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성 (1946년)
야구 선수, 야구 감독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27:24
대한민국 프로야구의 전설적인 투수코치이자 감독. 롯데 자이언츠의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이끌며 약팀을 상위권으로 도약시킨 주역. KBO 리그에 선발-셋업-마무리 투수 분업 구조를 정착시키는 데 크게 기여. 온화한 리더십으로 선수단을 규합하며 존경받음.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시즌 중 급서한 현직 감독으로 기록됨.
1946
1963
[청룡기 우승 및 MVP]
부산공고 에이스로서 팀의 창단 첫 청룡기 우승을 이끌고 최우수 선수(MVP)에 선정되며 고교 야구 스타로 떠올랐다.
1969
1970
1971
[아시아 선수권 금메달]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일원으로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 야구의 위상을 높였다.
1977
1984
1986
[청보 핀토스 1군 코치]
청보 핀토스 투수코치로 프로야구 현장에 복귀, 팀 개편 후 1군 투수코치를 맡아 마운드를 지휘했다.
1987
1988
[태평양 돌핀스 2군 코치]
태평양 돌핀스(前 청보 핀토스)에서 2군 전담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어 유망주 육성에 힘썼다.
1989
1991
1993
[LG 트윈스 수석코치 부임]
LG 트윈스 수석코치로 부임, 이광환 감독을 보좌하며 KBO 리그에 선발-셋업-마무리 투수 분업 구조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94
[LG 트윈스 한국시리즈 우승]
LG 트윈스 수석코치로서 선발-셋업-마무리 투수 분업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견인했다.
1996
1998
[롯데 자이언츠 감독대행]
성적 부진으로 물러난 김용희 감독의 뒤를 이어 롯데 자이언츠 감독 대행을 맡아 혼란스러운 팀을 이끌었다.
1999
[롯데 감독 취임 및 준우승]
롯데 자이언츠의 정식 감독으로 부임, 팀을 한국시리즈 준우승으로 이끌며 침체에 빠졌던 롯데 야구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믿음의 야구'를 통해 선수들의 잠재력을 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0
2001
[한국 프로야구 최초 시즌 중 현직 감독 사망]
시즌 중 휴가 중 급성 심근경색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시즌 중 현직 감독의 사망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구단 내 선수협 문제와 성적 부담에 대한 스트레스, 평소 폭음과 줄담배, 과로 등이 겹쳐 향년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망은 롯데 자이언츠의 암흑기를 예고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되었다.
[롯데 자이언츠 암흑기 시작]
김명성 감독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롯데 자이언츠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그 해 팀은 최하위로 추락하며 기나긴 암흑기의 시작을 알렸다.
이후 롯데는 '8-8-8-8-5-7-7'로 대표되는 하위권을 전전하며 2007년까지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지 못하는 등 길고 어두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