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충

황제, 절도사, 창업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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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3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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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절도사, 창업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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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량의 초대 황제이자 오대십국 시대의 막을 연 인물. • 당 말기 혼란 속에서 무력으로 세력을 키운 강력한 절도사. • 황소의 난에서 당나라로 전향 후 실권을 장악 당 황실을 무너뜨리고 제위를 찬탈. • 백마의 화 등 잔혹한 숙청과 문란한 사생활로 논란이 많았음. • 결국 친아들에 의해 살해당하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파란만장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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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2

[주전충 출생]

당나라 대중 6년 10월 21일(양력 12월 5일)에 안휘성 숙주시 탕산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고 학문과 무예에 전념했습니다.

당나라 대중 6년 10월 21일(양력 12월 5일), 주전충은 안휘성 숙주시 탕산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은 후 어머니와 두 형과 함께 친척 집에서 소작을 하며 살았으나, 농업을 싫어하고 학문과 무예에 전념했습니다.

874

[황소의 난 가담]

황소의 난이 발발하자 둘째 형 주존과 함께 황소의 무리에 가담하여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황소의 난이 발발하자 주전충은 둘째 형 주존과 함께 황소의 무리에 가담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존은 전사했으나, 주전충은 무리 내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성장했습니다.

882

[황소를 배신하고 당나라 귀순]

황소의 경계를 눈치챈 주온은 당나라 장군 왕중영과 내통하여 장안에서 황소를 배신하고 격퇴했습니다.

황소는 처음부터 인망이 있던 주온을 경계했고, 주온 역시 이를 알아챘습니다. 당나라 장군 왕중영의 밀사를 받은 주온은 왕중영과 내통하여 장안에서 황소를 배신하고 격퇴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당나라로부터 '전충' 이름 하사]

황소 격퇴의 공로로 당나라 조정으로부터 '전충'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아 주전충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황소를 배신하고 격퇴한 공로를 인정받아 당나라 조정은 주온에게 좌금오위대장군·하중행영초토부사의 지위와 함께, 충성을 의미하는 '전충'이라는 이름을 하사했습니다. 이후 그는 주전충으로 불리며 당나라의 무장으로 활동했습니다.

889

[동평군왕 책봉]

절도사로 승진한 후 동평군왕에 책봉되어 901년까지 작위를 유지했습니다.

주전충은 절도사로 승진한 이후 889년부터 901년까지 동평군왕 작위를 유지했습니다. 이 시기에 황소에 대항했던 이극용과의 당나라 내부 주도권 쟁탈전에서 승리해 당나라의 실권을 장악하기에 이릅니다.

901

[양왕 책봉]

동평군왕에서 승진하여 양왕으로 책봉되었습니다.

901년 2월 1일, 주전충은 양왕으로 책봉되어 907년 6월 1일까지 이 작위를 유지했습니다. 이 시기에 당나라 실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선양을 준비했습니다.

904

[당 소종 살해 및 애제 옹립]

당나라 소종을 살해하고 그의 아들인 13세 애제를 제위에 올린 뒤 제위 찬탈을 준비했습니다.

904년, 주전충은 당나라의 소종 황제를 살해하고 그의 9번째 아들인 13세 애제를 새로운 황제로 옹립했습니다. 이는 당나라 황실로부터 제위를 선양받아 새로운 왕조를 열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습니다.

[황후 장혜 사망]

주전충의 황후이자 원정황태후인 장혜가 사망했습니다.

857년에 태어난 주전충의 황후이자 원정황태후인 장혜가 904년에 사망했습니다.

905

[백마의 화 발생]

심복들의 진언에 따라 당나라 고관 30여 명을 백마역에서 처형하고 그 시체를 황하에 버린 '백마의 화'를 일으켰습니다.

905년, 주전충의 심복인 이진과 장현휘 등이 당나라 고관들을 황하에 던져버리라고 진언했고, 주전충은 이를 실행에 옮겼습니다. 이에 배추, 독고손, 최원, 왕부, 조숭 등 당나라 고관 30여 명이 백마역에서 처형되어 시체가 황하에 버려졌는데, 이를 역사에서는 '백마의 화'라고 부릅니다.

907

[후량 건국 및 황제 즉위]

애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국호를 '양'으로 정하고 후량의 초대 황제로 즉위하여 새로운 왕조를 열었습니다.

907년 6월 1일, 주전충은 당나라 애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후량을 건국하고 초대 황제로 즉위했습니다. 그는 국호를 '양'으로 정하고 연호를 '개평'으로 바꾸면서 당나라 멸망과 함께 오대십국 시대의 막을 열었습니다.

909

[존호 '예문성무광효황제' 책봉]

황제 즉위 후 3년째 되는 해에 '예문성무광효황제'라는 존호를 받았습니다.

후량 개평 3년인 909년, 주전충은 '예문성무광효황제'(睿文聖武廣孝皇帝)라는 존호를 받았습니다.

911

[연호를 건화로 변경]

재위 5년째에 연호를 '개평'에서 '건화'로 변경했습니다.

911년부터 912년까지 '건화' 연호를 사용했습니다. 이는 이전 연호인 '개평'의 뒤를 이은 것으로, 그의 통치 후반기를 상징합니다.

912

[아들에게 살해당하며 사망]

제위를 양자 주우문에게 물려주려던 계획에 불만을 품은 셋째 아들 주우규에게 살해당하며 생을 마감했습니다.

912년 7월 18일, 주전충은 연로하고 병이 깊어지자 양자 박왕 주우문에게 제위를 물려주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불만을 품은 셋째 아들 영왕 주우규가 주전충과 주우문을 살해하고 황위를 찬탈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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