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위 도무제

황제, 군주, 창업군주, 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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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3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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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군주, 창업군주, 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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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의 초대 황제 탁발규는 371년 대나라 왕족으로 태어났다. 격동의 오호십육국 시대 뛰어난 전략과 통찰력으로 북위를 건국하고 강력한 국가 기틀을 마련했다. 후연과의 참합파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며 세력을 확장했고 지식인을 중용하며 제도를 정비해 북위의 황금기를 열었다. 그러나 말년에는 의심과 학정으로 변모 결국 아들 탁발소에게 피살당하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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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

[북위 도무제 탁발규 탄생]

대나라의 왕 탁발십익건의 손자이자 탁발식의 아들인 탁발규가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기 몇 달 전, 아버지가 반란으로 전사하는 비극 속에서 출생했다.

탁발규가 태어나기 몇 달 전 대나라의 반란에서 아버지 탁발식 전사했다. 그의 어머니 하씨 부인은 임신 중이었고, 탁발십익건은 하란부와의 관계 유지를 위해 며느리 하씨를 자신의 아내로 삼았다.

376

[전진의 대나라 침공과 위기]

전진의 대규모 철기부대가 대나라를 침공하며 탁발규를 포함한 왕족들이 터전을 잃었다.

혼란 속에서 삼촌 탁발식군이 반란을 일으켜 형제들을 살해하고, 탁발규의 어머니 하씨는 탁발규에게 할아버지 십익건을 포박하여 전진에 투항하게 했다.

전진 군대가 식군의 난을 평정 후, 탁발식군은 형제 살해 죄로 거열형에 처해졌다. 탁발규와 하씨 부인은 아버지를 묶고 투항한 죄로 촉 땅으로 유배되었다.

378

[전진, 동진 양양 공격 시작]

전진의 왕 부견이 동생 부비에게 17만 대군을 이끌고 동진의 양양을 공격하도록 지시하며, 대대적인 남정의 서막이 올랐다.

부견은 부비에게 동진의 양양을 공격하게 했으나, 이는 훗날 비수대전 패배의 빌미가 된다.

379

[동진 양양자사 주서 항복]

전진의 공격으로 양양자사 주서가 항복하며, 부견은 기뻐했으나 곧이어 광릉 전투에서 패배하며 동진 정벌에 대한 욕망이 커졌다.

주서의 항복으로 부견은 동진 정벌의 확신을 가졌고, 모든 관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모용수의 찬성에 힘입어 남정을 감행하게 된다.

383

[비수 대전 참패]

부견이 이끄는 전진 군대가 동진의 사안 군대에게 비수 대전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당했다.

이 패배는 전진의 몰락을 가속화하고 여러 부족의 독립을 촉발시켰다.

전진의 비수 대전 패배는 오호 십육국 시대의 판도를 바꾸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 틈을 타 탁발규와 하씨 모자는 장안을 떠나 모용수와 함께 북방으로 향했다.

386

[선비 연맹 재수립 및 대왕 추대]

탁발규가 하란부에 도착하자 옛 부족 수령들이 투항했고, 선비 연맹이 재수립되며 탁발규를 대왕으로 추대했다.

이로써 탁발규는 북위의 기반을 다지는 중요한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대왕으로 추대된 탁발규는 국호를 '위'(북위)로 변경하고 연호를 '등국'으로 선포하며 도읍을 성락에 정했다. 이는 북위 건국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대왕으로 즉위]

음력 1월 6일, 탁발규가 대왕으로 즉위하며, 북위 건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는 386년 정월에 선비 연맹이 재수립되고 그를 대왕으로 추대한 공식적인 행사였다.

연호는 등국으로 정해졌으며, 도읍은 성락에 자리 잡았다. 이는 혼란스러운 오호십육국 시대에 새로운 국가가 탄생했음을 알리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위왕으로 즉위]

음력 4월 22일, 탁발규가 위왕으로 즉위하며 북위의 실질적인 통치자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했다.

이는 불안정한 초기의 정치 상황을 안정화하는 중요한 단계였다.

유현이 탁발규의 숙부 굴돌을 이용하여 즉위의 합법성을 의심하자, 하씨의 도움으로 하란부로 이주, 후연의 모용수에게 지원을 요청하여 굴돌을 무찔렀다. 이로 인해 유현 세력도 약해지고 탁발규의 입지는 더욱 강화되었다.

395

[참합파 대승과 후연과의 전쟁]

등국 10년, 북위의 강성함에 불안을 느낀 모용수가 태자 모용보를 보내 북위를 멸망시키려 했다.

탁발규는 뛰어난 전략으로 모용보의 군대를 참합파에서 기습하여 수만 명을 죽이고 수만 명의 투항을 받아내며 대승을 거두었다.

이는 북위의 위상을 크게 드높인 전투였으나, 투항병을 모두 살해하는 돌이킬 수 없는 실책을 저질렀다.

탁발규는 강변에 방어 진지를 구축하고 모용보와 중산의 연락을 끊었다. 70세의 모용수가 죽었다는 서신을 위조해 모용보가 급히 회군하게 만들었고, 이때 참합파에서 기습 공격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이 사건은 후연과의 관계를 완전히 적대적으로 만들었다.

396

[모용수의 평성 탈환 시도]

모용보의 실책을 용납하지 못한 모용수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출정하여 방비가 허술한 평성을 점령했다.

그러나 참합파의 참혹한 현장을 목격하고 충격으로 병세가 악화되어 중산으로 회군하던 중 사망했다.

모용수의 죽음은 후연의 멸망을 가속화했고, 탁발규는 이를 기회 삼아 40만 대군을 이끌고 후연의 영토를 대거 점령하며 북위의 세력을 확고히 했다.

397

[후연 신 땅 공략 성공]

참합파 전투에서 투항병을 살해한 탁발규의 실책 때문에 후연 사람들이 격렬하게 저항했다.

이에 탁발규는 투항한 사람들을 우대하는 정책으로 전환하며, 마침내 신 땅 공략에 성공했다.

탁발규의 유화책은 효과를 발휘하여, 후연의 마지막 거점 중 하나인 신 땅을 손에 넣으며 북위의 영토를 더욱 확장할 수 있었다. 이는 그의 지배 전략의 전환점을 보여준다.

398

[북위 황제 즉위 및 건국]

탁발규가 황제에 즉위하고 수도를 평성으로 정함으로써 명실상부한 북위의 개국 황제가 되었다.

그는 지식인을 중용하고 제도와 예의범절을 정비하며 국가의 기틀을 확립했다.

궁전과 종묘를 짓고, 통일된 도량형을 규정하며, 관직의 품급과 의식 음악을 제정하고 법령을 명시했다. 행정 구역과 군사 제도도 정비하여 질서 정연한 나라를 만들어나갔다. 조세와 부역 제도를 정비하여 농민 생활을 안정시키고 경제 발전을 이끌었다.

399

[북위 황제 재위 시작]

탁발규가 천흥 원년 음력 12월 2일에 북위의 초대 황제로 공식 즉위하며 재위 기간을 시작했다.

이는 그가 황제에 즉위한 398년 이후, 제국의 통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이 날짜는 그의 공식적인 통치 시작을 나타내며, 북위의 기틀을 다지는 시기의 핵심적인 시점으로 기록된다.

402

[시벽 전투에서 후진 격파]

탁발규가 시벽에서 수만 명에 달하는 후진의 대군을 물리치며 북위의 군사적 우위를 입증하고 시국을 안정시켰다.

이 승리는 중원 지배의 야심을 공고히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 전투는 북위가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강력한 입지를 다지는 데 기여했으며, 탁발규의 통치력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409

[아들 탁발소에 의한 피살]

말년에 의심이 많아져 많은 신하를 죽이며 학정을 펼치던 탁발규는 결국 자신의 아들 탁발소의 손에 살해당하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그의 죽음으로 북위의 2대 황제 자리는 장남 탁발사(명원제)에게 돌아갔다.

탁발규는 후계 문제에 대한 불안감으로 동생 탁발의를 시험하고, 의심이 가는 대신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하여 조정과 백성들 사이에 공포를 조성했다. 이러한 학정이 그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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