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불교

불교 종파,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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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1-25- 10: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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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 불교는 '큰 탈것'이라는 의미를 지닌 불교의 한 종파입니다. 자신만의 깨달음보다는 모든 중생의 구제를 목표로 삼는 이타적 가르침을 강조합니다. 기원전 1세기경, 부파 불교의 형식화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불교 부흥 운동입니다. 남인도에서 태동하여 북인도에서 확립되었으며, 동아시아 불교의 주요 흐름을 형성했습니다.

연관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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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4C

[제2결집과 근본분열]

석가모니 입멸 후 계율 해석의 차이로 인해 불교 교단이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진보적인 성향의 대중부와 보수적인 상좌부의 분열은 훗날 대승불교가 등장하는 교리적 토대가 됩니다.

인도 바이살리에서 700명의 비구가 모여 계율을 재정비한 사건으로 '700결집'이라고도 불립니다.
금전을 받는 행위 등 10가지 관습(10사)의 허용 여부를 두고 보수적인 장로들과 진보적인 젊은 비구들이 격렬하게 대립했습니다.
결국 대중 중심의 평등을 강조하는 대중부가 분리되어 나가며 대승불교의 맹아가 형성되었습니다.

BC 3C

[아소카 왕의 불교 장려]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 왕이 불교를 국교 수준으로 보호하며 인도 전역으로 전파합니다. 강력한 왕권의 후원 아래 불교는 대중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보편 종교로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전쟁의 참혹함을 참회한 아소카 왕은 법(Dharma)에 의한 통치를 선언하며 곳곳에 석주를 세웠습니다.
전국에 8만 4천 개의 탑을 건립하고 승가에 막대한 보시를 행하여 불교가 학문적으로 발전하는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이 시기 스리랑카와 중앙아시아 등으로 전교사가 파견되며 대승불교 전파의 초기 경로가 확보되었습니다.

BC 1C

[반야경의 최초 출현]

모든 존재의 자성이 없음을 설하는 반야경전들이 인도 남부와 서북부에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기존 아비달마 불교의 번쇄한 분석을 비판하며 '공(空)'이라는 혁신적인 사상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대승불교의 가장 기초가 되는 경전군으로 '8천송반야경' 등이 이 시기에 성립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혜의 완성을 뜻하는 '반야바라밀다'를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새로운 길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개인의 해탈을 넘어 타인의 고통을 돌보는 보살 사상의 이론적 근거가 되었습니다.

[법화경 초기본의 성립]

석가모니 부처님이 영원한 생명을 가진 구원불임을 강조하는 법화경이 초기 형태로 정리됩니다.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일불승' 사상이 본격적으로 체계화됩니다.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경전으로 '묘법연화경'이라는 명칭으로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부처님이 세상에 온 이유가 오직 중생을 구제하기 위함이라는 방편의 가르침을 강조합니다.
경전 자체에 대한 수지·독송의 공덕을 내세워 대중적인 신앙 운동으로 확산되었습니다.

50

[간다라 미술의 개화]

그리스 문화와 불교가 만나 부처의 모습을 인간의 형상으로 조각하기 시작합니다. 불상 제작은 불교 신앙의 대중화를 이끌며 대승불교 특유의 장엄한 문화 예술을 형성합니다.

쿠샨 왕조 시대에 헬레니즘 양식의 영향을 받아 서구적인 용모를 가진 불상들이 탄생했습니다.
이전까지 문자로만 전해지던 부처의 이미지가 가시화되면서 신앙의 구심점이 마련되었습니다.
간다라 양식은 훗날 실크로드를 거쳐 중국과 한국의 불상 조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100

[카니슈카 왕의 제4결집]

쿠샨 제국의 카니슈카 왕이 주도하여 경전의 주석서를 편찬하는 대규모 결집을 단행합니다. 대승불교가 서북 인도를 중심으로 국가적 지원을 받으며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됩니다.

카슈미르 지역에서 열린 이 결집을 통해 방대한 양의 '대비바사론' 등이 정리되었습니다.
이 시기 대승불교는 중앙아시아의 교역로를 따라 동쪽으로 전파될 준비를 마쳤습니다.
카니슈카 왕은 불교 사원을 대규모로 건립하고 승려들을 우대하여 학문적 부흥을 이끌었습니다.

150

[중관학파의 시조 용수 등장]

대승불교 최고의 이론가인 나가르주나가 중론을 저술하며 중관학파를 창시합니다. 연기(緣起)와 공(空)의 논리를 완벽하게 정립하여 대승불교를 학문적으로 완성시킵니다.

용수(龍樹)는 '제2의 부처'로 추앙받을 만큼 불교 철학사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합니다.
유무(有無)의 양극단을 배제하는 중도의 논리로 아비달마의 실체론적 사고를 격파했습니다.
그의 사상은 이후 중국의 삼론종과 티베트 불교의 핵심 철학으로 이어졌습니다.

170

[지루가참의 낙양 도착]

월지국 출신의 승려 지루가참이 중국 낙양에 도착하여 대승 경전을 최초로 번역합니다. 한역 경전의 탄생으로 인도 불교가 중국이라는 거대한 문화권에 본격적으로 상륙합니다.

'반야삼매경', '무량청정평등각경' 등 핵심적인 대승 경전들이 이때 처음 중국어로 옮겨졌습니다.
이는 중국 불교가 단순한 기복 신앙을 넘어 고차원적인 철학 체계를 수용하는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지루가참의 번역은 훗날 정토교 사상의 확산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250

[유가행파의 태동]

모든 것이 마음의 작용이라는 유식(唯識) 사상이 인도에서 새롭게 일어납니다. 중관학파의 공 사상을 계승하면서도 인간의 의식 구조를 정밀하게 분석하는 심리학적 불교가 발전합니다.

미륵보살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전해지는 무착과 세친 형제가 중심이 되어 유가사지론 등을 저술했습니다.
아뢰야식이라는 심층 의식의 개념을 통해 업과 윤회의 문제를 논리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이는 훗날 법상종으로 이어지며 대승불교의 양대 산맥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300

[화엄경의 집대성]

우주 전체가 하나의 부처님 몸이라는 장엄한 세계관을 담은 화엄경이 편집됩니다. 개별 존재가 서로 얽혀 빛나는 법계연기설은 대승불교 사유의 정점을 보여줍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직후의 경지를 그대로 기술했다는 '60화엄' 등이 유포되기 시작했습니다.
'일즉다 다즉일'로 요약되는 상호 융합의 사상은 동양 철학 전반에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중국과 한국에서 화엄종이 번창하며 국가 통치 철학으로도 활용되었습니다.

350

[여래장 사상의 확산]

모든 중생에게는 부처가 될 성품이 내재되어 있다는 여래장 사상이 정립됩니다. 수행을 통해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본래 부처임을 자각하는 긍정적인 수행관이 강조됩니다.

'여래장경', '승만경' 등의 경전을 통해 중생의 번뇌 속에 감춰진 부처의 씨앗을 노래했습니다.
이는 불교가 지나치게 허무주의적이라는 오해를 불식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훗날 선불교의 견성성불(見性成佛) 사상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징검다리가 되었습니다.

372

[고구려의 불교 수용]

전진의 승려 순도가 불경과 불상을 가지고 고구려 소수림왕에게 옵니다. 한반도에 대승불교가 처음으로 공식 전래되며 고대 국가의 사상적 통일과 문화 발전을 견인합니다.

소수림왕은 초문사와 이불란사를 창건하여 승려들을 머물게 하고 교화를 장려했습니다.
국가적 차원의 수용은 왕권 강화와 율령 체제 정비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후 고구려는 삼론종 등 학술적인 불교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는 거점이 되었습니다.

384

[백제의 불교 공인]

서역 승려 마라난타가 동진에서 해로를 통해 백제 침류왕에게 불교를 전합니다. 백제는 이를 계기로 찬란한 불교 예술을 발전시키며 일본에 불교를 전파하는 모태가 됩니다.

침류왕은 마라난타를 궁중으로 맞아들여 예우하고 한산에 절을 지어 10명의 승려를 배출했습니다.
백제 불교는 예술적이고 개방적인 성격을 띠며 정토 신앙이 특히 발달했습니다.
미륵사지 석탑 등 백제의 불교 건축은 동아시아 최고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유산이 되었습니다.

401

[구마라습의 낙양 입성]

서역의 위대한 역경가 구마라습이 장안에 도착하여 본격적인 번역 사업을 시작합니다. 그의 유려한 번역을 통해 대승불교의 핵심 논리가 중국인들에게 정확하게 전달됩니다.

반야경, 법화경, 중론 등 300여 권의 경전과 논서가 그의 손을 거쳐 한문으로 재탄생했습니다.
기존의 격의불교(도교 용어로 불교를 해석)를 극복하고 정통 인도 불교의 의미를 살려냈습니다.
그의 번역은 오늘날까지도 동아시아 불교 의식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표준이 되고 있습니다.

414

[법현의 인도로부터 귀국]

중국 승려 법현이 15년간의 인도 유학을 마치고 방대한 율장과 경전을 가지고 귀국합니다. 직접 보고 겪은 인도의 불교 현황을 기록한 '불국기'를 남겨 동서 문화 교류의 길을 밝힙니다.

60세의 고령에 길을 떠나 사막과 바다를 건넌 그의 여정은 후대 구법 승려들의 사표가 되었습니다.
그가 가져온 '대반열반경' 등은 중국 불교 사상의 심화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특히 계율에 관한 자료들은 동아시아 승가 공동체의 기틀을 잡는 데 활용되었습니다.

450

[나란다 대학의 설립]

인도 굽타 왕조의 지원 아래 거대한 불교 학문 공동체인 나란다 대학이 세워집니다. 대승불교의 중관과 유식학을 비롯한 온갖 학문이 집대성되는 세계 최대의 교육 기관이 됩니다.

수만 명의 승려와 학생이 거주하며 논리학, 의학, 천문학 등 광범위한 분야를 연구했습니다.
현장, 의정 등 동아시아의 구법 승려들이 이곳에서 유학하며 선진 불교를 수용했습니다.
나란다는 대승불교가 인도에서 마지막 불꽃을 피운 학술의 중심지였습니다.

480

[달마의 중국 도착]

남인도 출신의 보리달마가 중국에 건너와 선(禪) 불교의 씨앗을 뿌립니다. 문자나 경전에 의존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깨달음을 전하는 새로운 수행법이 시작됩니다.

양나라 무왕과의 문답에서 '무공덕'을 역설하고 소림사에서 9년간 면벽 수행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인도 불교의 명상 전통을 중국식으로 소화하여 '직지인심'의 종풍을 세웠습니다.
선종은 이후 동아시아 불교의 주류로 성장하여 일상 속의 깨달음을 강조하게 됩니다.

527

[신라의 불교 공인]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신라 법흥왕이 불교를 국가 종교로 공인합니다. 가장 늦게 불교를 받아들였으나, 신라는 이를 바탕으로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로 도약하게 됩니다.

이차돈의 목에서 흰 피가 솟구쳤다는 이적은 귀족들의 반대를 잠재우는 결정적 사건이 되었습니다.
불교는 화랑도 정신의 토대가 되었으며 삼국 통일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습니다.
경주 전체가 거대한 불교 사찰과 탑으로 장엄되며 황룡사 등 대사찰이 건립되었습니다.

538

[일본에의 불교 전래]

백제 성왕이 일본 긴메이 천황에게 불상과 경전을 보내며 불교가 공식적으로 전해집니다. 백제의 적극적인 문화 전파는 일본 고대 문명인 아스카 문화의 발상지가 됩니다.

백제는 승려와 사찰 건축 기술자, 불상 조각가들을 함께 파견하여 지원했습니다.
일본 조정 내에서는 숭불파인 소가 씨와 배불파인 모노노베 씨의 갈등이 일기도 했습니다.
결국 쇼토쿠 태자의 섭정 아래 불교는 일본의 국가 통치 이념으로 확립되었습니다.

575

[천태종의 개조 지의의 등단]

중국 천태산에서 지의가 대승 경전 전체를 체계적으로 분류한 교판설을 확립합니다. 법화경을 중심으로 교리 연구와 명상 수행을 완벽하게 통합한 천태종이 출범합니다.

일념삼천(一念三千)과 지관(止觀) 수행법을 통해 마음의 본질을 꿰뚫어 보게 했습니다.
지나치게 분파적이었던 당시 중국 불교계에 종합적인 이론 틀을 제시했습니다.
천태종은 이후 한국과 일본으로 전해져 국가 불교의 핵심 종파가 되었습니다.

594

[쇼토쿠 태자의 불교 흥륭 조서]

일본의 쇼토쿠 태자가 '삼보를 공경하라'는 조서를 발표하며 불교를 국가 안보의 기틀로 삼습니다. 그는 스스로 법화경 등 대승 경전의 주석서를 쓸 정도로 깊은 학식과 신앙을 가졌습니다.

호류사(법륭사)를 창건하여 일본 불교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었습니다.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선진적인 대승불교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수입했습니다.
그의 통치 아래 불교는 일본 왕실의 정통성을 뒷받침하는 핵심 사상이 되었습니다.

630

[현장의 인도 구법 여행]

당나라 승려 현장이 국법을 어기면서까지 인도로 떠나 17년간 유학하고 귀국합니다. 그는 나란다 대학에서 유식학을 섭렵하고 방대한 경전을 가져와 대승불교의 수준을 극치로 끌어올립니다.

귀국 후 태종의 지원 아래 '대당서역기'를 쓰고 수많은 경전을 번역했습니다.
그의 번역은 기존 구마라습의 번역과 구분하여 '신역(新譯)'이라 불리며 정밀함을 자랑합니다.
현장의 여정은 훗날 소설 '서유기'의 모티브가 되어 대중들에게도 친숙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661

[신라 원효의 대승기신론소]

신라의 고승 원효가 대승불교의 핵심 논서인 대승기신론에 대한 주석서를 저술합니다. 그는 종파 간의 갈등을 화합시키는 화쟁(和諍) 사상을 통해 대승의 참뜻을 실천합니다.

원효의 주석서는 중국과 일본 승려들에게도 큰 감동을 주어 '해동소'라 불리며 존중받았습니다.
그는 난해한 교리를 민중들에게 노래로 전하며 불교의 대중화에 앞장섰습니다.
모든 존재가 한 마음(一心)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그의 철학은 한국 불교의 정수가 되었습니다.

670

[의상의 화엄종 창시]

당나라 지엄에게서 화엄학을 배운 의상이 귀국하여 신라 화엄종을 개창합니다. 그는 '화엄일승법계도'를 통해 무량한 우주의 조화를 상징적인 도표로 압축하여 제시했습니다.

부석사를 창건하여 화엄 사상을 전파하는 거점으로 삼았습니다.
의상의 화엄학은 전제 왕권의 통합 논리로 활용되면서도 민중 구제의 자비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의 문하에서 배출된 수많은 제자가 신라 곳곳에 사찰을 세워 불교 문화를 확산시켰습니다.

671

[의정의 해로 구법 여행]

당나라 승려 의정이 바닷길을 통해 인도와 동남아시아를 여행하고 귀국합니다. 현장 이후 인도의 불교 계율과 풍습을 상세히 기록하여 승가 공동체의 질서를 바로잡는 데 기여합니다.

'남해기귀내법전'을 저술하여 당시 인도 불교의 생생한 모습을 중국에 전했습니다.
그가 가져온 경전들은 주로 계율과 관련된 것이 많아 교단 정비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해로를 통한 교류는 실크로드 못지않게 대승불교 전파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줍니다.

700

[혜능의 남종선 흥기]

선종의 제6조 혜능이 단박에 깨달음을 얻는 돈오(頓悟) 사상을 주창합니다. 계급과 학식을 초월하여 누구나 자기 성품을 보면 부처가 된다는 혁명적인 가르침이 대중을 사로잡습니다.

그의 가르침을 기록한 '육조단경'은 조사(祖師)의 말씀 중 유일하게 경전으로 대접받습니다.
북방의 점진적인 수행(점수)을 중시한 신수와 대비되어 남종선의 전성기를 열었습니다.
혜능 이후 선종은 임제종, 조동종 등으로 분화하며 동아시아 불교의 실질적인 주류가 되었습니다.

710

[나라 시대 일본의 6종 성립]

일본의 수도 평성경(나라)에서 대승불교의 6가지 주요 종파가 정립됩니다. 국가의 보호 아래 학문적 연구가 극치에 달하며 거대한 불상과 사찰들이 건립됩니다.

구사종, 성실종, 율종, 법상종, 삼론종, 화엄종이 나라 6종으로 불렸습니다.
동대사(도다이지)에 안치된 거대한 비로자나불은 당시 화엄 사상의 장엄함을 상징합니다.
이 시기 일본 불교는 학술적인 성격이 강했으며 귀족과 왕실의 강력한 후원을 받았습니다.

740

[감진의 일본 도항 성공]

중국의 고승 감진이 5번의 실패와 실명(失明)이라는 고난 끝에 일본에 도착합니다. 정통 계율을 전수함으로써 일본 승가 공동체가 비로소 법적·종교적 정통성을 갖추게 됩니다.

감진은 도다이지에 계단을 설치하여 승려들에게 정식으로 계를 주었습니다.
그는 불교뿐만 아니라 의학, 조각 등 선진 문화 전반을 일본에 전파했습니다.
그의 헌신적인 여정은 일본 불교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로 꼽힙니다.

750

[밀교의 체계화와 성립]

진언과 만다라를 통해 즉신성불을 추구하는 밀교가 인도에서 완성됩니다. 대승불교의 마지막 발전 단계로서, 신비주의적 요소와 의례가 강조되는 독특한 형태를 띠게 됩니다.

'대일경', '금강정경' 등의 근본 경전이 이 시기에 성립되었습니다.
인간의 몸 그대로가 부처의 신비와 연결될 수 있다는 실천적 수행법을 제시했습니다.
밀교는 이후 티베트와 일본(진언종)으로 전해져 깊은 뿌리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775

[티베트 최초 사찰 삼예 건립]

인도의 적호와 연화생 대사가 티베트에 초빙되어 삼예 사찰을 창건합니다. 티베트 고유의 토착 신앙을 흡수하며 인도 대승불교와 밀교가 결합된 티베트 불교가 탄생합니다.

사찰의 구조는 우주의 중심인 수미산을 형상화한 만다라 양식으로 지어졌습니다.
이후 티베트는 인도 불교의 정수를 보존하는 거대한 저장소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연화생 대사는 티베트 밀교의 스승으로 추앙받으며 수많은 영적 가르침을 남겼습니다.

792

[삼예의 논쟁과 인도설 채택]

티베트 왕궁에서 인도의 점진적 수행론과 중국의 단박 깨달음론이 치열한 논쟁을 벌입니다. 결국 인도의 가말라실라가 승리하며 티베트 불교는 인도 불교의 정통성을 따르게 됩니다.

중국 선종의 마하연과 인도의 가말라실라가 티베트 국왕 앞에서 토론을 펼쳤습니다.
이 논쟁의 결과로 티베트 불교는 체계적인 학습과 단계적 수행을 중시하는 학풍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는 훗날 티베트 불교가 독창적인 논리학과 수행 체계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804

[최징과 공해의 당나라 유학]

일본의 두 천재 승려 사이초(최징)와 쿠카이(공해)가 같은 배를 타고 당나라로 건너갑니다. 귀국 후 각각 천태종과 진언종을 창시하며 일본 평안 시대 불교의 양대 산맥을 형성합니다.

사이초는 히에이산에 엔랴쿠지를 세워 일본 천태종의 기틀을 닦았습니다.
쿠카이는 고야산에 곤고부지를 세우고 화려한 밀교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이들은 일본 불교가 국가의 간섭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수행 전통을 세우는 데 공헌했습니다.

821

[신라 구산선문의 형성 시작]

당나라에서 선종을 배운 도의선사가 귀국하여 가지산문을 여는 등 선종이 한반도에 본격 도입됩니다. 기존의 교종 중심 불교계에 새로운 실천적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합니다.

신라 말기의 혼란기에 지방 호족들의 후원을 받으며 9개의 선문(구산선문)이 성립되었습니다.
문자보다 개인의 체험을 강조하는 선종의 특징은 지식인과 대중 모두에게 호소력을 가졌습니다.
이는 고려와 조선 시대 한국 불교의 중심적인 수행 전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845

[당 무종의 회창폐불]

도교를 숭상한 당나라 무종이 대대적인 불교 탄압을 단행하여 수만 개의 사찰을 파괴합니다. 중국 불교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타격이었으나, 선종 등 자생력이 강한 종파는 살아남았습니다.

수많은 승려가 강제로 환속당하고 사찰의 토지와 재산이 몰수되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복잡한 교리를 중시하던 학문적 종파들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반면 산속에서 자급자족하며 수행하던 선종은 오히려 불교의 순수성을 회복하며 주류가 되었습니다.

983

[북송 판본 대장경의 완성]

중국 북송 왕조에서 불교 경전 전체를 목판으로 인쇄하는 거대 프로젝트를 완료합니다. 기록 유산으로서의 대장경 시대가 열리며 대승불교의 지혜가 인류 공통의 자산으로 정착합니다.

총 5,00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규모로, 국가적 역량이 집중된 문화적 위업이었습니다.
목판 인쇄술의 발달은 불교 지식이 널리 보급되고 변질 없이 보존되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후 거란, 고려 등 주변 국가들이 앞다투어 대장경을 간행하는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1042

[아티샤의 티베트 도착]

인도의 고승 아티샤가 티베트에 건너와 쇠퇴해가던 불교를 다시 일으킵니다. 그는 계율과 교학, 수행을 체계적으로 연결하여 티베트 불교의 후기 전파 시대를 엽니다.

'보리도등론'을 저술하여 수행의 단계를 명확히 제시하고 도덕적 기강을 확립했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카담파의 시조가 되었으며 훗날 겔루파 사상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아티샤의 헌신으로 티베트는 전 국민의 신앙으로 불교를 수용하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1086

[고려 대각국사 의천의 속장경]

고려의 왕자이자 승려인 의천이 송, 요, 일본 등지의 불교 주석서들을 수집하여 속장경을 간행합니다. 동아시아 전체의 불교 학술 성과를 집대성한 지적 금자탑을 세웁니다.

경전 원문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해설서(소, 초)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했습니다.
의천은 교종과 선종의 화합을 위해 천태종을 재건하고 '교관겸수'를 강조했습니다.
그의 수집 열정과 학문적 노력은 한국 불교의 학술적 수준을 세계 최고로 끌어올렸습니다.

1190

[고려 보조국사 지눌의 수선사]

지눌이 명리와 타락에 물든 당시 불교계를 비판하며 정혜결사를 결성합니다. 송광사를 중심으로 선과 교의 완전한 융합을 꾀하는 한국 특유의 조계종 가풍을 확립합니다.

갑작스러운 깨달음(돈오)과 점진적인 수행(점수)을 병행해야 한다는 이론을 세웠습니다.
간화선 수행법을 체계화하여 한국 선불교가 독자적인 생명력을 갖게 했습니다.
지눌의 사상은 오늘날 대한불교조계종의 정신적 뿌리가 되어 면면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1193

[인도 나란다 대학의 파괴]

이슬람 세력의 침공으로 대승불교의 마지막 보루였던 나란다 대학이 불타 없어집니다. 이로써 인도 본토에서 대승불교는 사실상 멸절의 길을 걷게 되며 중앙 무대는 동아시아로 완전히 넘어갑니다.

수많은 도서관의 경전이 몇 달 동안 불탈 정도로 파괴의 규모가 컸습니다.
살아남은 승려들은 티베트와 네팔로 망명하여 불교의 명맥을 이어나갔습니다.
이 사건은 불교가 발생지인 인도에서 사라지게 된 결정적인 역사적 변곡점이 되었습니다.

1200

[일본 가마쿠라 신불교의 탄생]

전란의 시기인 일본 가마쿠라 시대에 민중들을 위한 쉽고 간절한 불교 종파들이 잇따라 등장합니다. 정토종, 정토진종, 일련종 등이 창시되며 불교가 일본 민중의 삶 속으로 깊숙이 침투합니다.

호넨은 염불만으로 구제받는다는 정토종을, 신란은 절대 타력을 강조한 정토진종을 열었습니다.
니치렌은 법화경의 제목을 외치는 일련종을 세워 국가적 환란을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이 종파들은 현재도 일본에서 가장 많은 신자를 보유한 거대 종단으로 남아 있습니다.

1227

[도겐의 일본 조동종 전래]

중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도겐이 오직 앉아 있는 것 자체를 강조하는 지관타좌의 선법을 전합니다. 일본 선불교의 깊이를 더하며 조동종의 기틀을 확립합니다.

에이헤이지를 창건하여 엄격한 수행 기강과 일상 속의 불성을 강조했습니다.
그의 저술인 '정법안장'은 철학적 깊이가 뛰어나 현대 서구 철학계에서도 큰 주목을 받습니다.
도겐의 선은 기교를 부리지 않는 묵조선의 전통을 이어받아 일본 문화 전반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1236

[고려 팔만대장경 판각 시작]

몽골의 침입을 부처님의 힘으로 막아내기 위해 고려 정부가 다시 한번 대장경 간행에 착수합니다. 16년에 걸친 정성과 기술이 집약된 팔만대장경은 인류 최고의 목판 인쇄물로 평가받습니다.

총 81,258장의 목판에 한 자 한 자 정성을 다해 새겨 오탈자가 거의 없는 정밀함을 자랑합니다.
해인사 장경판전의 과학적인 보관 기술 덕분에 현재까지도 완벽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는 대승불교 경전 전집을 보존하려는 한국인의 불굴의 의지가 담긴 세계적 문화유산입니다.

1400

[총카파의 겔루파 창시]

티베트 불교의 개혁가 총카파가 엄격한 계율과 논리적 학습을 강조하는 겔루파를 세웁니다. 노란 모자를 쓰는 이 종파는 이후 티베트 불교의 가장 강력한 주류로 성장합니다.

그는 '보리도차제론' 등을 통해 아티샤의 전통을 계승하고 수행 체계를 정밀하게 정비했습니다.
겔루파는 달라이 라마와 판첸 라마라는 환생 시스템을 통해 티베트의 종교와 정치를 주도하게 됩니다.
총카파의 개혁으로 티베트 불교는 학문적 깊이와 도덕적 엄격함을 동시에 갖추게 되었습니다.

1566

[조선 서산대사의 선가귀감]

억불 정책 속에서도 휴정(서산대사)이 선과 교의 요체를 정리한 선가귀감을 저술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조직하여 나라를 구하는 등 대승불교의 자비 행을 몸소 실천합니다.

그의 문하에서 사명대사 등 걸출한 제자들이 배출되어 조선 후기 불교의 명맥을 이었습니다.
선가귀감은 승려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수행의 지침서로 확고히 자리 잡았습니다.
그의 활약은 불교가 국가 위기 상황에서 민중과 함께하는 종교임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습니다.

1893

[세계 종교 의회와 서구 전파]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제1회 세계 종교 의회에서 일본과 스리랑카 승려들이 불교를 소개합니다. 서구 지식인들에게 대승불교의 철학적 가치가 알려지며 세계화의 서막이 오릅니다.

샤쿠 소엔 등은 불교의 합리성과 과학적 성격을 강조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를 계기로 선(Zen)이라는 용어가 영어권에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대승불교는 단순한 동양의 신앙을 넘어 현대인의 정신적 대안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1927

[다이쇼 신수 대장경의 완간]

일본에서 현대적 편집 기술을 총동원하여 방대한 불교 문헌을 집대성한 다이쇼 대장경을 완성합니다. 오늘날 전 세계 불교 학자들이 가장 신뢰하는 표준 텍스트가 구축되었습니다.

기존의 한역 경전뿐만 아니라 고대 사본들을 대조하여 엄격하게 교정했습니다.
방대한 주석서와 역사 자료까지 포함하여 불교학 연구의 지평을 획기적으로 넓혔습니다.
이 대장경의 보급으로 대승불교 연구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학문으로 진화했습니다.

1950

[세계불교도우의회(WFB) 창설]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전 세계 불교도들이 모여 국제적인 연대 기구를 창립합니다. 종파와 국가를 초월하여 대승과 상좌부 불교가 협력하는 현대적 네트워크가 형성됩니다.

불교 기(旗)를 통일하고 석가탄신일을 국제적인 기념일로 제안하는 등 활동을 펼쳤습니다.
현대 사회의 문제에 불교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공동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대승불교 국가들도 적극 참여하여 불교의 보편적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 데 힘썼습니다.

1959

[달라이 라마의 인도로 망명]

중국의 티베트 점령 후 제14대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망명하여 다람살라에 정부를 세웁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역설적으로 티베트 대승불교의 지혜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계기가 됩니다.

전 세계인들이 달라이 라마를 통해 자비와 비폭력의 대승 정신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서구 사회에 수많은 티베트 불교 센터가 세워지며 명상 열풍을 주도했습니다.
그의 헌신적인 평화 운동은 1989년 노벨 평화상 수상으로 전 세계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1960

[서구 사회의 젠(Zen) 열풍]

스즈키 다이세츠 등의 노력으로 일본 선불교가 미국 지식인과 예술가들 사이에 깊이 뿌리내립니다. 합리주의에 지친 서구인들에게 대승의 직관적 지혜가 새로운 정신적 해방구로 떠오릅니다.

비트 세대 문학가들과 심리학자들이 선 사상을 자신의 작품과 이론에 적극 반영했습니다.
스티브 잡스 등 현대 혁신의 아이콘들이 선 명상을 통해 영감을 얻기도 했습니다.
이제 대승불교는 동양의 전통을 넘어 전 지구적인 생활 철학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2000

[참여 불교 운동의 확산]

개인의 해탈을 넘어 환경, 평화, 인권 등 사회 문제에 적극 목소리를 내는 참여 불교가 힘을 얻습니다. 대승의 보살 정신을 현대적으로 실천하려는 움직임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납니다.

틱낫한 스님의 마음챙김 공동체와 정토회의 구호 활동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수행과 사회적 실천이 둘이 아니라는 불이(不二)의 가르침을 현장에서 증명하고 있습니다.
고통받는 모든 중생을 구하겠다는 대승의 초발심이 현대적인 형태로 구현되고 있습니다.

2024

[디지털 대장경과 미래 불교]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하여 방대한 대장경을 디지털화하고 대중에게 공개합니다. 시공간을 초월한 지혜의 공유를 통해 대승불교는 새로운 디지털 문명 시대의 길잡이가 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어디서나 스마트폰으로 고대 경전의 깊은 뜻을 검색하고 공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메타버스 사찰 등 가상 공간에서의 수행과 교류도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대승불교의 연기법적 사유는 복잡하게 얽힌 현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열쇠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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