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강
강, 하천, 국가 하천, 지리, 호남 지방
최근 수정 시각 : 2026-01-28- 14:32:00
남도의 젖줄이자 호남의 심장인 영산강은 한반도 서남부를 적시며 고대 마한 문명부터 현대 산업화까지 우리 민족의 흥망성쇠를 함께해 왔습니다. 나주의 영산포를 중심으로 거대한 물길이 열어준 풍요는 '쌀의 보고' 호남 평야를 일구었으며, 흑산도 사람들이 일궈낸 이름 '영산'은 오늘날까지도 강물 위에 흐르고 있습니다. 수천 년간 자유로이 흐르던 물길은 근현대에 이르러 대규모 하구둑과 댐 건설로 거대한 변화를 맞이했으나, 여전히 남도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잇는 생명의 선으로 그 가치를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자연과 인간이 빚어낸 영산강의 역사는 단순한 물줄기의 흐름을 넘어 우리 현대사의 굴곡을 그대로 투영하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BC 2C
[마한 문화의 발상]
비옥한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마한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강줄기를 따라 형성된 평야 지대는 농경에 적합하여 인류가 정착하기 최적의 조건을 제공했습니다. 수로를 이용한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거대한 정치 집단이 등장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나주 반남면과 영암 시종면 일대의 거대 고분군이 이 시기의 세력을 증명합니다.
영산강 하류의 넓은 충적 평야는 벼농사의 중심지로 기능했습니다.
당시의 옹관묘 문화는 한반도 내에서도 매우 독특한 영산강 유역만의 특징으로 꼽힙니다.
400
[백제의 영역 확장]
영산강 유역의 소국들이 백제의 세력권 안으로 점진적으로 흡수되었습니다. 백제는 강줄기를 따라 행정 구역을 정비하며 호남 지역 지배력을 강화했습니다. 강을 통한 운송 체계가 정비되면서 중앙 정부와의 소통이 더욱 원활해졌습니다.
백제 성왕 시기를 전후하여 영산강 유역에 대한 직접 지배가 완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후 나주는 백제 시대 '발라군'으로 불리며 지역의 거점으로 성장했습니다.
강 주변에 산성이 축조되어 방어 및 행정의 중심지로 활용되었습니다.
903
[왕건의 나주 점령]
고려 태조 왕건이 수군을 이끌고 영산강 물길을 따라 나주를 공략하며 후삼국 통일의 기반을 닦았습니다. 영산강의 전략적 가치를 알아본 왕건은 배를 타고 강 깊숙이 침투하여 후백제의 뒤를 쳤습니다. 이 사건은 영산강이 군사적 요충지임을 역사적으로 증명한 결정적 장면입니다.
왕건은 장화왕후 오씨와 나주 완사천에서 만나 인연을 맺었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이 승리를 통해 왕건은 전라도 지역에 강력한 교두보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영산강은 당시 대규모 함선이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수심이 깊고 강폭이 넓었습니다.
983
[나주목의 설치]
고려 성종 시기 전국 12목 중 하나인 나주목이 설치되며 영산강 유역이 행정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강을 끼고 발달한 나주는 전라도라는 명칭의 유래가 될 만큼 큰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영산강은 나주목의 풍요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자원이었습니다.
전주와 나주의 첫 글자를 따서 '전라도'라는 명칭이 만들어졌습니다.
나주목은 주변 하천 유역의 생산물을 집결시키고 분배하는 허브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후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나주는 호남의 정치, 경제 중심지 지위를 유지했습니다.
1337
[영산강 이름의 유래]
고려 말기 왜구의 침입을 피해 흑산도 영산현 사람들이 나주 영산포에 정착하며 강의 이름이 굳어졌습니다. 이들이 고향의 이름을 따서 정착지를 '영산포'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 강 전체의 명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금강, 사호강 등 구간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던 물길이었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의 기록에 따르면 영산포에서 강의 명칭이 유래되었음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흑산도에서 온 사람들이 전한 홍어 문화는 영산포의 대표적인 특산물이 되었습니다.
이 시기부터 영산강은 섬과 육지를 잇는 문화적 가교 역할을 강화하게 됩니다.
1414
[영산창의 개설]
조선 초기 영산강변에 조세로 거둔 곡물을 보관하고 운송하는 조창인 영산창이 설치되었습니다. 영산강의 깊은 물길은 거대한 조운선이 드나들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호남 평야의 쌀이 이 물길을 통해 한양으로 올라가며 국가 경제를 지탱했습니다.
영산창은 당시 전라도 남부 지역의 조세를 담당하는 핵심적인 물류 거점이었습니다.
강물을 이용한 조운 시스템은 육로 운송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대규모 운송이 가능했습니다.
영산강 유역의 안정적인 관리는 조선 왕조의 재정 자금 확보에 필수적이었습니다.
1897
[목포항의 개항]
영산강의 하구인 목포가 공식적으로 개항하며 현대적 무역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영산강을 통해 모여든 곡물과 물자가 목포항을 거쳐 외부로 수출되기 시작했습니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목포는 일약 근대 도시로 급성장하며 영산강 역사의 새로운 막을 열었습니다.
목포는 고종의 칙령에 의해 개항된 자주적인 항구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강 하구의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호남의 물자가 집결되는 천혜의 요새였습니다.
[출처: 목포시사](https://www.mokpo.go.kr)
1914
[호남선 철도의 개통]
호남선 철도가 부설되면서 영산강의 수운 기능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철도는 강물보다 빠른 운송 수단으로서 물류의 중심축을 옮겨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나주와 영산포는 철도와 물길이 만나는 거점으로 중요하게 다뤄졌습니다.
영산포역이 설치되어 철도와 강 배편이 연계되는 물류 복합 거점이 형성되었습니다.
이는 전통적인 수운 중심의 물류 체계가 근대적 철도 체계로 전환되는 과도기적 시점이었습니다.
강 주변의 상업 도시들은 철도역을 중심으로 재편되었습니다.
1915
[영산포 등대의 건립]
영산강 내륙 항구인 영산포에 배들의 안전한 항해를 돕기 위한 등대가 세워졌습니다. 이는 강물 위에 세워진 우리나라 유일의 내륙 등대로서 당시 영산강 수운의 위상을 상징합니다. 등대 불빛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드나들던 수많은 배의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콘크리트 구조로 만들어진 이 등대는 수위 측정 기능도 겸하고 있었습니다.
영산강 수운이 얼마나 활발했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근대 문화유산입니다.
현재도 영산포에 원형이 보존되어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1930
[일제의 수탈과 제방 공사]
일제가 호남의 곡물을 더 효율적으로 수탈하기 위해 영산강변에 대규모 제방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상습 침수 구역이었던 평야 지대를 개간하여 경작지를 넓히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강폭이 좁아지고 물길이 인위적으로 고정되는 변화를 겪었습니다.
대규모 하천 정비 사업을 통해 강 주변의 늪지가 논으로 바뀌었습니다.
강의 자연스러운 곡류가 차단되고 직강화 공사가 일부 진행되었습니다.
농민들은 증산된 쌀을 수탈당하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1971
[1단계 대단위 종합개발]
정부가 영산강 유역의 고질적인 가뭄과 홍수를 해결하기 위해 종합 개발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영산강 유역을 체계적으로 관리하여 농업 생산력을 극대화하려는 현대적 프로젝트였습니다. 이 계획은 영산강의 물리적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세계은행(IBRD) 차관 등을 도입하여 대규모 예산이 투입된 국책 사업이었습니다.
용수 확보와 홍수 방지를 목적으로 대규모 댐 건설이 핵심으로 포함되었습니다.
농경지 확장과 농업 기반 시설의 현대화가 동시에 추진되었습니다.
1976
[4대 댐의 완공]
장성, 담양, 광주, 나주에 이르는 영산강 상류의 4대 주요 댐이 모두 완공되었습니다. 이 댐들은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하류의 홍수 피해를 줄이는 조절판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영산강은 인간의 관리 아래 놓인 거대한 수자원 시스템으로 변모했습니다.
장성댐, 담양댐, 광주댐, 나주댐의 완공으로 막대한 양의 용수를 저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반면, 댐 건설로 인해 상류 일부 지역이 수몰되는 아픔도 겪었습니다.
하천 유지 용수 조절을 통해 가뭄 극복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1977
[마지막 황포돛배 운행]
영산강의 상징이었던 황포돛배가 수운의 쇠퇴와 함께 공식적인 운행을 사실상 멈추게 되었습니다. 교량 건설과 댐으로 인한 유량 변화는 돛배가 다니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영산포의 소금배 길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1977년 영산강 하구둑 공사가 시작되면서 돛배의 통행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졌습니다.
과거 소금과 젓갈을 싣고 나주까지 거슬러 올라오던 풍경이 사라졌습니다.
이후 관광 목적으로 복원되기 전까지 긴 공백기를 갖게 됩니다.
1978
[영산강 유역 종합계획 확정]
전남 7개 시군을 포괄하는 영산강 유역 종합 개발 2단계 계획이 본격적으로 가동되었습니다. 하구둑 건설을 포함한 대규모 간척 사업이 주요 골자로 포함되었습니다. 이 사업을 통해 대규모 영농 단지를 조성하여 호남 평야의 위상을 높이고자 했습니다.
목포와 영암 사이를 잇는 하구둑 건설이 핵심 과제로 부상했습니다.
이 사업은 홍수 방지뿐만 아니라 담수호를 조성하여 공업 및 농업용수를 공급하려 했습니다.
환경 변화에 대한 우려보다는 개발을 통한 경제 성장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1981
[영산강 하구둑 완공]
목포시 옥암동과 영암군 삼호읍을 잇는 거대한 하구둑이 마침내 준공되었습니다. 강과 바다가 차단되면서 영산강은 거대한 인공 호수가 되었고, 하구의 조수 간만의 차로 인한 염해 걱정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영산강의 천년 수운 역사는 완전히 마침표를 찍게 되었습니다.
총연장 4,351m의 거대한 방조제가 쌓여 영산강 하구를 완전히 가로막았습니다.
하구둑 완공으로 영산포까지 드나들던 바닷길이 완전히 차단되었습니다.
동시에 영암과 목포를 잇는 새로운 육상 교통로가 확보되었습니다.
1985
[영산호 관광지 지정]
하구둑 건설로 만들어진 거대 담수호인 영산호 일대가 관광지로 지정되었습니다. 넓은 호수와 하구둑의 웅장한 모습은 새로운 관광 명소로 주목받았습니다. 강물이 가로막힌 대신, 그 위에는 유람선이 뜨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유원지가 들어섰습니다.
전라남도는 영산호 주변을 대규모 관광 단지로 조성할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낚시와 수상 레저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하구둑 기념관이 건립되어 개발 성과를 홍보하는 장으로 활용되었습니다.
1989
[3단계 개발 사업 착공]
영산강 3단계 대단위 종합 개발 사업이 영암호와 금호호를 중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대규모 간척지를 조성하여 미래의 식량 기지를 구축하려는 야심 찬 계획이었습니다. 영산강의 물길은 이제 논과 밭을 적시기 위한 정교한 수로 체계로 더 복잡해졌습니다.
영암 방조제와 금호 방조제 건설을 통해 새로운 땅이 생겨났습니다.
이 지역은 훗날 영암 F1 경기장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수질 오염에 대한 경고음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합니다.
1994
[영암호 담수화 완료]
영암 방조제의 완공으로 영산강 물줄기와 연결된 영암호가 담수화를 마쳤습니다. 대규모 농경지에 물을 공급할 수 있는 안정적인 수원이 확보되었습니다. 그러나 물의 흐름이 정체되면서 퇴적물이 쌓이고 수질이 나빠지는 부작용도 본격화되었습니다.
바다였던 곳이 호수로 변하면서 주변 생태계에 격변이 일어났습니다.
갯벌이 사라지고 민물 어종이 주를 이루는 환경으로 재편되었습니다.
철새들의 도래지로 각광받는 등 생태적 변화의 양면성을 보여주었습니다.
1996
[수질 오염 최악 기록]
하구둑으로 인해 물길이 막힌 영산강의 수질이 4대강 중 최하위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상류에서 유입되는 생활 하수와 농축산 폐수가 정체된 강물 속에서 썩어갔습니다. '죽음의 강'이라는 오명이 붙으며 영산강을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생화학적 산소요구량(BOD) 수치가 급격히 상승하며 물고기 폐사 사건이 빈번해졌습니다.
광주광역시 등 대도시의 하수 처리 용량이 한계에 도달한 것이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환경 단체를 중심으로 하구둑 개방 논의가 처음으로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2004
[영산포 홍어 축제 개최]
수운은 사라졌지만 영산강이 남긴 문화유산인 홍어를 주제로 한 첫 축제가 나주 영산포에서 열렸습니다. 강물길이 열어준 독특한 식문화가 지역의 대표적인 브랜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영산강의 역사를 문화 콘텐츠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이 결실을 본 사건입니다.
과거 흑산도 홍어가 배를 타고 오며 삭혀졌던 유래를 적극 홍보했습니다.
영산포 홍어 거리가 조성되어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했습니다.
강의 물리적 복원 이전에 문화적 복원이 먼저 이루어진 사례입니다.
2008
[황포돛배 관광 복원]
끊겼던 영산강의 물길 위에 관광객을 태운 황포돛배가 다시 띄워졌습니다. 비록 과거처럼 바다까지 나가지는 못하지만, 강바람을 맞으며 영산강의 옛 풍경을 재현했습니다. 이는 영산강을 단순한 농업용수로가 아닌 문화 공간으로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주시가 주도하여 전통적인 형태의 돛배를 재현해 건조했습니다.
영산포에서 승촌보 인근까지의 구간을 운행하며 인기를 끌었습니다.
강의 정취를 느끼려는 관광객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콘텐츠가 되었습니다.
2009
[4대강 살리기 사업 착공]
영산강의 대대적인 정비와 복원을 목표로 하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강바닥을 준설하고 보를 설치하여 수량을 확보하며 수변 공간을 공원화하는 대공사였습니다. 영산강 역사상 하구둑 건설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지형 변화가 예고되었습니다.
나주 영산강 둔치에서 대규모 기공식이 개최되며 사업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준설을 통해 물그릇을 키우고 수질을 개선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이 발표되었습니다.
동시에 환경 파괴를 우려하는 시민 사회의 강력한 반대 운동도 병행되었습니다.
2011
[승촌보 및 죽산보 완공]
영산강의 수위를 조절하고 용수를 확보하기 위한 승촌보와 죽산보가 완공되었습니다. 거대한 보의 설치로 강물의 수위가 일정하게 유지되며 강변에는 대규모 생태공원이 조성되었습니다. 보의 화려한 조명은 야간의 새로운 볼거리가 되었으나, 정체된 물에 대한 논란은 지속되었습니다.
승촌보는 쌀 알갱이를 형상화한 독특한 디자인으로 지어졌습니다.
죽산보에는 배가 지나갈 수 있는 운하 형태의 통로가 만들어졌습니다.
보 완공으로 인해 주변 친수 공간이 정비되어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었습니다.
2012
[영산강 자전거길 개통]
담양댐에서 목포 하구둑까지 이어지는 133km의 영산강 종주 자전거길이 완전히 열렸습니다. 강줄기를 따라 남도의 풍경을 만끽하며 달릴 수 있는 환상적인 코스가 완성되었습니다. 전국의 자전거 동호인들이 영산강으로 모여들며 강의 가치를 재발견했습니다.
메타세쿼이아 길, 대나무 숲 등 영산강의 명소들을 연결하는 코스입니다.
국토 종주 자전거길의 일환으로 관리되어 최고의 노면 상태를 자랑합니다.
영산강 유역의 관광 지도를 바꾼 혁명적인 사업으로 평가받습니다.
2014
[하구둑 도로 확장 완공]
목포와 영암을 잇는 영산강 하구둑 상부 도로가 왕복 8차선으로 확장 개통되었습니다. 만성적인 교통 체증을 해결하고 영암 대불산업단지와의 물류 소통을 원활하게 했습니다. 영산강은 이제 하구둑을 통해 지역 경제를 잇는 거대한 육로 가교가 되었습니다.
교통 분산을 위해 배수갑문 구간 위에 별도의 교량을 추가로 설치했습니다.
출퇴근 시간대 정체가 극심했던 목포 인근의 교통 환경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습니다.
전남 서남권의 접근성을 높이는 핵심 인프라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2015
[친환경 수변 공원 조성]
광주광역시 구간의 영산강 둔치에 대규모 유채꽃밭과 생태 숲이 조성되었습니다. 오염된 하천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시민들이 꽃과 나무를 즐기는 힐링 공간으로 변모했습니다. 도심 속 영산강이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한 결과였습니다.
매년 봄이면 유채꽃이 만발하여 광주의 대표적인 나들이 장소가 되었습니다.
철새 서식지를 보호하기 위한 생태 보존 구역도 함께 관리되고 있습니다.
다양한 체육 시설과 산책로가 확충되어 이용객 만족도가 매우 높습니다.
2018
[승촌보 상시 개방]
수질 개선과 자연성 회복을 위해 승촌보의 수문을 상시 개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보 건설 이후 나타났던 녹조 현상과 퇴적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이었습니다. 강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면서 모래톱이 드러나는 등 과거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환경부 결정에 따라 수위를 점진적으로 낮추며 모니터링을 실시했습니다.
보 개방 이후 강바닥의 산소 농도가 높아지는 등 긍정적인 신호가 포착되었습니다.
농민들의 농업용수 확보 문제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함께 논의되었습니다.
2021
[죽산보 해체 결정 발표]
국가물관리위원회가 영산강 죽산보를 해체하기로 최종 결정했습니다. 경제성과 수질 개선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였습니다. 다만 실제 해체 시기는 지역 사회의 충분한 동의와 물 이용 대책 마련 이후로 유예되었습니다.
죽산보는 보를 유지하는 것보다 해체하는 것의 비용 대비 편익(B/C)이 낮게 평가되었습니다.
해체 결정에 대해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도 찬반 논의가 뜨겁게 일어났습니다.
강의 자연성 회복이라는 가치가 정책의 전면에 등장한 역사적 결정이었습니다.
2023
[지류 하천 정비 강화]
영산강 본류의 수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지류인 황룡강과 광주천 정비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지류에서 들어오는 오염원을 차단해야만 영산강이 살아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하천 정비와 하수 처리 시스템 고도화가 병행되었습니다.
광주천의 유지 용수 공급을 늘려 자정 작용을 돕는 사업이 진행되었습니다.
황룡강 유역에는 친환경 습지 보호 구역이 확대되었습니다.
본류와 지류를 잇는 통합적인 물 관리 시스템이 구축되었습니다.
2024
[영산강 수질 정화 선박 투입]
영산호 내부에 쌓인 오염 물질을 직접 수거하는 최첨단 수질 정화 선박이 투입되었습니다. 하구둑으로 인해 갇힌 물의 한계를 기술로 극복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선박은 강바닥의 쓰레기와 오염된 퇴적물을 걸러내며 강의 자정 능력을 보조했습니다.
태양광 에너지로 구동되는 친환경 정화 로봇 선박이 시범 운영되었습니다.
수질 실시간 모니터링 장비가 탑재되어 오염 발생 시 즉각 대응이 가능해졌습니다.
정체된 수역의 수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속적인 투자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2025
[통합 물 관리 비전 선포]
영산강 유역의 지자체들이 모여 기후 위기 시대에 대응하는 '영산강 통합 물 관리 비전'을 선포했습니다. 가뭄과 홍수 예방은 물론, 수생태계 복원과 관광 자원화를 아우르는 종합 로드맵입니다. 영산강은 이제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공존의 물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로 인한 극한 가뭄 상황에서의 용수 배분 원칙이 정립되었습니다.
강 주변의 역사 문화 유산을 자전거길과 연계한 '영산강 르네상스' 프로젝트가 포함되었습니다.
민·관·학이 협력하여 영산강의 미래를 설계하는 거버넌스가 강화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