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패

삼국시대 인물, 오나라의 황족, 노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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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1-25- 18: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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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인물, 오나라의 황족, 노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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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패는 오나라의 초대 황제 손권의 넷째 아들로, '이궁의 변'이라 불리는 황실 내부의 치열한 권력 투쟁의 중심에 섰던 비극적인 인물입니다. 노왕에 책봉된 후 부친의 각별한 총애를 바탕으로 태자였던 형 손화의 자리를 위협했으며, 이 과정에서 조정은 두 파벌로 나뉘어 국력을 크게 소모했습니다. 결국 손권의 결단에 의해 자결을 명받으며 생을 마감했으나, 그의 행보는 오나라의 후계 구도를 뒤흔들고 수많은 충신들이 희생되는 결과를 초래하며 역사의 뼈아픈 교훈으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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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황족의 일원으로 출생]

오나라 황제 손권과 사희 사이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자는 자위로 정해졌으며 황족으로서 고귀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의 탄생은 장차 오나라 황실을 뒤흔들 거대한 폭풍의 시작이었습니다.

손권의 총애를 받던 사희의 아들로 태어나 궁궐 안에서 남다른 기대를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영민하고 재기 넘치는 모습을 보여 부친인 손권의 각별한 눈길을 끌었습니다.
황자로서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권력의 중심부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져나갔습니다.

242

[형 손화의 태자 책봉]

손패의 형인 손화가 전 태자 손등의 뒤를 이어 공식적인 후계자로 책봉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황위 계승 서열이 명확해졌으나 내부적인 불만은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손패는 형의 즉위를 지켜보며 복잡한 심경을 갖게 되었습니다.

손화의 태자 책봉은 오나라 조정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손권의 공식적인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다른 황자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세력들에게 반발심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손패는 이때부터 자신의 세력을 구축하며 형의 권위에 도전할 기회를 엿보기 시작했습니다.

[노왕 작위 수여]

손권으로부터 노왕이라는 작위를 하사받고 정식 군주로 봉해졌습니다. 이는 단순한 작위 수여를 넘어 손패에게 강력한 정치적 기반을 마련해준 사건이었습니다. 부친의 신임이 얼마나 두터웠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조치였습니다.

노왕에 봉해진 손패는 자신만의 궁궐과 관료 체계를 갖추며 독립적인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부친 손권은 손패를 매우 아껴 그에게 태자에 버금가는 예우와 권한을 부여하고자 했습니다.
이 조치는 조정 내에서 태자 손화와의 권력 균형을 깨뜨리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태자와의 동등한 예우]

손권은 노왕 손패에게 태자인 손화와 똑같은 의전과 대우를 제공하라는 파격적인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는 나라의 법도를 어지럽히는 행위라는 중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두 황자 사이의 경쟁심이 본격적으로 타오르게 되었습니다.

궁중의 연회나 공식 행사에서 손패는 태자와 나란히 앉아 국정을 논의하는 등 위세를 떨쳤습니다.
손권의 이러한 편애는 손패로 하여금 자신도 황제가 될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품게 만들었습니다.
조정의 법도가 무너지자 관리들은 어느 쪽에 줄을 서야 할지 고민하며 혼란에 빠졌습니다.

[부친의 각별한 총애]

손권은 매일같이 손패를 불러 대화를 나누며 그의 의견을 국정에 반영하곤 했습니다. 형 손화보다 더 자주 부친을 대면하며 감정적인 유대감을 깊게 쌓았습니다. 이러한 관계는 손패가 권력 찬탈의 야심을 구체화하는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손패는 영리하게 부친의 기분을 살피며 그가 듣고 싶어 하는 말로 신뢰를 더욱 굳건히 했습니다.
손권은 손패의 재능이 죽은 장남 손등에 못지않다고 칭찬하며 그를 후계자로 고려하기 시작했습니다.
황제의 무조건적인 신뢰는 손패 파벌이 급격히 팽창하는 강력한 동력이 되었습니다.

243

[권력 찬탈의 야망 확인]

손패는 측근들과 함께 태자의 자리를 빼앗기 위한 비밀스러운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사랑받는 황자로 남는 것이 아니라 오나라의 주인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이른바 '이궁의 변'이라는 거대한 비극이 태동했습니다.

그는 태자 손화의 사소한 실수나 행적을 수집하여 부친에게 부정적으로 보고하는 작업을 개시했습니다.
자신의 궁궐인 노왕궁을 거점으로 은밀하게 인재들을 포섭하고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황위를 향한 그의 집념은 조정의 신하들을 분열시키고 국정을 마비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노왕 파벌의 본격 형성]

황실 내외의 유력 인사들이 손패를 지지하며 강력한 정치 집단을 형성했습니다. 이들은 태자 파벌에 대항하여 손패를 차기 황제로 옹립하려는 공동의 목표를 가졌습니다. 오나라 조정은 유례없는 양대 세력의 격돌장으로 변모했습니다.

노왕 파벌은 주로 신진 세력과 황제의 총애를 받는 가문들로 구성되어 공격적인 성향을 띠었습니다.
이들은 공개적으로 태자의 자질을 비판하며 손패의 우수성을 선전하는 여론전을 펼쳤습니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수많은 관리들이 손패의 깃발 아래 모여들며 힘을 보탰습니다.

244

[천기와의 은밀한 결탁]

강력한 권력을 쥔 천기가 손패의 핵심 참모로 합류하며 세력을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그는 손패에게 정적을 제거하고 부친의 마음을 얻는 법을 조언하며 활동했습니다. 이들의 결탁은 태자 손화에게 가장 위협적인 요소가 되었습니다.

천기는 자신의 가문과 인맥을 동원하여 손패를 위한 자금과 병력을 비밀리에 확보했습니다.
손패는 천기의 과감한 제안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경쟁자들을 하나둘 제거해 나갔습니다.
이러한 유착 관계는 훗날 두 사람 모두가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하게 되는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양축의 전폭적인 지지]

중신 양축이 손패의 편에 서서 태자 폐위와 손패 옹립을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는 황제 손권에게 손패의 장점을 부각시키며 태자 교체의 정당성을 역설했습니다. 조정 내 여론 형성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인물이었습니다.

양축은 뛰어난 언변과 논리로 손패가 오나라를 이끌 적임자임을 조정에 전파했습니다.
그는 손패의 지시를 받아 태자 측 근친들에 대한 모함과 공작을 주도적으로 수행했습니다.
양축의 합류로 손패는 단순한 총애를 넘어 정치적 정당성까지 확보하려 노력했습니다.

[보즐과 여대의 합류]

당대 최고의 명신들인 보즐과 여대가 손패를 지지하고 나서며 파벌의 무게감이 달라졌습니다. 이들의 지지는 손패가 단순한 야심가가 아닌 준비된 군주라는 인상을 심어주었습니다. 태자 파벌은 큰 위기감을 느끼며 대응책 마련에 부심했습니다.

보즐은 학식과 덕망이 높아 그의 선택은 많은 중급 관리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여대는 군부의 원로로서 손패가 군사적인 기반까지 갖추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명망 있는 원로들의 가세로 손패의 위세는 당대 오나라에서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 되었습니다.

245

[태자 손화에 대한 참언]

손패와 그 일파는 손화가 황제 손권의 병환 중에 무례한 행동을 했다는 거짓 정보를 유포했습니다. 특히 왕부인 사건과 결부시켜 태자의 효심에 의문을 제기하며 부친의 노여움을 샀습니다. 이는 태자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기 위한 치밀한 정치적 공작이었습니다.

손패는 손화가 제사 도중 딴짓을 하거나 부친의 병세를 기뻐했다는 식의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손권은 고령의 나이에 판단력이 흐려져 아들 손패의 참언을 곧이곧대로 믿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손권과 태자 손화 사이의 거리는 걷잡을 수 없이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육손에 대한 정치적 압박]

태자를 옹호하던 대도독 육손을 제거하기 위해 손패 일파가 대대적인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육손의 중립성과 충성심을 의심하게 만드는 허위 보고들을 황제에게 지속적으로 올렸습니다. 오나라 최고의 명장을 무너뜨리기 위한 잔인한 시도였습니다.

손패 일파는 육손이 외부 세력과 결탁하여 태자를 지지하고 있다고 모함했습니다.
손권은 육손에게 여러 차례 엄한 문책의 사자를 보내 그를 정신적으로 고문했습니다.
나라의 기둥인 육손을 공격함으로써 손패는 자신의 앞길을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을 치우려 했습니다.

[육손의 화병사와 정계 변화]

손패 일파의 끊임없는 모함과 손권의 문책을 견디지 못한 육손이 결국 화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는 오나라 조정에 거대한 충격을 안겼으며 태자 파벌의 구심점이 사라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손패는 승기를 잡았다고 확신하며 공세를 높였습니다.

육손의 죽음 이후 태자 손화를 지지하던 세력들은 급격히 위축되고 사기가 저하되었습니다.
손패는 이 틈을 타 조정의 주요 관직에 자신의 사람들을 배치하며 실권을 장악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육손이라는 거장의 죽음은 훗날 손권이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게 만드는 단초가 되었습니다.

246

[고담과 고승의 유배 주도]

태자의 강력한 우군이었던 고담과 고승 형제를 모함하여 변방으로 유배 보냈습니다. 이들은 강직한 성품으로 손패의 야심을 비판해왔기에 손패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습니다. 핵심 반대 세력을 제거하며 권력의 정점에 다가갔습니다.

손패 일파는 과거의 공적을 깎아내리고 사소한 실수를 반역죄로 몰아세웠습니다.
명문가인 고씨 가문이 몰락하자 조정 내에서 손패에게 맞설 세력은 거의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유배된 고담은 척박한 땅에서 고초를 겪다 사망했으며 이는 손패의 잔인함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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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의 행정 마비 유발]

손패 파벌과 태자 파벌의 갈등이 극에 달해 국가의 정상적인 행정 기능이 사실상 정지되었습니다. 모든 정사는 황제의 총애를 얻기 위한 암투와 연결되어 공정한 처리가 불가능해졌습니다. 오나라의 국력이 내부 갈등으로 인해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인재 등용은 실력이 아닌 파벌에 따라 결정되었고 백성들의 삶은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손패는 국익보다는 자신의 입지를 굳히는 데만 급급하여 무리한 정치 자금을 징수했습니다.
오랜 기간 지속된 이 혼란은 주변국인 위나라와 촉나라에게도 비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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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의 처형 방조 및 찬성]

태자의 무죄를 주장하며 상소를 올린 명신 주거가 손권의 노여움을 사 처형되는 과정에서 이를 적극 지지했습니다. 손패는 자신에게 불리한 진실을 말하는 자들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충신들의 피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 했던 어두운 행보였습니다.

주거는 손권을 진심으로 걱정하여 간언했으나 손패 일파의 간계에 속은 손권은 그를 사지로 몰았습니다.
손패는 주거의 처형이 정당하다고 부친을 부추기며 태자 세력의 마지막 불꽃을 꺼뜨리려 했습니다.
이 사건은 오나라 백성들과 하급 관리들에게 손패에 대한 공포와 반감을 심어주었습니다.

[손권의 갑작스러운 심경 변화]

오랜 갈등에 지친 손권이 마침내 두 아들 모두를 후계자에서 배제하려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손패의 과도한 야심과 잔인한 정치 공작이 부친에게도 위협과 혐오감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손패가 그토록 갈망하던 황위 계승의 꿈에 먹구름이 끼었습니다.

손권은 죽은 육손과 충신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자신이 속았음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손패가 황제가 될 경우 오나라 황실에 피바람이 불 것을 우려하여 특단의 조치를 구상했습니다.
손패는 자신의 파멸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하지 못한 채 여전히 권력의 단맛에 취해 있었습니다.

[태자 손화의 전격 폐위]

손권이 공식적으로 손화를 태자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서인으로 강등시켰습니다. 손패에게는 승리의 순간처럼 보였으나 이는 사실상 손패 본인에 대한 숙청의 전초전이었습니다. 오나라 후계 구도가 완전히 백지화되는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손화의 폐위 소식에 손패 일파는 환호하며 자신들의 즉위식을 준비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손권은 새로운 후계자로 어린 아들 손량을 지명하며 손패의 야망을 원천 차단했습니다.
손패는 형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자신 또한 황제가 될 수 없음을 깨닫고 절망에 빠졌습니다.

[자결 명령 하달과 최후]

손권으로부터 그동안의 악행과 파벌 조장 죄를 물어 자결하라는 엄명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뿌린 권력욕의 씨앗이 결국 스스로의 목숨을 앗아가는 비극적인 결말로 돌아왔습니다. 짧았던 권력의 탐욕을 뒤로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손권은 사자를 보내 손패에게 독약과 칼을 내리며 황실의 기강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손패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고 노왕궁의 화려한 방에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오나라 황실에 깊은 상처를 남겼으며 형제간의 우애가 권력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 보여주었습니다.

[지지 세력의 대대적 숙청]

손패의 자결 직후 그를 도왔던 양축, 천기 등 핵심 일파들이 모조리 처형되었습니다. 손권은 이들의 시신을 강물에 던지는 등 극심한 분노를 표출하며 흔적을 지우려 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노왕 파벌이 한순간에 멸문지화를 당했습니다.

양축의 시신은 갈기갈기 찢겨 백성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로 사용될 정도로 처벌이 가혹했습니다.
천기를 비롯한 전씨 가문의 지지자들도 직위를 박탈당하고 유배되거나 처형되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이 숙청 작업을 통해 오나라 조정은 잠시 조용해졌으나 이미 인재의 절반을 잃은 후였습니다.

251

[아들들의 강등과 유배]

손패의 어린 아들들인 손기와 손일이 작위를 박탈당하고 궁궐에서 쫓겨났습니다. 이들은 부친의 죄로 인해 황족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잃고 변방으로 유배되었습니다. 죄 없는 후손들까지 권력 투쟁의 후폭풍을 온몸으로 견뎌야 했습니다.

손권은 손패에 대한 분노가 가시지 않아 손자들에게도 매정한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이들은 훗날 손휴가 즉위하고 나서야 복권되었으나 평생을 감시와 불안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손패 가문의 몰락은 오나라 역사에서 권력 다툼이 가져오는 비참한 결과를 상징하는 사례가 되었습니다.

252

[사후 기록과 역사의 평가]

삼국지 기록에 오나라를 멸망의 길로 이끈 주범 중 한 명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의 삶은 후대 왕족들에게 형제간의 갈등과 무분별한 야심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사례로 인용되었습니다. 화려했던 노왕의 이름은 불명예스러운 기록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진수는 삼국지에서 손패를 '총애를 믿고 위계를 어지럽힌 인물'로 준엄하게 비판했습니다.
오나라의 국력 쇠퇴를 논할 때 '이궁의 변'과 손패의 이름은 결코 빠지지 않는 핵심 요소입니다.
그의 묘소나 유적은 거의 남아있지 않아 권력의 무상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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