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후한)

정치가, 촉한, 후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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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3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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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촉한, 후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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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한 말 촉한의 청렴한 정치가이자 유비와 제갈량의 신임을 받은 인물. - 익주목 유장 휘하에서 검소한 생활과 엄격한 법 집행으로 백성들의 신뢰를 얻었으나 호족의 미움을 사기도 함. - 유비의 촉 평정 후 제갈량과 함께 국정 핵심 요직을 맡으며 허심탄회한 조언을 아끼지 않음. - 관직 생활 내내 쌀 한 섬 재산조차 없었던 극도의 청렴함으로 제갈량이 죽은 후에도 그의 모범을 강조할 정도였음. - 아들로는 촉한의 명신 동윤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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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유비 휘하의 동화, 첫 지방관 임명]

선조는 파군 강주 출신이었으나, 한 말에 동화는 종족을 이끌고 서쪽으로 이주했다. 익주목 유장이 그를 우비장, 강원장, 성도령으로 임명하며 동화의 공직 생활이 시작되었다.

선조는 본래 파군 강주 사람이었으나, 한 말에 동화는 종족을 이끌고 서쪽으로 이주해왔다. 익주목 유장은 그를 우비장(牛□長), 강원장(江原長), 성도령(成都令)으로 임명하며 동화는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198

[검소함과 청렴함으로 풍속 개혁]

동화는 부임지에서 솔선수범하여 검소한 생활을 하고 사치스러운 풍속을 개혁했다. 그는 수수한 옷을 입고 간소한 식사를 하며 신분을 넘는 행위를 금지했고, 이에 대한 규제를 만들어 그가 부임한 곳마다 풍속이 선한 방향으로 변해갔다.

촉 땅은 토질이 넉넉하고 곡식이 풍성하여 당시 풍속은 사치스러웠다. 재산이 있는 사람들은 제후의 의복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으며, 혼인과 장례에 집안이 기울고 가산이 탕진할 지경에 이르렀다. 동화는 솔선수범하여 검소하게 살며 수수한 옷을 입고 간소한 식사를 하고, 신분을 넘는 행위를 말리고 금지하였으며, 이에 대한 규제를 만들었다. 그가 부임한 곳마다 풍속이 바뀌고 선한 방향으로 변해 갔으며, 백성들은 법규를 두려워하여 범하지 않았다.

203

[백성들의 간절한 청원으로 유임]

현의 호족들이 동화의 엄한 법을 싫어하여 유장에게 동화를 파동의 속국도위로 전임시키도록 진언했다. 그러나 수하에 있던 수천 명의 관리와 백성들, 노약자들이 동화의 유임을 간절히 원하여 유장은 그를 2년간 더 유임하도록 했다.

현의 호족들은 동화의 엄한 법을 싫어했으므로 유장에게 동화를 파동(巴東)의 속국도위(屬國都尉)로 전임시키도록 진언했다. 그러나 수하에 있던 수천 명의 관리와 백성들, 노약자들이 동화의 유임을 간절히 원하여 유장은 그를 2년간 더 유임하도록 했다.

205

[익주 태수로 승진]

백성들의 간절한 요청으로 유임된 후, 동화는 익주 태수로 승진했다. 그는 익주 태수가 되어서도 청렴함과 검소함을 잃지 않고 모범적인 자세를 유지했다.

백성들의 간절한 요청으로 2년간 더 유임된 후, 동화는 돌아와 익주 태수로 승진했는데, 이때도 청렴함과 검소함은 여전했다.

208

[남방 이민족과의 성공적인 협력]

익주 태수 재직 중, 동화는 남방의 이민족들과 협력하여 일하며 성의로써 그들을 대했다. 이로 인해 남방 사람들은 그를 아끼고 깊이 신뢰하게 되었다.

익주 태수 재직 중, 동화는 남방의 이민족들과 협력하여 일하고, 성의로써 일관된 일에 매달렸으므로 남방 사람들은 그를 아끼고 신뢰했다.

214

[유비의 중용, 제갈량과 국정 보좌]

유비가 촉을 평정한 후, 동화를 초빙하여 장군중랑장으로 임명했다. 그는 군사장군 제갈량과 함께 좌장군 대사마(유비)의 일을 담당하며 국정 운영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유비가 촉을 평정한 후, 동화를 초빙하여 장군중랑장(掌軍中郎將)으로 임명하고, 군사장군 제갈량(諸葛亮)과 함께 좌장군 대사마(유비)의 일을 담당하도록 했는데, 옳은 것은 아뢰고 옳지 않은 것은 폐지하도록 진언하여 제갈량과 즐거이 사귀게 되었다.

221

[청빈한 삶을 살다 생을 마감하다]

동화는 관직에 올라 봉록을 먹은 이래, 밖에서는 먼 지역의 장관이 되었고, 안에서는 정치의 중추를 담당하며 20여 년을 지냈지만, 죽었을 때 집에는 쌀 한 섬의 재산조차 없었을 정도로 검소하게 살았다.

동화는 관직에 올라 봉록을 먹은 이래, 밖에서는 먼 지역의 장관이 되었고, 안에서는 정치의 중추를 담당하며 20여 년을 지냈지만, 죽었을 때 집에는 쌀 한 섬의 재산조차도 없었을 정도로 검소하게 살았다.

225

[제갈량, 동화를 모범적인 관리로 칭송]

동화가 죽은 후, 제갈량은 승상이 되어 부하들에게 훈계하면서 동화를 모범적인 관리로 칭송했다. 그는 동화가 직언을 스스럼없이 하고 경청하는 태도를 가졌음을 강조하며, 동화의 청빈하고 강직한 태도를 본받으라고 가르쳤다.

제갈량이 후에 승상이 되었을 때, 부하들에게 훈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각기 직무를 담당한 자는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고 주군에 이익이 되는 의견을 널리 받아들이도록 하라. 만일 작은 불만이 있는 사람을 멀리하고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것을 곤란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국가의 큰 일에 해를 입히게 될 것이다. 다른 의견이 타당하다면 찢어진 신발을 버리고 주옥을 얻는 것처럼 하라.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이 고통스럽다면 모두 할 수 없다. 오직 서원직(서서)만은 이러한 일에 처하여 미혹되지 않았고, 또 동유재(동화)는 직무를 담당한 7년 동안 불충분한 점이 있으면 10번씩 반복하여 상담하고 지적해 내었다. 진실로 자네들이 서원직의 10분의 1만이라도 배울 수 있고, 동유재처럼 돌이켜 검토하는 태도를 갖고 국가에 충성한다면, 나 또한 잘못을 적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제갈량은 또 말했다. “나는 이전에 처음에는 최주평(최균)과 사귀면서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을 자주 지적받을 수 있었으며, 후에는 서원직(서서)과 사귀어 그의 가르침을 여러 번 받았다. 이전에 동유재(동화)와 함께 일을 한 일이 있었는데, 그는 매번 자신의 의견을 전부 말했고, 후에 호위도(호제)가 일을 맡으면서는 여러 차례 간언을 하여 부당한 결정을 제지하였다. 비록 내 성품이 우매하고 닦여지지 않아 그들의 의견을 전부 받아들일 수는 없었을지라도 이 네 명과는 처음부터 끝까지 친하게 지냈으며, 이는 그들의 직언을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제갈량이 이처럼 동화를 아꼈던 추념의 정은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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