중은 황제의 곁에서 정사를 의논하는 직책으로, 제갈첨의 정치적 위상이 높아졌음을 의미합니다.
그는 뛰어난 학식과 가문의 덕망을 바탕으로 황제의 신임을 독차지했습니다.
많은 관리와 백성이 그의 말 한마디에 주목할 정도로 영향력이 커졌습니다.

246

[상서 임명]

국가 행정의 중심 기관인 상서대의 상서로 임명되어 실질적인 행정 사무를 총괄합니다. 아버지 제갈량이 정립한 행정 체계 안에서 국가 운영에 깊숙이 관여합니다.

상서는 국가의 주요 정책과 문서를 다루는 매우 중요한 실무직입니다.
제갈첨은 이를 통해 촉한의 내정을 관리하고 법령을 집행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빠른 승진은 가문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했던 촉한 사회의 열망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248

[백성들의 열렬한 숭상]

백성들은 제갈첨을 보며 돌아가신 제갈량을 떠올리고 그를 깊이 사랑하게 됩니다. 조정에서 좋은 정책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그것을 제갈첨의 공으로 돌렸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촉한의 백성들은 새로운 법이나 혜택이 생기면 서로 '제갈첨이 하신 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실제 공적 여부와 상관없이 그의 존재 자체가 민심을 하나로 묶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대중적인 인기는 그에게 큰 정치적 자산인 동시에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250

[예술적 재능의 발현]

정치적 활동 외에도 서예와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문화적인 명성을 쌓습니다. 특히 기억력이 매우 좋아 한 번 본 것은 잊지 않는 총명함으로 유명했습니다.

제갈첨은 서화에 능하여 많은 예술 작품을 남겼으며, 당대 지식인들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의 박학다식함과 총명함은 아버지 제갈량의 재능을 가장 많이 닮았다는 찬사를 이끌어냈습니다.
문무를 겸비한 그의 모습은 촉한 최후의 보루로서 손색이 없는 이미지였습니다.

253

[위장군 승진]

군사직 최고의 요직 중 하나인 위장군에 임명되어 군권을 장악합니다. 국가 방위의 중책을 맡아 외세의 침략에 대비하는 핵심 지휘관으로 부상합니다.

위장군은 장군직 중에서도 서열이 매우 높은 자리로, 제갈첨의 군사적 권위가 최고조에 달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수도 성도와 인근 지역의 방어 체계를 점검하며 군사력을 유지하는 데 힘썼습니다.
이 시기 그는 촉한의 실질적인 군부 지도자 중 한 명으로 대우받았습니다.

[영중서사 겸임]

중서의 업무를 총괄하는 영중서사를 겸임하며 권력의 정점에 다가섭니다. 군사권에 이어 행정 및 비서 업무까지 장악하며 조정의 모든 의사 결정에 참여합니다.

중서사는 황제의 칙령을 초안하고 기밀 업무를 다루는 기관이었습니다.
군사와 행정을 모두 아우르는 그의 지위는 사실상 승상의 권한에 버금가는 것이었습니다.
제갈첨은 유선의 곁에서 국가의 대소사를 직접 보좌하며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261

[평상서사 임명]

행도호 위장군으로서 동궐과 함께 상서대의 업무를 공동으로 관리하는 평상서사에 임명됩니다. 사실상 촉한 정권의 최고 실권자로서 국정을 이끌게 됩니다.

이때부터 제갈첨은 국가의 행정 실무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위치에 올랐습니다.
동궐과 협력하여 국가를 운영했으나, 환관 황호의 득세를 완전히 저지하지는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너져가는 촉한의 기틀을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환관 황호와의 갈등]

조정을 장악한 환관 황호의 전횡을 근심하며 그를 견제하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유선의 눈을 가린 황호의 세력이 워낙 강해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지는 못합니다.

제갈첨은 황호가 국정을 어지럽히는 것을 보고 개탄했으나, 직접적인 충돌은 피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동궐 역시 황호와 타협하는 태도를 보였고, 이는 훗날 촉한 멸망의 한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합니다.
가문의 명예를 중시했던 그는 조정의 혼란 속에서 자신의 입지를 고민하며 조심스러운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262

[강유 소환 건의]

무리한 북벌을 강행하는 강유를 우려하여 그를 군 지휘권에서 해임하고 소환할 것을 건의합니다. 잦은 전쟁으로 국력이 소모되는 것을 막고자 했던 전략적 판단이었습니다.

제갈첨은 강유의 군권을 박탈하고 염우에게 군대를 맡길 것을 유선에게 제안했습니다.
그는 내부의 안정이 우선이라고 판단했으나, 강유는 이를 따르지 않고 답중에 주둔하며 군을 유지했습니다.
이러한 조정 내부의 균열은 위나라의 대대적인 침공을 앞두고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습니다.

263

[위나라의 대규모 침공]

위나라의 종회와 등애가 대군을 이끌고 촉한을 공격해오자, 제갈첨은 군대를 이끌고 방어에 나섭니다. 국가의 존망이 걸린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며 수도를 떠납니다.

위나라는 세 갈래 길로 촉한을 압박했으며, 특히 등애의 부대는 험준한 산길을 통해 우회 공격을 시도했습니다.
제갈첨은 성도를 지키는 주력군을 맡아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북진했습니다.
많은 이들은 제갈량의 아들인 그가 다시 한번 기적을 일으켜주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부현 도착과 전략 논쟁]

전투를 위해 부현에 도착했으나, 등애의 선봉군에 밀려 전진하지 못하고 주저합니다. 이때 황숭이 험준한 지형을 선점하여 적을 막아야 한다고 여러 번 간언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황숭은 적이 평지에 나오기 전에 요충지를 장악해야 한다고 피를 토하며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제갈첨은 신중한 태도를 보이며 기회를 놓쳤고, 결국 등애의 대군이 평원으로 진출하게 허용했습니다.
이 결정은 향후 면죽관 전투의 형세를 결정짓는 뼈아픈 실책이 되었습니다.

[면죽관 후퇴]

등애의 선봉군에게 패배하자 군대를 면죽관으로 물려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합니다. 성도로 가는 마지막 길목을 지키기 위해 배수의 진을 치고 적과 맞섭니다.

제갈첨은 면죽관에서 군사를 재정비하며 결사항전의 의지를 다졌습니다.
등애는 그의 위치를 파악하고 심리전을 가하며 항복을 권유하기 시작했습니다.
관문 주변에는 이미 위나라의 대군이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어 긴장감이 극도로 높아진 상태였습니다.

[등애의 회유 거절]

등애가 항복하면 '낭야왕'에 봉하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편지를 보냅니다. 제갈첨은 이를 가문의 수치로 여기고 제안을 보낸 사자의 목을 베어 단호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등애는 제갈첨의 명성을 이용하여 쉽게 성을 얻고자 왕의 작위까지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제갈첨은 분노하며 사자를 처형함으로써 적과의 타협은 없음을 명확히 했습니다.
그는 아버지 제갈량이 지킨 충의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 죽음을 각오한 선택을 내렸습니다.

[장렬한 전사와 멸망]

등애의 대군과 벌인 면죽관 전투에서 아들 제갈상과 함께 끝까지 싸우다 전사합니다. 그의 죽음과 함께 촉한의 마지막 저항선은 무너졌으며 곧이어 나라가 멸망에 이릅니다.

제갈첨은 갑옷을 입고 적진으로 뛰어들어 마지막까지 용맹하게 검을 휘둘렀습니다.
그의 아들 제갈상 역시 아버지를 따라 적진에 몸을 던져 함께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유선은 결국 등애에게 항복하며 제갈량으로부터 시작된 촉한의 역사는 막을 내렸습니다.

[역사적 평가와 후손]

비록 전술적 실책은 있었으나, 끝까지 적에게 굴복하지 않은 그의 절개는 훗날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습니다. 그의 다른 아들 제갈경은 살아남아 진나라에서 가문의 명맥을 잇게 됩니다.

후대의 역사가들은 제갈첨이 비록 승리하지는 못했으나 승상의 아들로서 부끄럽지 않은 최후를 맞이했다고 평가합니다.
그의 장렬한 전사는 촉한 최후의 자부심으로 남았으며, 충절의 상징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살아남은 아들 제갈경은 하동태수를 역임하며 제갈씨 가문의 지혜와 전통을 이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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