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국제 분쟁, 인질 사건, 외교 테러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24:41
1979년 이란에서 발생한 주미 대사관 점거 사건으로 444일간 미국인 52명이 인질로 잡히며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이슬람 혁명 이후 고조된 이란의 반미 감정과 미국의 팔레비 국왕 지원이 충돌하며 발발했습니다. 미국의 인질 구출 작전이 참담하게 실패하고 이란-이라크 전쟁이라는 돌발 변수가 발생하며 극적인 협상 끝에 인질들이 석방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미국과 이슬람권 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냉전 시대 국제 정세에도 큰 파장을 일으킨 역사적 사건입니다.
1979
[미국의 팔레비 국왕 입국 허가]
미국 카터 행정부가 망명 중인 팔레비 국왕의 신병 치료를 이유로 미국 입국을 허가했습니다.
이 결정은 이란 급진 강경파의 반미 감정을 극도로 자극하며, 대사관 인질 사건 발생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이란은 팔레비 국왕의 송환을 강력히 요구하며 미국과의 관계가 더욱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팔라비 국왕 망명]
이슬람 혁명의 여파로 이란의 팔라비 국왕이 휴양을 명분 삼아 이란을 떠나 사실상 망명길에 올랐습니다.
이는 수십 년간 이어진 팔라비 왕정의 종말을 예고하며 새로운 이란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호메이니 귀국]
망명 중이던 이슬람 지도자 아야툴라 호메이니가 이란으로 돌아왔습니다.
그의 귀국은 기존 과도 정부를 붕괴시키고 이슬람 혁명 세력의 실질적인 지도자로 부상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으며, 이란을 신정국가로 이끌 기초를 다졌습니다.
[이란 이슬람 공화국 수립]
아야툴라 호메이니를 중심으로 이슬람 혁명 세력이 이란 이슬람 공화국을 공식 수립했습니다.
이는 종교적 가치와 신권적 지배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국가 체제의 탄생을 알렸으며, 서구식 근대화를 부정하고 '이슬람 원점으로의 회귀'를 표방하는 중대한 변화였습니다.
[주이란 미국 대사관 점거]
이란 테헤란에서 팔레비 국왕의 신병 인도를 요구하던 과격파 학생 시위대가 주이란 미국 대사관에 난입하여 점거하고, 약 70여 명의 미국 외교관을 인질로 억류했습니다.
이로써 444일간 전 세계를 경악시킨 인질 사태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이슬람 혁명 이후 고조된 이란의 반미 감정이 폭발한 상징적인 순간으로 기록됩니다.
[카바 신전 점거 사건]
이슬람의 성지인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카바 신전이 무장 괴한들에게 점거되고 수백 명이 인질로 잡혔습니다.
다음 날이 이슬람력 1400년 원단이었기에 이슬람권 전체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 사건은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태 해결에 악영향을 미쳤으며, 서구식 근대화를 부정하는 교조적 광신도들의 소행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습격사건의 배후에는 이스라엘과 미국이 있다'는 미확인 소문이 퍼지면서 이슬람권 각국에서 격렬한 반미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사우디 정부는 유혈 진압 끝에 사태를 진정시켰습니다. 이 사건은 이슬람권 내 친미/반미 세력 간의 갈등을 심화시켰습니다.
1980
[미국 인질 구출 작전 실패]
미국은 인질 구출을 위해 '독수리 발톱 작전'이라는 특공대 투입 작전을 감행했으나, 예상치 못한 계획 차질과 항공기 충돌 사고로 8명의 특공대원이 사망하며 처참하게 실패했습니다.
이는 미국의 군사력과 정보력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켰고, 당시 카터 행정부에 큰 정치적 타격을 주며 인질 사태 해결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증폭시켰습니다.
[이란-이라크 전쟁 발발]
이라크가 이란을 선공하며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이 대규모 전쟁은 이란이 외부의 위협에 직면하면서, 인질 사태 해결에 대한 압박감을 느끼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란은 국력 소모를 막기 위해 인질 사태 종식을 서두르게 됩니다.
1981
[인질 석방 및 사태 종결]
이란-이라크 전쟁의 압박과 알제리의 중재로 미국과 이란 간의 간접 협상이 마침내 타결되었습니다.
미국이 팔레비 왕정의 재미 동결 자산 반환에 동의한 후, 사건 발생 444일 만에 억류되었던 미국인 인질 52명 전원이 석방되며 길고 길었던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태가 막을 내렸습니다.
인질들은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 취임식 직후 석방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