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 무역 협정

자유 무역 협정, 국제 조약, 경제 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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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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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무역 협정, 국제 조약, 경제 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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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과 미국 간 경제 협력의 중요한 전환점 양국 간 무역 및 투자 자유화 확대 목표로 추진 4대 선결조건 오역 논란 국회 최루탄 사태 등 수많은 드라마 동반 세계 경제 지도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 마련 국내외 뜨거운 찬반 논쟁 속 14개월 협상과 재협상 끝에 발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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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한미 FTA 논의 시작]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ITC)의 보고서에서 한국이 싱가포르, 대만과 함께 FTA 체결의 바람직한 대상 국가로 *세계 최초*로 언급되며 한미 FTA 논의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미래의 거대한 경제 협정의 첫 씨앗이었습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ITC)는 '아태지역국가들과의 FTA 체결에 대한 검토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과 자유 무역 협정을 체결하는 것에 대한 경제적 효과와 타당성을 검토한 것으로, 당시 한국은 미국의 주요 무역 파트너이자 성장 잠재력이 높은 국가로 평가되었습니다.

1999

[미국 재계 FTA 촉구]

주한 미국상공회의소(AMCHAM)가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에게 한미 FTA 체결을 강력히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습니다.

이는 미국 재계가 한미 FTA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대외적으로 표명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중요한 신호탄이었습니다.

AMCHAM은 미국 기업들의 한국 시장 접근성 확대와 투자 환경 개선을 위해 한미 FTA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시기부터 FTA 추진에 대한 미국 정부와 재계의 구체적인 움직임이 가시화되기 시작했습니다.

2003

[FTA 추진 로드맵 마련]

대한민국 정부가 'FTA 추진 로드맵'을 마련하며, 미국 등 거대 경제권과의 FTA 추진을 중장기적 과제로 공식 상정했습니다.

이는 한미 FTA 체결을 위한 국가적 전략이 구체화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 로드맵은 한국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주요 교역국과의 자유 무역 협정을 확대해야 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수립되었습니다. 특히 미국과의 FTA는 경제적 파급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되어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2005

[미국의 한국 우선 선정]

미국 행정부가 한국을 포함한 4개국을 FTA 우선협상대상국으로 선정했습니다.

이는 한미 FTA 체결 논의가 단순한 검토 단계를 넘어, 실제 협상 착수를 위한 준비 단계로 진입했음을 시사하는 중요한 발표였습니다.

미국은 경제적, 전략적 중요성을 고려하여 한국을 우선협상대상국에 포함시켰습니다. 이는 양국 간 통상 관계 강화에 대한 미국의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2006

[4대 선결조건 수용]

미국과의 FTA를 본격화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스크린 쿼터 축소 등 소위 '4대 선결조건'을 수용하며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는 반대파들에게 '굴욕 협상'이라는 비판의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4대 선결조건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배출가스 강화 기준 2009년까지 철폐, 스크린 쿼터 축소 (146일에서 73일로), 약값 재평가 제도 철폐를 포함합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처음에는 이를 부인했으나, 미국 측 대표의 언급 이후 결국 사실로 인정하며 논란이 더욱 커졌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연설]

노무현 대통령이 신년 연설에서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해서 앞으로 미국과도 자유 무역 협정을 맺어나가야 합니다'라고 천명하며 한미 FTA 추진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대외적으로 밝혔습니다.

이는 협상 시작을 예고하는 강력한 메시지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시 복잡한 국내외 정세 속에서도 한국 경제의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한미 FTA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 연설은 FTA 협상 추진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방침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협상 공식 출범]

양국이 워싱턴에서 한미 FTA 협상 출범을 공식 선언했습니다.

대한민국은 김현종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을, 미국은 로버트 포트만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협상 대표로 선임하며, 험난한 14개월의 대장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실무자 수석대표로는 한국의 김종훈 대사와 미국의 웬디 커틀러 미 무역대표부 한국 일본 APEC 대표보가 맡았으며, 외신기자들은 이 협상을 '웬디와 종훈의 전쟁'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는 협상이 단순한 실무 논의를 넘어 치열한 외교전이 될 것임을 예고했습니다.

[8차례 공식 협상]

2006년 6월 워싱턴에서 1차 공식 협상을 시작으로, 2007년 3월 서울에서 8차 공식 협상까지 끈질긴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양국 협상단은 첨예한 이해관계 속에서 수많은 밤샘 협상을 거듭하며 협정 타결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공식 협상은 워싱턴, 서울, 시애틀, 제주도, 몬태나주 등 양국 주요 도시를 오가며 진행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각국의 핵심 이익을 지키기 위한 치열한 줄다리기가 펼쳐졌습니다. 특히 농산물, 자동차, 서비스 시장 개방 등 민감한 분야에서 진통이 컸습니다.

2007

[허세욱 분신 사망]

한미 FTA 반대 여론이 최고조에 달한 가운데, 택시 기사 허세욱이 서울 하얏트 호텔 정문 부근에서 FTA 협상에 항의하며 분신했습니다.

그는 이후 4월 15일에 사망하며, 한미 FTA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과 비극적인 단면을 보여주었습니다.

허세욱의 분신은 FTA 반대 운동에 큰 충격을 주었고, 찬반 논쟁의 뜨거움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렀음에도 국민적 합의가 얼마나 요원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냈습니다.

[한미 FTA 최종 타결]

14개월간의 숨 막히는 협상 끝에 한미 FTA가 마침내 최종 타결되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국민 특별담화문을 발표하며 역사적인 협정 타결을 알렸습니다.

이 협정은 상품 분야에서 94% 수준의 수입 관세 조기 철폐를 합의하며 *미국이 체결한 FTA 중 가장 높은 수준의 개방률*을 기록했습니다.

상품 분야에서는 미국이 호주(81%), 싱가포르(79%), 모로코(77%)와 체결한 FTA보다 훨씬 높은 개방률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서비스 분야는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노무현 대통령도 이 부분을 지적했습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빅딜이 아니다'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한국은 쌀 시장 개방을 막기 위해 미국의 조선업 개방을 요구하는 '존스 법'을 역이용하여 쌀 개방 요구를 철회시켰다는 점이 주목받았습니다.

[협정문 공개 및 서명]

타결된 한미 FTA 협정문 원문이 대중에게 공개되었습니다.

이후 법률 검토 회의와 추가 협의를 거쳐 6월 29일 추가 협상이 타결되었고, 6월 30일 워싱턴에서 한미 FTA가 공식 서명되었습니다.

이로써 양국은 비준 절차만을 남겨두게 되었습니다.

협정문 공개는 국민적 관심과 논쟁을 더욱 증폭시켰습니다. 5월 29일부터 6월 6일까지 워싱턴에서 법률 검토 회의가 진행되었으며, 6월 21일부터 26일까지 서울과 워싱턴에서 추가 협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협정 내용에 대한 최종적인 조율이 이루어졌습니다.

[국회 비준안 제출]

한미 FTA 비준동의안이 대한민국 17대 국회에 처음 제출되었습니다.

그러나 국회 내외의 격렬한 찬반 대립으로 인해 비준 절차는 순탄치 않았고, 이후 2008년 18대 국회에도 다시 제출되는 등 오랜 진통을 겪었습니다.

비준동의안은 2008년 10월 8일 18대 국회에 재차 제출되었고, 12월 18일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 상정되었습니다. 2009년 4월 22일에는 위원회를 통과했지만, 본회의 통과는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의 '날치기' 시도 등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기도 했습니다.

2010

[한미 FTA 재협상 타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자동차 문제를 최종 쟁점으로 시사한 후, 한미 FTA 재협상안이 타결되었습니다.

이 재협상에서는 특히 자동차 분야에서 미국 측 요구가 상당 부분 수용되어 한국 측이 양보했다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되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이 놀라울 정도로 잘 받아들였다'고 보도하며 논란을 증폭시켰습니다.

재협상 주요 내용은 '한국차 관세 철폐 후 판매 급증 시 미국 긴급 수입제한 조치 가능', '한국 수입 미국차 25,000대 이상 판매 차량만 안전검사 기준 적용' 등입니다. 이는 사실상 미국차 안전검사 기준 철폐와 다름없다는 지적이 일었습니다. 당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재협상은 없을 것이라 했으나 말을 바꿔 사과하는 상황까지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국내 자동차 업계는 불확실성 해소와 부품업체 수출 증가 기대로 환영 입장을 밝혔습니다.

2011

[협정문 오역 논란]

한미 FTA 협정문의 한국어 번역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큰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이로 인해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는 비준동의안을 철회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외교통상부는 총 296건의 번역 오류를 인정하고 정정했습니다.

송기호 변호사에 의해 번역 오류 문제가 제기되었고, 외교통상부가 이를 인정하며 한글본을 재검독하여 296건의 오류를 정정했습니다. 정정된 협정문은 한미 양국의 합의서한 교환을 거쳐 2011년 6월 3일자로 공개되었습니다. 이는 협정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비준 절차에 또 다른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미국 의회 최종 통과]

미국 하원과 상원 전체회의에서 한미 FTA 이행법안이 압도적인 찬성으로 최종 통과되었습니다.

이는 미국 측의 비준 절차가 사실상 완료되었음을 의미하며, 한국 국회의 비준 여부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했습니다.

미국 하원은 찬성 278, 반대 151, 기권 5표로, 상원은 찬성 83, 반대 15표로 이행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후 10월 21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행법안에 서명하며 미국 측 비준 절차를 최종 완료했습니다. 이로써 미국은 한국의 비준만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국회 비준안 통과 (최루탄)]

대한민국 국회 본회의에서 한미 FTA 비준안이 재석 170명 중 찬성 151표로 최종 통과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은 헌정사상 *최초로 비공개 의결*되었으며,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리는 등 극심한 혼란과 격렬한 저항 속에서 이루어져 역사에 큰 오점을 남겼습니다.

비공개 의결 논란과 최루탄 투척이라는 초유의 사태는 한미 FTA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의 골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국민들은 민주노동당 대표 이정희 의원의 트위터 메시지에 의존해 국회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YTN의 생중계로 비준안 찬성 국회의원 명단이 확보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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