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관

환관, 권신, 북송,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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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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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 권신, 북송,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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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송 휘종 대 예술에 심취한 황제의 총애를 얻어 권력을 장악한 환관. * 채경과 손잡고 조정 권력을 농단 화석강 등 백성 수탈 정책으로 민심 이반 초래. * 금나라와의 해상의 맹을 주도했으나 외교적 무능과 군사적 실패로 북송 멸망의 결정적 빌미 제공. * 금나라 침공으로 휘종과 피신 후 복위 시도 소문과 여론의 비난 속에서 유배 및 참수형으로 비극적 최후를 맞이. * 국정 농단의 원흉으로 『수호전』에서도 비판적 인물로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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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4

[환관 동관의 탄생과 입궁]

1054년 태어난 동관은 어릴 적부터 환관 이헌에게 길러져 황궁의 급사가 됩니다.

예술에 심취했던 북송 휘종의 눈에 띄며 권력의 핵심으로 다가설 기회를 잡게 됩니다.

동관은 1054년에 태어났습니다.

1100

[휘종 총애로 권력 정점]

예술품 수집에 혈안이 된 휘종의 총애를 받던 동관은 항주 명금국에서 채경과 가까워집니다.

이후 휘종의 신임을 등에 업고 조정으로 진출, 채경과 손잡고 환관과 대신들을 수족처럼 부리며 북송 조정의 권력을 완전히 장악합니다.

환관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권세를 휘두르며 서북 변방군까지 지휘하는 등, 명실상부한 권력의 정점에 오릅니다.

1102

[응봉국 설치와 수탈]

동관은 쑤저우와 항저우에 응봉국을 설치합니다.

이 기관은 휘종의 사치와 예술품 수집 욕구를 채우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진귀한 물품들을 강제로 수탈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백성들의 고통은 날로 깊어집니다.

1105

[화석강 강행, 민심 이반]

전국 각지에서 기이한 꽃과 돌을 강제로 수집해 대궐을 장식하는 '화석강'을 실행합니다.

백성들에게서 물품을 빼앗아 수도 카이펑으로 실어 나르는 이 가혹한 정책은 민심을 극도로 악화시켰고, 훗날 대규모 반란의 불씨가 됩니다.

1111

[금과의 동맹 '해상의 맹' 구상]

요나라 황제 생일 사절로 갔던 동관은 요나라 관료 출신 마식의 헌책을 듣고,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와 손잡고 요나라를 멸망시킨 후 연운 16주를 되찾을 원대한 계책을 세웁니다.

이것이 훗날 북송을 파멸로 이끌 '해상의 맹'의 시작이었습니다.

1120

[북송의 운명을 가른 해상의 맹]

마식이 금나라를 세운 완안아골타를 만나 요나라 멸망과 연운 16주 회복을 위한 '해상의 맹'을 체결합니다.

금나라는 고북구까지, 송나라는 연경까지 점령하고 연운 16주를 송나라가 차지하기로 합의하지만, 이는 북송에게 재앙을 가져올 위험한 서약이었습니다.

1121

[화석강 부른 방랍의 난 진압]

화석강 등으로 극심해진 백성들의 불만이 폭발, 방랍이 대규모 반란을 일으키자 동관은 직접 진압에 나섭니다.

이로 인해 금나라와 요나라를 동시에 공격한다는 계획은 지연되었고, 송나라의 군사적 무능함이 드러나는 계기가 됩니다.

[연경 공격 실패, 금나라 이권 챙기기]

방랍의 난 진압 후, 동관은 연경을 공격했으나 노구교에서 대패합니다.

이후 요나라 장군들의 항복으로 일부 영토를 얻자 기세등등하게 20만 대군을 이끌고 연경을 재공격했으나 처참히 전멸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금나라는 송나라를 믿을 수 없다고 판단, 직접 연경을 점령하고 송나라에게 연운 16주 중 7주만을 내주는 대신 매년 막대한 세금과 비단을 요구하는 굴욕적인 결과를 초래합니다.

동관은 연경을 되찾았다는 명목으로 왕 작위까지 받지만, 실상은 막대한 국고 손실만 입혔을 뿐이었습니다.

1125

[거듭된 맹약 위반, 침공 빌미 제공]

송나라는 금나라와의 맹약을 거듭 어기며 금나라의 침공 명분을 제공합니다.

금나라에 반란을 일으킨 장각을 받아들였다가 처형해 송환하고, 군량 제공을 거부하며 담진 문제로 분쟁을 일으킵니다.

결정적으로 금나라에 쫓기던 요나라 천조제를 비밀리에 보호하려다 발각되었고, 결국 천조제는 이듬해 1125년 금나라에 붙잡힙니다.

이 모든 행위는 금나라가 송나라를 공격할 결정적인 구실이 됩니다.

1126

[금군 압박, 휘종의 양위와 피신]

1126년 정월, 금나라 군대가 황하에 도달하여 수도 개봉을 위협하자, 휘종은 황위를 흠종에게 넘기고 동관 등을 데리고 남경 응천부로 급히 피신합니다.

국정 농단에 책임이 큰 동관도 휘종과 함께 혼란 속에서 도피합니다.

[굴욕적인 화의와 복위 소문]

금나라와 송나라는 영토 할양을 조건으로 굴욕적인 화의를 맺고 금군이 철수합니다.

이 와중에 동관은 휘종을 다시 황위에 올리려 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더욱 큰 비난에 직면하게 됩니다.

[권신의 몰락, 비참한 최후]

1126년 3월, 동관은 휘종과 함께 개봉으로 돌아오자마자 거센 비난 여론에 직면합니다.

결국 유배를 떠나야 했고, 유배 도중에 처형당하여 그의 목은 개봉 한복판에 내걸리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그의 권력 남용과 국정 농단은 소설 『수호전』에서도 비판적인 인물로 묘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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