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네스 세계 기록의 역사

기록, 콘텐츠 IP, 문화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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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16- 23:5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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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네스북'은 한 사업가의 사소한 호기심에서 출발하여, '최고'를 향한 인간의 원초적 열망과 만나 가장 성공적인 콘텐츠 IP인 '기네스 세계 기록'이 되습니다.

펍의 논쟁을 잠재우던 작은 책은 이제 K팝 팬덤의 열정을 증명하고, 게이머의 실력을 공인하며, 소셜 미디어 시대의 바이럴을 주도하는 거대한 문화 플랫폼으로 진화했습니다.

이는 기네스가 단순히 기록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 시대의 열망을 담아내고 우리 삶의 가장 뜨거운 순간들을 포착하며 스스로 살아있는 역사가 되었음을 증명합니다.


본 연혁은 기네스북, 기네스 세계기록의 역사와 발전 및 그 변천사를 다룹니다.
등재된 내용들은 별도의 연혁으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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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

[모든 것의 시작, 사냥터의 논쟁]

기네스 양조회사의 전무이사 휴 비버 경이 사냥 중 유럽에서 가장 빠른 사냥용 새가 무엇인지에 대해 논쟁을 벌였습니다.

어떤 참고 서적에서도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하자 그는 큰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이 사소하지만 해결되지 않는 궁금증이 훗날 세계적인 기록 인증 기관의 탄생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51년 11월 10일, 아일랜드 웩스포드 주 슬레이니 강변에서 열린 사냥 파티에 참석한 휴 비버 경(Sir Hugh Beaver)은 검은가슴물떼새(Golden Plover) 사냥에 실패한 후 동료들과 논쟁에 휩싸였습니다. 논쟁의 주제는 '유럽에서 가장 빠른 사냥용 새는 검은가슴물떼새인가, 아니면 뇌조(Red Grouse)인가'였지만, 그 자리의 누구도, 그리고 어떤 참고 서적도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비버 경은 영국과 아일랜드 전역의 수많은 술집(Pub)에서 매일 밤 이와 유사한 사소한 논쟁들이 벌어지고 있음을 깨닫고, 이러한 논쟁들을 명쾌하게 해결해 줄 수 있는 공신력 있는 책이 있다면 훌륭한 사업이 될 것이라고 직감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대중의 잠재적 수요를 간파한 사업가적 통찰력이었습니다. 


[출처]

1954

[기록광 쌍둥이, 맥워터 형제 섭외]

휴 비버 경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위해 기네스 직원 크리스토퍼 채터웨이의 추천을 받았습니다.

그는 런던에서 사실관계 확인 대행사를 운영하던 노리스와 로스 맥워터(McWhirter) 쌍둥이 형제를 고용했습니다.

이들의 합류로 기네스북 프로젝트는 단순한 아이디어를 넘어 전문성과 신뢰성을 갖춘 출판 기획으로 발전했습니다.  

3년 전의 경험을 잊지 않고 있던 휴 비버 경은 1954년, 술집에서의 논쟁을 해결해준다는 콘셉트를 기네스 맥주 브랜드의 홍보 전략과 결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는 프로젝트를 실행할 적임자를 물색했고, 당시 기네스 직원이었던 크리스토퍼 채터웨이(Christopher Chataway)는 대학 동창이자 런던 플리트 스트리트에서 사실 조사 및 기록 수집 대행사를 운영하던 맥워터 쌍둥이 형제를 추천했습니다.


1954년 8월, 비버 경은 이들에게 '최고'와 '최초'에 관한 기록들을 모아 책으로 편찬하는 작업을 공식적으로 의뢰했습니다. 맥워터 형제는 방대한 자료 조사 능력과 사실 검증에 대한 집요함으로 명성이 높았으며, 이들의 전문성은 훗날 기네스북이 얻게 될 권위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출처]

['기네스 슈퍼러티브' 법인 설립]

기네스북 출판을 전담할 별도 법인인 '기네스 슈퍼러티브(Guinness Superlatives Ltd.)'가 공식 설립되었습니다. 이는 프로젝트가 기네스 양조회사의 일회성 마케팅 활동을 넘어, 독립적인 출판 사업체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런던 플리트 스트리트에 마련된 작은 사무실에서 본격적인 기록 수집과 집필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프로젝트의 전문성과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네스 양조회사는 1954년 11월 30일 '기네스 슈퍼러티브'라는 이름의 자회사를 설립했습니다. 'Superlatives'는 '최상급'을 의미하는 단어로, 책의 성격을 명확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사무실은 런던의 언론 중심지였던 플리트 스트리트 107번지 러드게이트 하우스의 개조된 체육관 꼭대기 층에 있는 두 개의 방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별도 법인을 설립한 것은 이 프로젝트를 단순한 홍보물 제작이 아닌, 장기적인 관점의 진지한 출판 사업으로 인식했다는 증거이며, 훗날 브랜드가 독립적인 미디어 자산으로 매각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전략적 결정이었습니다.  


[출처]

1955

['기네스북 오브 레코즈' 초판 발행]  

주말도 없이 13주 반 동안 이어진 강도 높은 작업 끝에 198페이지 분량의 '더 기네스북 오브 레코즈' 초판이 제본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맥주에 젖지 않도록 방수 코팅된 1,000부가 제작되어 영국 전역의 펍에 무료로 배포되었습니다.

이는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콘텐츠 마케팅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맥워터 형제는 주말과 공휴일을 포함해 13주 반 동안 매주 90시간에 달하는 고된 작업을 거쳐 초판 원고를 완성했습니다. 1955년 8월 27일, 마침내 198페이지 분량의 첫 번째 '더 기네스북 오브 레코즈(The Guinness Book of Records)'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초기 전략에 따라, 맥주를 흘려도 괜찮도록 표면을 특수 코팅한 1,000권의 책이 기네스 맥주의 홍보물로서 영국과 아일랜드의 펍에 무료로 배포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홍보물을 넘어, 펍을 찾은 손님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심지어 책을 훔쳐가는 사례까지 발생할 정도였습니다.


[출처]

[영국 베스트셀러 등극, 상업적 성공]

무료 배포본의 예상치 못한 인기에 힘입어, 판매용으로 추가 제작된 5만 부가 순식간에 팔려나갔습니다.

그 결과, '기네스북'은 출간 첫해 크리스마스 시즌에 영국 베스트셀러 목록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이 성공은 기네스북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매년 발간되는 연례 출판물이자 상업적 상품으로 자리 잡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펍에서의 폭발적인 반응은 기네스북의 상업적 가능성을 증명했습니다. 기네스 슈퍼러티브는 즉시 전략을 수정하여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판매용 책을 추가로 5만 부 인쇄했습니다. 이 책들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고, 1955년 크리스마스 무렵에는 영국 내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 상업적 성공은 기네스북의 운명을 바꾸었습니다. 단순한 마케팅 비용으로 처리될 뻔했던 프로젝트가, 매년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핵심 사업으로 전환되었으며, 매년 가을에 개정판을 출간하여 크리스마스 선물 시장을 공략하는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게 되었습니다.


[출처]

1956

[미국 시장 진출]

영국에서의 성공을 발판 삼아 기네스북은 이듬해 미국 시장에 진출하며 국제적인 출판물로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미국에서도 초판이 7만 부나 판매되며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는 인간의 '최고'에 대한 호기심이 특정 문화권을 넘어선 보편적인 감정임을 입증한 사건입니다.

영국 내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기네스북은 1956년부터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가장 먼저 진출한 국가는 세계 최대 출판 시장인 미국이었고, 뉴욕의 출판사를 통해 소개된 기네스북은 그해에만 7만 부의 판매고를 올리며 성공적으로 안착했습니다. 이 성공은 기네스북 브랜드가 영국과 아일랜드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통할 수 있는 글로벌 콘텐츠로서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었습니다.


[출처]

1974

[세계 최고 판매 저작권 도서 등극]

출간 20년이 채 되지 않은 1974년, 기네스북은 누적 판매량 2,395만 부를 돌파하며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저작권 있는 책이라는 기록을 스스로 세웠습니다.

이는 기네스북이 단순한 참고 서적을 넘어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기록을 다루는 책이 스스로 판매 기록을 세운 것입니다. 

기네스북은 꾸준히 인기를 이어가며 1974년, 역사적인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전 세계 누적 판매량이 2,395만 부에 달하며, 성경이나 꾸란 등 저작권이 없는 종교 경전을 제외하고 단일 저작권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등극했습니다. 이 '메타 기록'은 기네스북의 권위를 극적으로 높이는 역할을 했습니다. '세계 기록을 인증하는 책'이라는 정체성에 '세계 기록을 보유한 책'이라는 명성이 더해지면서, 대중에게 기네스북의 신뢰도와 위상을 각인시키는 매우 강력한 마케팅 효과를 낳았습니다.  


[출처], [출처]

1976

[최초의 기네스 박물관 개관]

기네스북 브랜드는 책이라는 2차원적 매체를 넘어 3차원적 경험의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미국 뉴욕의 상징적인 건물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최초의 기네스북 박물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이는 기네스북이 지식 콘텐츠를 넘어 관광 및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진출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기네스북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출판업을 넘어 미디어 프랜차이즈로의 확장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첫 번째 중요한 시도가 1976년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개관한 '기네스 기록 박물관(Guinness Book of Records Museum)'입니다. 이 박물관은 책 속의 추상적인 기록들을 실물 크기 모형, 영상, 체험형 전시물 등으로 구현하여 방문객들에게 생생한 경험을 제공했습니다. 이 전략은 책을 구매하는 독자층과는 다른 관광객 및 가족 단위의 새로운 고객층을 확보하게 해주었으며, 라이선싱을 통한 추가적인 수익 모델을 창출하는 성공적인 사업 다각화 사례가 되었습니다.  


[출처]

1999

['기네스 세계 기록'으로 리브랜딩]

21세기를 앞두고, 브랜드는 시대의 변화에 맞춰 중요한 리브랜딩을 단행했습니다.

기존의 '더 기네스북 오브 레코즈'라는 이름에서 '책(Book)'을 빼고 '기네스 세계 기록(Guinness World Records)'으로 명칭을 변경했습니다.

이는 인쇄 매체 중심의 정체성에서 벗어나, TV, 디지털 등 모든 미디어를 아우르는 글로벌 브랜드로 나아가겠다는 비전을 선포한 것입니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와 미디어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기네스는 1999년 브랜드 명칭을 공식적으로 변경했습니다. '기네스북'이라는 이름은 브랜드의 기원이자 핵심이지만, 동시에 '책'이라는 물리적 형태에 갇히게 할 수 있었습니다. '기네스 세계 기록'이라는 새로운 이름은 보다 포괄적이고 현대적인 이미지를 부여했으며, 웹사이트, TV 쇼, 비디오 게임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브랜드를 확장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이 시기인 1998년 미국 FOX 채널에서 '기네스 세계 기록 프라임타임(Guinness World Records Primetime)'이라는 TV 쇼가 성공적으로 론칭한 것도 이러한 브랜드 확장 전략의 일환이었습니다.


[출처]

2000

[공식 웹사이트 출범]

'기네스 세계 기록'은 공식 웹사이트를 개설하며 본격적인 디지털 시대를 열었습니다.

웹사이트는 전 세계 누구나 기록에 도전하고 신청할 수 있는 창구가 되었으며, 방대한 기록 데이터를 검색할 수 있는 아카이브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연 1회 발행되던 책의 한계를 넘어, 실시간으로 기록을 업데이트하고 대중과 소통하는 동적인 플랫폼으로 진화했음을 의미합니다.  

2000년에 출범한 공식 웹사이트는 기네스 세계 기록의 비즈니스 모델을 근본적으로 바꾸었습니다. 이전까지 기록 등재는 출판사와 도전자 간의 제한적인 소통을 통해 이루어졌지만, 웹사이트는 이 과정을 민주화하고 전 세계로 확장했습니다. 또한, 웹사이트는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 기록 도전 컨설팅, 기업 마케팅 솔루션(GWR for Business) 등 새로운 사업 모델을 창출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출처]

2001

[모기업 디아지오, GWR 매각]

기네스 맥주의 모기업인 디아지오(Diageo)가 '기네스 세계 기록'을 미디어 기업인 굴레인 엔터테인먼트에 매각했습니다.

이로써 기네스 세계 기록은 약 50년 만에 탄생의 모태가 된 기네스 양조회사와 법적으로 완전히 분리되었습니다.

이는 브랜드가 맥주 홍보 수단을 넘어, 그 자체로 가치를 인정받는 독립적인 미디어 자산이 되었음을 공식화한 사건입니다.

주류 사업에 집중하기로 한 디아지오는 비핵심 자산이었던 기네스 세계 기록을 2001년, '토마스 기관차'의 소유사로 유명한 굴레인 엔터테인먼트(Gullane Entertainment)에 6,500만 달러에 매각했습니다. 이 매각은 기네스 세계 기록의 정체성이 '마케팅 자산'에서 '미디어 지적 재산(IP)'으로 완전히 전환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후 브랜드는 2002년 '바비 더 빌더'의 소유사인 HIT 엔터테인먼트를 거쳐, 2008년 현재의 소유주인 짐 패티슨 그룹에 인수되기까지 일련의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 전문 기업의 손을 거치게 됩니다.


[출처]

2007

['게이머스 에디션' 창간, 가상 세계의 위업을 공인하다]

기네스 세계 기록은 비디오 게임 기록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게이머스 에디션'을 최초로 발간했습니다.

이는 e스포츠의 부상과 함께 게임이 소수의 취미를 넘어 주류 문화로 인정받는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것입니다.

가상 세계에서의 성취가 현실의 기록과 동등한 가치로 공식 인정받기 시작한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2007년, 기네스 세계 기록은 매년 비디오 게임 관련 기록만을 모아 출간하는 '게이머스 에디션(Gamer's Edition)'을 창간하며 게임 문화를 본격적으로 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전문 서적의 등장은 단순히 게임 내 최고 점수나 가장 빠른 클리어 타임을 넘어, e스포츠 대회의 상금 규모, 최다 동시 접속자 수, 가장 많이 팔린 게임 등 산업적, 문화적 성취까지 기록의 대상으로 삼았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전 세계 수억 명에 달하는 게이머들의 열정과 노력을 공인하고, 가상 공간에서의 경쟁과 성취를 새로운 기록의 격전지로 공식화한 사건입니다.  


[출처]

2008

[짐 패티슨 그룹, GWR 인수]

'리플리의 믿거나 말거나!(Ripley's Believe It or Not!)'의 모회사인 짐 패티슨 그룹이 기네스 세계 기록을 인수했습니다.

기이하고 놀라운 사실들을 전시하고 출판하는 리플리와 세계 최고 기록을 다루는 기네스는 사업적으로 완벽한 시너지를 창출했습니다.

이 인수를 통해 기네스 세계 기록은 박물관, 어트랙션 등 체험형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게 되었습니다.  

2008년, 캐나다의 복합 기업인 짐 패티슨 그룹이 기네스 세계 기록을 인수했습니다. 짐 패티슨 그룹은 자회사인 리플리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이미 전 세계적으로 박물관과 어트랙션 사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믿기 힘든 이야기'를 다루는 리플리와 '세계 최고의 기록'을 다루는 기네스는 콘텐츠의 결이 매우 유사하여, 두 브랜드 간의 교차 홍보 및 공동 사업 개발에 있어 최적의 조합이었습니다. 이 인수는 기네스 세계 기록이 출판을 넘어 체험형 엔터테인먼트 브랜드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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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팬데믹 시대, 소셜미디어 기록의 폭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전 세계적인 봉쇄는 소셜 미디어 사용량의 폭증을 가져왔습니다.

틱톡, 유튜브 등 디지털 플랫폼은 새로운 기록 경신의 주 무대가 되었습니다.

기네스는 이러한 디지털 시대의 성취를 기록하며, 온라인으로 연결된 세상의 새로운 단면을 보여주었습니다.  

2020년은 전 세계가 멈춘 해였지만, 온라인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람들을 디지털 플랫폼으로 이끌었고, 이는 새로운 형태의 기록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16세의 찰리 디아멜리오는 2020년 11월, 틱톡에서 최초로 1억 팔로워를 달성한 인물이 되었고, 배우 채드윅 보스만의 추모 트윗은 역사상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은 트윗이 되었습니다. DJ 데이비드 게타는 페이스북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최다 시청자 기록을 세우며 코로나19 구호 기금을 마련하는 등, 기네스 세계 기록은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인류가 어떻게 소통하고 연대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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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세계 기록을 지배하다]

K팝 그룹 BTS와 블랙핑크는 단순한 음악 장르를 넘어, 전 세계적인 문화 현상으로 자리매김하며 기네스 기록을 다시 썼습니다. 강력한 팬덤은 소셜 미디어와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전례 없는 기록들을 만들어냈습니다. 기네스에 등재된 이 기록들은 K팝이 세계 주류 문화의 중심으로 부상했음을 공식적으로 증명하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2020년대는 K팝이 세계 음악 시장의 판도를 바꾼 시기였습니다. BTS는 2020년 'Dynamite'로 '24시간 동안 가장 많이 본 유튜브 영상' 기록을 세웠고, 다음 해 'Butter'로 자신들의 기록을 다시 한번 경신했습니다. 또한, 2020년 온라인 콘서트 '방방콘'은 75만 6천 명의 유료 시청자를 모아 '음악 콘서트 라이브 스트리밍 최다 시청자' 기록을 세우며 비대면 시대의 새로운 공연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블랙핑크 역시 'How You Like That'으로 유튜브 조회수 기록을 경신했으며, 멤버 리사와 로제는 솔로 활동을 통해 스포티파이 10억 스트리밍 돌파, 애플 뮤직 글로벌 차트 1위 등 K팝 솔로 아티스트로서 새로운 역사를 썼습니다. 이는 기네스 세계 기록이 특정 문화권의 팬덤 활동을 넘어, 글로벌 문화 지형의 변화를 측정하는 척도가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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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나이트, 게임을 넘어선 문화 이벤트]

에픽게임즈의 '포트나이트'가 '갈락투스 이벤트'로 1,530만 명이라는 동시 접속자 수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는 게임이 단순한 오락을 넘어,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이 동시간에 접속해 함께 경험하고 소통하는 거대한 사회적 이벤트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팬데믹 시대에 가상 공간이 새로운 소통의 장이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2020년 12월 1일, 마블 코믹스와의 협업으로 진행된 포트나이트의 시즌 피날레 이벤트 '갈락투스 이벤트'는 1,530만 명의 동시 접속자를 기록하며 '최다 동시 접속자 수' 기네스 세계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플레이어들은 아이언맨, 울버린과 같은 슈퍼히어로와 함께 거대한 악당 갈락투스에 맞서 싸우는 장대한 경험을 공유했습니다. 이는 게임이 어떻게 스토리텔링, 커뮤니티, 라이브 이벤트를 결합하여 새로운 형태의 엔터테인먼트를 창출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습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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