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상시
환관 집단, 정치 세력, 후한 말 권신
최근 수정 시각 : 2025-10-19- 23:27:42
후한 말 영제 치세, 국정을 농락한 환관 집단. 매관매직으로 부를 축적하고 백성을 수탈해 황건적의 난 등 여러 반란을 야기했다. 영제의 총애를 받으며 절대적인 권력을 휘둘렀고, 정적을 모함하고 영웅들의 공적을 가로채는 등 만행을 저질렀다. 대장군 하진을 암살하며 십상시의 난을 일으켰으나, 원소에게 살해당하며 후한 멸망의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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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상시의 국정농단과 매관매직 시작]
후한 영제 치세에 10여 명의 중상시, 즉 환관들이 국정을 농락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모든 관직에 가격을 붙여 매관매직을 일삼으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특히 영제는 수장 장양을 아버지, 부수장 조충을 어머니라 부를 정도로 이들을 신뢰했다. 지방 수령의 임기를 보장하지 않고 수시로 독우를 파견해 퇴출시켜, 관직을 구매한 자들이 백성을 수탈하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도처에서 크고 작은 난이 발생했다.
후한 말 제12대 황제 영제(靈帝)의 치세 때 십상시라 불리는 10여 명의 중상시, 즉 환관들이 국정을 장악하고 농락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본래 태감 조등을 모시던 환관들로, 역사서 《후한서》에 따르면 많은 봉토를 거느리고 그들의 부모형제는 모두 높은 관직에 올라 위세가 대단했다. 특히 영제는 십상시의 수장 장양을 아버지, 부수장 조충을 어머니라 부르며 따랐다. 이들은 모든 관직에 가격을 붙여 판매하는 매관매직을 자행했으며, 삼공은 1천만 전, 자사는 2천만 전, 태수는 2천만 전, 현령은 4백만 전 등이었다. 관직만 팔았을 뿐 임기를 보장하지 않고 수시로 독우를 파견해 퇴출시켰기에 지방 수령의 임기가 1년을 넘기는 경우가 드물었다. 이 때문에 돈을 주고 관직을 산 자들은 본전을 뽑기 위해 백성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징수하며 수탈했고, 이는 도처에서 난이 일어나는 원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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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상시의 폭정으로 황건적의 난 발발]
십상시의 매관매직과 백성 수탈로 인한 민심 악화와 혼란 속에서, 장각을 수괴로 옹립한 대규모 반란인 황건적의 난이 발생했다. 이들은 난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정적을 모함하고, 뇌물을 바치지 않는 지휘관에게는 적과 내통한다는 누명을 씌워 삭탈관직 시키는 등 부를 축적했다.
십상시의 매관매직과 백성 수탈로 도처에서 크고 작은 난이 무수히 발생했는데, 그중 가장 규모가 방대한 것이 바로 장각을 수괴로 옹립한 황건적의 난이다. 십상시들은 오히려 이를 이용해 자신들의 정적들을 황건적이나 다른 난을 일으킨 자들과 연루시키는 모함을 저질렀다. 또한 자신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는 지휘관에게는 싸울 의지가 없고 오히려 적과 내통한다는 식으로 무고하기까지 했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피해자가 과거 유비와 공손찬에게 글공부를 가르쳤던 노식이었다. 이들이 무고한 관리에게 누명을 씌워서 삭탈관직을 시키는 이유는 그 관직을 다른 사람에게 다시 팔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십상시들은 관직 장사를 하면서 부를 축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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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상시의 난 발발 및 대장군 하진 암살]
황건적의 난 진압 후에도 정신 못 차린 십상시들은 황보숭, 주준, 노식, 손견, 조조 등 영웅들의 공적을 지우고 자신들이 열후에 봉해지는 만행을 저질렀다. 결국 대장군 하진과 대립하게 되었고, 하진을 암살하며 십상시의 난을 일으켰다. 이 난으로 2000여 명의 환관과 사람들이 죽었으며, 동탁이 이 혼란을 틈타 권력을 장악했다.
황보숭, 주준, 노식, 손견, 조조 등 당대의 영웅들이 활약하여 황건적의 난을 간신히 진압했음에도 불구하고, 십상시는 손견을 의랑 관직으로 임명해 보직해임 시키거나 조조를 한직으로 보내버리는 등 그들의 공적을 다른 혐의를 만들어서 지워버렸다. 오히려 황건적의 난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은 자기네들이 공적을 가로채 스스로를 열후에 봉했으며, 조정 중신들을 모함하고 뒷돈을 받아먹는 등 만행을 저질렀다. 이로 인해 대장군 하진과 대립하게 되었고, 결국 하진을 암살하면서 십상시의 난을 일으켰다. 십상시의 난은 후한 189년 9월 22일(음력 8월 25일)에 발생하여 무려 2000명에 달하는 환관과 사람들이 죽었으며, 동탁이 이 사건을 이용해 권력을 잡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십상시의 난 진압과 십상시의 최후]
대장군 하진을 암살하며 십상시의 난을 일으켰던 십상시들은 결국 원소에 의해 모두 살해당하며 그들의 전횡을 마감했다. 이는 후한 말 혼란을 가속화시키고 동탁이 권력을 잡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대장군 하진을 암살하며 십상시의 난을 일으켰던 십상시들은 하진의 부하들에게 도륙당한 것으로 묘사되며, 원소에 의해 모두 살해당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장양은 물에 빠져 죽고, 단규는 민공에게 죽는 등 개별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이들의 죽음은 후한 말 정치적 혼란을 극대화시키고, 동탁이 권력을 장악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으로 권력을 휘두르던 대장군 하진이 죽었으며, 무려 2000명에 달하는 환관과 사람들이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