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 필 풍속도 화첩

조선시대 그림, 풍속화, 문화재,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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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2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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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도 필 풍속도 화첩은 조선 후기 최고의 화가 단원 김홍도의 대표작입니다. - 서민의 일상을 해학적이고 생동감 넘치게 담아낸 이 화첩은 당시 사회상을 이해하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 탁월한 예술성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 이는 풍속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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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0

[풍속화의 새로운 경향]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왕실과 사대부 중심의 교화 목적에서 벗어나 서민들의 실제 생활과 체험을 사실적이고 현세적으로 담아내는 풍속화가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건강하고 힘찬 인물 묘사와 생동감 넘치는 일상 장면들은 당시 사회 변화 속에서 새로운 예술 경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원래 서민을 소재로 한 풍속화는 왕실과 사대부의 입장과 취향에서 교화나 구휼을 목적으로 그려졌습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에는 형사적(形似的) 전신론(傳神論)에 따른 창작 태도의 변화와 실제적 체험을 통해 나타나는 사실적이고 현세적인 취향의 풍속화들이 그려지게 됩니다. 건강하고 힘차며 익살스러운 인물 표현, 각 계층의 생업 및 놀이 장면 등 서민 생활의 이모저모가 생동감 있게 처리된 이들 작품은 18세기 후반의 변화된 창작 경향 속에서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1790

[김홍도 전성기 작품 추정]

김홍도의 예리한 관찰력과 빼어난 필치, 짜임새 있는 구성력이 돋보이는 이 화첩은 그가 40대 전성기에 그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시기의 풍속화풍은 김득신 등 후대 화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며 조선 후기 풍속화의 정형을 이루었습니다.

필치와 짜임새 있는 구성력으로 볼 때, 이 화첩은 김홍도의 40대 무렵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 같은 풍속화풍은 화원(畫員)들의 정형을 이루면서 김득신(金得臣)·김양기(金良驥)·김후신(金厚臣) 등의 후대 화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1918

[화첩 구입 및 소장 시작]

이 화첩은 국립중앙박물관이 1918년 조한준에게 구입했을 당시 27점의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김홍도의 풍속화가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중요한 경로를 보여주며, 화첩의 초기 소장 이력을 알려줍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기록에 의하면 이 화첩은 1918년 조한준에게 구입했을 당시 모두 27점이었으나...

1957

[군선도 분리, 25점 재편]

1957년, 원래 화첩의 마지막에 포함되어 있던 '군선도' 2점이 별도의 족자로 꾸며지면서, 현재와 같은 25점의 풍속도 화첩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이로써 화첩은 순수한 풍속화의 집대성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1957년 원 화첩의 마지막에 있었던 군선도 2점이 별도의 족자로 꾸며지면서 풍속도 25점만이 새로운 화첩으로 꾸며졌다.

1970

[보물 제527호 지정]

김홍도 필 풍속도 화첩은 그 역사적,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1970년 12월 30일 대한민국 보물 제527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는 화첩이 가진 중요성을 공식적으로 입증하는 사건이며, 문화재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했습니다.

지정 = 1970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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