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기 (공량)
음악가, 악사, 위나라 인물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30:47
후한 말 ~ 삼국시대 위나라의 최고 악사. 유표와 조조 등 여러 군주를 거치며 아악을 체계적으로 복원하고 악기 및 음악 이론을 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옛 음악을 계승하고 부흥시킨 업적으로 세계 최초라 할 만한 공헌을 했습니다. 그러나 조조의 아들 조비와의 갈등으로 불운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188
[아악랑 사임 및 형주 이동]
음률에 밝아 아악랑에 임명되었으나, 중평 5년(188년) 질병으로 사임했다. 주와 군의 관리와 사도의 초빙을 거절하고 형주로 이동했다.
음률에 밝아 아악랑에 임명되었으나, 중평 5년(188년)에 질병으로 사임하였다. 주와 군의 관리와 사도가 초빙하였으나, 두기는 응하지 않고 형주로 갔다.
190
형주자목 유표는 두기와 맹요(孟曜)로 하여금 한의 황제를 위한 아악을 편성하도록 하였다.
208
[조조에게 발탁, 아악 창제 시작]
유표 사후 아들 유종이 조조에게 투항하자, 두기는 조조에게 발탁되어 군모좨주에 임명되었다. 그는 태악 사무에 참여하며 아악을 창제하라는 명을 받았다.
건안 13년(208년), 유표가 죽고 아들 유종이 뒤를 이었다. 유종은 조조에게 투항하였고, 조조는 두기를 군모좨주(軍謨祭酒)에 임명하여 태악(太樂)의 사무에 참여시켰으며 아악을 창제할 것을 명하였다.
210
[옛 음악 부흥의 선구자가 되다]
두기는 태악 사무를 총괄하며 옛 경전과 조정 의례를 연구해 음악 이론을 정립하고 악기를 제작했다. 이로써 옛 음악을 계승하고 부흥시키는 획기적인 업적을 남겼다.
두기는 일체를 총괄하여 연주하였는데, 마음을 쏟아 멀리 옛 경전을 고찰하고 가까이는 조정의 옛 의례를 취하여 각종 음악의 이론을 가르쳤으며, 각종 악기를 만들어 갖추었다. 옛 음악을 계승하여 부흥시킨 것은 모두 두기로부터 시작하였다.
215
[종 제작 갈등, 조조의 판단으로 승리]
악기 장인 시옥에게 구리 종 제작을 맡겼으나, 음률 불일치로 마찰이 생겼다. 조조의 중재로 두기의 음률 정통성이 입증되었고, 시옥은 벌을 받았다.
시옥은 후한 때 주종공(鑄鐘工)을 지낸 자로, 손재주가 뛰어나 새로운 물건을 많이 만들어 당대의 고귀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었다. 두기는 시옥에게 구리로 된 종을 만들게 하였는데, 종소리의 맑고 탁함이 음률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누차 폐기하고 다시 만들게 하니, 시옥은 두기에게 맑고 탁함은 일정한 표준이 없다고 대들었다. 두기와 시옥은 서로 조조에게 아뢰었고, 조조는 완성된 종을 가져오도록 한 후 다른 순서에 따라 연주하도록 하였다. 이로써 두기가 음률에 정통하고 시옥이 말이 허황되었음을 알게 되었고, 이에 시옥과 그의 두 아들에게 벌을 주어 모두 말을 기르도록 하였다.
220
황초 연간, 두기는 태악령(太樂令)·협률도위(協律都尉)에 임명되었다.
226
[조비의 미움을 사 투옥 및 사망]
위 문제 조비의 미움을 사 옥에 갇힌 후, 면직된 상태로 세상을 떠났다. 평소 조비가 총애하던 시옥과의 관계와 연주 명령 거부가 발단이 되었다.
문제(조비)는 평소 시옥을 총애하였었다. 한때 문제는 두기에게 빈객들 앞에서 생황을 불고 비파를 타도록 명한 적이 있었는데, 두기가 이를 곤란해하였다. 이때부터 문제는 두기에게 불만을 품었고, 다른 일을 트집잡아 두기를 잡아 옥에 가두었다. 두기는 면직된 상태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