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환

야구 선수, 야구 감독, 야구 코치, 경기 감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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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2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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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최초 현금 트레이드의 주인공으로 해태 타이거즈의 전성기를 이끌며 도루왕 타이틀을 획득한 명품 유격수. 은퇴 후에는 삼성 라이온즈와 KIA 타이거즈의 감독을 역임하며 지도력을 선보였고 현재는 KBO 경기 감독관으로 한국 야구에 헌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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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

[출생]

대구광역시 동구에서 태어나며 삶을 시작했다.

대구광역시 동구에서 태어났다.

1973

[건국대학교 진학]

건국대학교 강태정 감독의 권유로 중앙대 대신 건국대학교에 진학하며 야구 선수로서의 길을 이어갔다.

건국대 감독으로 취임한 강태정이 서정환을 포함한 4명의 선수를 건국대로 이끌면서, 중앙대 진학설을 뒤로하고 건국대에 입학하게 되었다.

1982

[삼성 라이온즈 창단 멤버 입단]

KBO 리그 출범과 함께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창단 멤버로 입단하며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건국대학교 졸업 후 실업 야구 팀 포항제철과 경리단을 거쳐 1982년 KBO 리그 출범과 함께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창단 멤버가 되었다.

[해태 타이거즈로 이적 (KBO 최초 현금 트레이드)]

삼성에서 유격수 포지션 경쟁이 치열해지자, 시즌 후 유격수 자원이 부족한 해태 타이거즈로 KBO 리그 역사상 최초의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이적했다.

삼성 라이온즈에서 유격수에 오대석, 장태수 등 쟁쟁한 선수가 많아 주전 출전이 어렵게 되자, 시즌 후 스스로 트레이드를 요청하여 유격수 자원이 부족했던 해태 타이거즈에 현금 트레이드로 이적했다. 이는 KBO 리그 역사상 최초의 현금 트레이드로, 양 팀과 선수 모두에게 도움이 된 '윈-윈' 케이스로 평가받는다.

1986

[KBO 리그 도루왕 수상]

해태 타이거즈의 전성기를 이끌며 KBO 리그 도루왕에 오르는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견실한 수비와 빠른 발을 이용한 플레이로 1980년대 해태 타이거즈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1986년에는 도루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1988

[개인 첫 3할 타율 달성]

타율 3할 2푼 3리로 개인 첫 3할 타율을 달성하고 타격 4위에 오르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1988년에는 3할 2푼 3리의 타율로 개인 첫 3할 타율 달성과 타격 4위에 오르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1989

[선수 은퇴 및 해태 타이거즈 코치 시작]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해태 타이거즈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하며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89년에 선수 은퇴를 선언하고 해태 타이거즈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하며 지도자로 전향했다.

1990

[해태 타이거즈 수석 코치 역임]

1990년부터 1994년까지 해태 타이거즈 수석 코치로 활동하며 팀의 지도를 담당했다.

1990년부터 1994년까지 해태 타이거즈의 수석 코치로 활동하며 팀 운영에 기여했다.

1995

[요미우리 자이언츠 지도자 연수]

일본으로 건너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으며 해외 야구 경험을 쌓았다.

1995년에 도일하여 일본의 명문 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으며 견문을 넓혔다.

1996

[삼성 라이온즈 타격 코치 복귀]

고향 팀 삼성 라이온즈에 타격 코치로 복귀하여 1997년까지 활동했다.

1996년 고향 팀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하여 타격 코치로 일했으며, 1997년까지 이 직책을 수행했다.

1997

[삼성 라이온즈 제9대 감독 취임 (최초 삼성 선수 출신 감독)]

삼성 라이온즈의 제9대 감독으로 전격 발탁되며, 삼성 선수 출신으로는 최초로 감독 자리에 올랐다.

1997년 10월 30일, 삼성 라이온즈는 라이벌 팀 해태 타이거즈를 벤치마킹하려는 경영진의 결정에 따라, 해태에서 오랜 선수 생활을 했던 서정환을 백인천의 후임으로 삼성 선수 출신 최초의 감독에 임명했다.

1999

[삼성 라이온즈 감독 사임]

1998년 정규 시즌 2위, 1999년 드림리그 1위의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자 계약 기간을 1년 남기고 감독직에서 사임했다.

1998년 정규 시즌 2위, 1999년 드림리그 1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나, 좌완 에이스의 부재를 극복하지 못한 채 롯데 자이언츠에 패해 1999년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결국 계약기간을 1년 남긴 채 그 해 11월 1일에 사임하였다.

2000

[삼성 라이온즈 사장 보좌역 역임]

삼성 라이온즈 감독 사임 후 잔여 연봉을 보장받기 위해 사장 보좌역을 맡았으나, 김응룡 감독 부임으로 팀을 떠났다.

삼성 라이온즈 감독 사임 후 잔여 연봉을 챙겨주기 위해 2000년 사장 보좌역을 맡았으나, 같은 해 말 김응룡 감독이 부임하면서 삼성을 떠났다.

2001

[해태 타이거즈 2군 감독 및 수비 코치]

해태 타이거즈로 돌아와 2군 감독을 맡았고, 시즌 중 수비 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어 활동했다.

2001년 해태 타이거즈로 돌아와 2군 감독을 맡았으며, 시즌 중 수비 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어 팀의 수비를 지도했다.

2003

[음주운전으로 면허 취소]

술을 마신 채 음주운전을 한 사실이 알려져 불구속 입건되고 운전면허가 취소되는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했다.

2003년 6월 16일, 술을 마신 채 음주운전을 한 것이 알려져 서울 강남경찰서로부터 불구속 입건되었고 운전면허가 취소되는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했다.

2005

[KIA 타이거즈 감독 대행]

유남호 감독이 시즌 중 사임하자, KIA 타이거즈의 감독 대행을 맡아 팀을 이끌게 되었다.

2005년 7월 25일, 유남호 감독이 시즌 최하위의 책임을 지고 시즌 중 사임하자 KIA 타이거즈의 감독 대행을 맡게 되었다.

2006

[KIA 타이거즈 정식 감독 취임 및 포스트 시즌 진출]

KIA 타이거즈 정식 감독으로 취임하여 2006년 정규 시즌을 4위로 마치며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다.

2006년 KIA 타이거즈 정식 감독에 취임하여 정규 시즌을 4위로 마감하며 포스트 시즌에 진출, 해태의 영광을 되살리는 듯했으나 준 플레이오프에서 한화 이글스에 패해 탈락했다.

2007

[KIA 타이거즈 감독 사임]

KIA 타이거즈가 최하위로 전락하자 조범현 배터리 코치에게 감독 자리를 넘기고 총감독으로 물러났다.

2007년 KIA 타이거즈가 최하위로 전락하자, 그 해 10월 18일 시즌 중 영입한 배터리 코치 조범현에게 감독 자리를 넘기고 총감독으로 일선에서 물러났다.

2013

[사기 혐의 피소]

사기 혐의로 피소되어 법적 문제에 휘말렸다.

2013년 1월 18일 사기 혐의로 피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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