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드 모파상
작가, 소설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24:51
-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거장으로 불리는 대표 작가 - 스승 플로베르에게 문학 지도를 받으며 천재적 재능을 꽃피움 - 불과 10년간 약 300편의 단편과 여자의 일생 등 걸작 다수 발표 - 비계덩어리로 문단 데뷔를 확고히 했으나 말년에는 신경질환으로 고통받음 - 비극적 삶 속에서도 인생의 허무와 고독을 표현한 명작을 남김
1850
1860
1868
[플로베르에게 사사]
루앙에 있는 고등학교에 들어가 자주 플로베르의 집을 방문하며 당대의 위대한 문인들을 소개받고 문학적 가르침을 받기 시작했다.
1869
1870
[보불전쟁 참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보불전쟁)이 일어나자 학업을 중단하고 군에 지원·입대했다.
이 경험은 염전사상에 사로잡혀 문학을 지망하게 되는 동기가 되었다.
1872
[공무원 생활과 문학 지도]
아버지의 도움으로 해군성과 문부성에 취직하여 생계를 유지하면서, 어머니의 어릴 때부터의 친구인 귀스타브 플로베르에게 문학 지도를 계속 받았다.
1874
[에밀 졸라와 교류 시작]
플로베르의 소개로 에밀 졸라를 알게 되었고, 파리 교외의 졸라 저택에 자주 모여 문학을 논하던 당시의 젊은 문학가들과도 사귀었다.
1875
1877
이후 매독균이 점차 온몸으로 퍼지기 시작했으며, 1880년경 처음으로 시력장애 증상이 나타나는 등 이 증세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1880
['비계덩어리' 발표, 등단]
에밀 졸라가 모파상을 포함한 6명의 젊은 작가들이 쓴 단편집 《메당 야화》를 간행했는데, 여기에 《비계덩어리》를 실어 날카로운 인간 관찰과 짜임새로 주목받으며 문단 데뷔를 확고히 했다.
1883
['여자의 일생' 발표]
장편소설 《여자의 일생 Une vie》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선량한 한 여자의 환멸의 일생을 염세주의적 필치로 그려내 그의 명성을 높였을 뿐 아니라,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과 함께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이 낳은 걸작으로 평가받았다.
레프 톨스토이도 이 작품에 찬사를 보냈다.
1889
1890
1891
1892
[자살 시도와 입원]
다작으로 인한 피로와 복잡한 여자관계로 지병인 신경질환이 더욱 악화되어 니스에서 자살을 시도했다.
이후 파리 교외의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
18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