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소 (상우후)
황족, 제후
최근 수정 시각 : 2026-01-26- 12:18:41
동오의 기초를 닦은 '소패왕' 손책의 외아들인 손소는 삼국시대의 격랑 속에서 동오 황실의 일원으로 삶을 살았습니다. 부친 손책이 요절한 후 숙부 손권의 보살핌 아래 성장했으며, 손권이 황제에 즉위하자 오후와 상우후에 봉해지며 제후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했습니다. 비록 부친과 같은 무용은 기록되지 않았으나 그의 가계는 손책의 정통성을 잇는 상징적인 존재였으며, 아들 손봉에 이르러 정치적 풍파에 휩쓸려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기까지 동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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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군 부춘현에서 탄생]
동오의 창업 주역인 손책의 아들로 태어나 가문의 혈통을 잇는 후계자로 주목받습니다. 오군 부춘현의 명문가인 손씨 가문의 일원으로 태어난 그는 태생부터 남다른 신분을 가졌습니다.
손소는 손책의 유일한 아들로 태어나 가문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인물입니다.
당시 강동을 평정하던 손책의 뒤를 이을 유망한 혈통으로 주변의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부춘 손씨 가문의 권위가 절정에 달하던 시기에 태어나 황실 종친으로서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부친 손책의 갑작스러운 사망]
강동의 패권을 장악했던 부친 손책이 26세의 나이로 급거 세상을 떠나며 가문의 비극을 맞이합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손소는 보호자가 사라진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손책이 습격을 받아 요절하면서 손소는 아주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부친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손소의 인생뿐만 아니라 동오 전체의 권력 지도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후 손소는 부친의 동생이자 자신의 숙부인 손권의 보살핌 아래에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숙부 손권의 가업 승계]
부친 손책의 뒤를 이어 숙부 손권이 강동의 통치권을 이어받으며 새로운 시대가 열립니다. 손소는 손권의 조카로서 황실 내부에서 조용한 보호를 받으며 성장기를 보냈습니다.
손권은 형의 아들인 손소를 지극히 아꼈으며, 그가 장성할 때까지 가문 내에서 귀하게 대접했습니다.
손소는 숙부의 통치 아래에서 정치적인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학문과 예법을 익히며 자랐습니다.
부친의 용맹함 대신 온화하고 차분한 성품을 닦으며 황실의 일원으로서 자질을 갖추어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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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부 손권의 황제 즉위]
숙부 손권이 마침내 오나라의 황제로 즉위하며 동오 제국이 공식적으로 출범합니다. 이로 인해 손소의 신분은 제후 후보자이자 황제의 조카로 격상되어 권위가 높아졌습니다.
손권의 즉위는 손씨 가문이 단순한 지방 호족에서 황실 가문으로 도약했음을 의미합니다.
국가의 기틀이 확립되는 과정에서 손소는 황실의 정통성을 보완하는 핵심 인물이 되었습니다.
역사적인 황제 즉위식과 함께 손소의 정치적 위상도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부친의 장사환왕 추존]
손권이 황제로 즉위한 후 형 손책의 공적을 기려 '장사환왕'이라는 시호를 올립니다. 부친의 명예가 공식적으로 회복되면서 아들인 손소의 정통성 또한 함께 강화되었습니다.
장사환왕이라는 추존은 손책이 동오의 실질적인 창업자 중 한 명임을 국가적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이는 손책의 유일한 아들인 손소에게 황실 내에서의 확고한 서열과 예우를 보장하는 조치였습니다.
가문의 영광이 복구됨에 따라 손소는 황실의 어른으로서 대우받기 시작했습니다.
[오후(吳侯) 관작 책봉]
황제 손권의 명에 따라 동오의 명예로운 작위인 '오후'에 책봉되어 제후의 반열에 오릅니다. 부친 손책이 가졌던 영광을 잇는 의미 깊은 작위를 공식적으로 하사받았습니다.
오후 책봉은 손소가 황실의 핵심적인 기둥임을 대내외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작위와 함께 상당한 규모의 식읍을 하사받아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이는 숙부 손권이 형 손책의 은혜를 잊지 않고 그 아들에게 최대한의 예우를 갖춘 것으로 풀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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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우후(上虞侯) 개봉]
이후 작위가 오후에서 '상우후'로 변경되어 상우 지역을 새로운 봉지로 받게 됩니다. 전략적 요충지이자 비옥한 상우를 다스리며 안정적인 제후로서의 삶을 이어갔습니다.
작위의 변경은 황실 내부의 행정적 조정이나 봉지 관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상우 지역은 강동의 핵심 지대 중 하나로, 이곳의 후로 봉해진 것은 손소의 위상을 재확인한 것입니다.
손소는 상우후로서 지역의 안정을 도모하고 황실의 권위를 현지에 전파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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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오의 중신으로서 영면]
3세기 중반경, 동오의 원로 종친으로서 조용히 생을 마감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부친처럼 전장에서 화려한 공을 세우지는 못했으나 황실의 기틀을 지킨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손소의 죽음은 동오 창업 세대와 그 직계 가족들이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함을 의미했습니다.
그는 평생 동안 숙부인 손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황실의 화합에 기여한 인물로 남았습니다.
그의 온건한 삶은 격동의 삼국시대에 드물게 평온하게 마무리된 종친의 사례로 기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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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손봉의 작위 승계]
손소가 사망한 뒤 그의 아들인 손봉이 상우후의 작위를 이어받아 가업을 계승합니다. 손봉은 부친의 명예와 지위를 그대로 물려받아 황실 내에서의 입지를 유지했습니다.
손봉은 손책의 손자로서 황실 내에서 여전히 강력한 정통성을 가진 인물로 인식되었습니다.
가문은 대를 이어 상우 지역의 통치권과 제후로서의 특권을 누리며 번영을 지속했습니다.
이 시기까지 손소의 가계는 동오 내에서 매우 안정적이고 권위 있는 위치를 점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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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의 황위 추대 루머]
말대 황제 손호의 폭정 속에서 민간에 손봉이 황제가 되어야 한다는 소문이 널리 퍼집니다. 백성들은 정통성 있는 손책의 손자인 손봉에게 희망을 걸며 현 체제에 항거했습니다.
당시 손호의 실정으로 민심이 이반되자 사람들은 '손봉이나 손분 중 한 명이 황제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믿었습니다.
이러한 소문은 손봉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를 정치적 소용돌이의 중심부로 끌어들였습니다.
가문의 높은 정통성이 역설적으로 가문을 위협하는 독이 되어 돌아온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손봉의 처형과 가문의 몰락]
반란을 두려워한 손호에 의해 아들 손봉이 처형당하면서 손소의 가계는 비극적인 종말을 맞습니다. 이 사건으로 손책의 직계 혈통이 끊기며 동오 황실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손호는 자신의 권력을 위협할 수 있는 모든 싹을 잘라내는 과정에서 무고한 손봉을 죽였습니다.
이는 손소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제후 가문이 한순간에 붕괴되는 처참한 결말이었습니다.
손책의 아들로서 평온한 삶을 살았던 손소의 역사는 아들의 비극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