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장 (삼국지)

후한, 정치인, 군벌, 익주

num_of_likes 61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30:58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no image
후한, 정치인, 군벌, 익주
report
Edit

• 후한 말 익주를 통치했던 군벌이자 정치인입니다. • 온화한 성품으로 익주목에 추대되었으나 유약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 외부 세력에 흔들리며 장로와 조조를 견제하려다 유비에게 익주를 빼앗겼습니다. • 백성의 고통을 덜기 위해 항복을 택한 비운의 인물입니다. • 손권에 의해 다시 익주목으로 추대되었으나 곧 병사했습니다.

연관 연혁
  1. 등록된 연관연혁이 없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194

[아버지 사망과 익주목 승계]

아버지가 이각·곽사·번조 정권 제거를 시도하다 실패하고 형제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충격으로 아버지 유언이 병사하자, 유장은 주(州)의 고관 조위 등에게 온화한 성품을 인정받아 익주자사로 추대됩니다.

아버지 유언은 장안 조정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면죽현에서 성도현으로 거처를 옮기는 등 어려운 시기를 겪다가 병사합니다. 이로 인해 익주는 혼란에 빠졌고, 장안 조정은 호모를 익주자사로 보내려 했으나 유장의 세력이 이를 저지하며 유장이 감군사자 겸 익주목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200

[조위의 반란과 익주 내전]

익주에는 아버지 유언이 데려온 유민 세력 '동주병'과 기존 '익주 토박이'들 사이에 갈등이 깊어졌습니다.

유장의 유약함으로 동주병의 침탈이 이어지자 익주 토박이들의 불만이 폭발했고, 결국 민심을 얻고 있던 조위가 익주 대성들과 결탁해 유장을 공격합니다.

유장은 앞서 한중 태수 장로를 견제하려 했으나 연이은 패배를 겪었고, 이 과정에서 방희와 조위와의 불화까지 겹쳐 내부 분열이 심화되었습니다. 조위의 반란 초기, 촉군, 광한군, 건위군이 호응하며 유장은 성도성에 고립되는 큰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동주병들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결사 항전하여 반란군을 무찔렀고, 이 내전은 201년까지 이어지며 조위는 그의 부하들에게 처단되면서 막을 내립니다.

208

[조조 견제를 위한 유비와의 접촉]

조조의 세력이 강성해져 형주를 노린다는 소식에, 유장은 조조 견제를 위해 사신 음부와 장숙을 파견합니다.

하지만 적벽대전 직후 조조가 패배하자, 장숙은 조조에게 불만을 품고 유비와 통교할 것을 유장에게 권유합니다.

결국 유장은 법정을 유비에게 보내 협력을 모색하며 대규모 지원을 약속합니다.

음부와 장숙 파견 시기에 대한 기록이 다소 불분명하지만, 대략 208년경 조조의 세력 확장에 대한 위기감 속에서 유비와의 접촉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장송과 법정은 유비에게 익주를 넘길 모의를 하고 있었고, 유비 역시 익주를 탈취할 목적으로 유장의 요청에 응할 계획이었습니다. 유장은 이들의 계략을 알지 못한 채 장로 견제라는 명분 아래 유비를 익주로 불러들이는 치명적인 실책을 저지르게 됩니다.

211

[유비의 익주 입성]

장송과 법정의 모략에 완전히 속은 유장은 장로를 토벌하고 조조를 견제한다는 명목으로 유비를 익주로 초청합니다.

황권과 왕루 등 신하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비는 보병 수만 명을 이끌고 익주에 들어옵니다.

유장은 유비를 직접 마중 나가 백여 일간 환영 행사를 열고, 행대사마 영사례교위로 추천하는 등 극진히 대우합니다. 또한 막대한 병력과 물자를 지원하지만, 유비는 장로 토벌에는 나서지 않고 대신 가맹현에 주둔하며 익주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주력합니다. 이는 훗날 유장이 익주를 잃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212

[유비의 배신과 익주 전쟁 발발]

유비는 손권 지원을 핑계로 동쪽으로 돌아가겠다며 추가 병력과 물자를 요구하지만, 유장은 이를 절반만 허락합니다.

이에 유비는 유장이 인색하다고 비난하며 여론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립니다.

이때 광한태수 장숙이 동생 장송의 음모를 고발하자, 유장은 뒤늦게 장송을 처형하고 유비와의 교통을 끊으려 합니다.

유비의 속셈이 드러나자 유장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만, 이미 유비는 대규모 병력과 물자를 확보한 상태였습니다. 유비는 백수군독 양회와 고패를 베고 본격적으로 익주 공략을 시작합니다. 정탁 등 신하들이 유비군이 고립된 틈을 타 청야 전술로 맞서야 한다고 건의했으나, 유장은 백성들을 이동시켜 적을 피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아 이 계책을 쓰지 않았습니다. 이로써 유비와 유장 간의 피할 수 없는 익주 쟁탈전이 시작됩니다.

214

[백성을 위한 항복과 익주 상실]

유비군의 맹공에 낙현이 함락되고, 마침내 익주의 수도 성도가 포위됩니다.

성도 안에는 아직 충분한 병력과 물자가 있었고 백성들도 결사항전을 원했으나, 유장은 백성의 고통을 더는 것이 우선이라 판단합니다.

결국 유장은 유비에게 항복하며 익주 통치자의 자리에서 내려옵니다.

유비는 장예를 사자로 보내 유장에 대한 예우와 남은 사람들의 안전을 약속했습니다. 유장은 자신과 친분이 두터웠던 유비 측의 간옹과 같은 수레를 타고 성 밖으로 나가 항복했습니다. 휘하 장수들과 백성들은 눈물을 흘렸으나, 유장의 결단으로 더 이상의 유혈 사태는 막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유장은 남군 공안으로 거처를 옮기고 재산과 진위장군 인수를 돌려받았습니다.

219

[손권에 의한 재임명과 병사]

유비에게 항복한 지 5년 뒤, 손권이 형주를 기습적으로 탈환합니다.

손권은 유장을 다시 익주목으로 추대하여 의도군 자귀현에 머물게 했으나, 그 해에 유장은 병으로 세상을 떠나며 파란만장했던 삶의 막을 내립니다.

유장은 한때 자신의 영토였던 익주의 목으로 다시 임명되었으나, 이는 실질적인 통치권보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강했습니다. 짧은 재임 기간 후 병사함으로써, 유장은 삼국지의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댓글 게시판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