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해군기지 건설 문제

num_of_likes 217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no image
사회 갈등, 국책 사업, 환경 문제, 해군 기지 ★ 정책

-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대한민국 국방력 강화와 경제 발전을 위한 국책 사업으로 추진되었다. - 그러나 서귀포시 강정마을의 천혜의 자연환경 파괴 우려와 주민 의견 수렴 과정의 논란으로 큰 사회적 갈등을 빚었다. - 반대 주민 환경단체 종교계는 물론 주요 정치인까지 찬반 논란에 휩싸였다. - 공권력과 주민 간의 물리적 충돌 법적 다툼 구상권 청구 등 깊은 상흔을 남겼으며 현재까지도 갈등의 잔재가 남아있다. - 대한민국 안보 정책과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숙고의 계기.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1993

[해군기지 필요성 제기]

제주 남방해역 안보 확보를 위해 해군 기지 건설 필요성이 제기되었습니다. 당초 예정지는 화순항이었으나 반대로 인해 무산되었습니다.

2000

[문섬·범섬 천연보호구역 지정]

문화재청은 제주 서귀포 일대 범섬, 문섬 등 연안 무인도 바닷속에 형성된 연산호 군락지를 보호하기 위해 이 지역 9.19km²를 천연보호구역(천연기념물 제421호)으로 지정했습니다.이는 해군기지 건설의 환경파괴 논란에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2004

[제주 연안 연산호 군락지 지정]

문화재청은 송악산·서귀포 해역 90. 1km² 규모의 연산호 군락지를 천연기념물 제442호로 지정하였습니다.

2006

[해군기지 반대 운동 시작]

환경단체들이 화순 지역에서부터 해군기지 건설 반대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습니다.이는 이후 강정마을로 이어지는 대규모 반대 운동의 시발점이 됩니다.

2007

[강정마을, 기지 건설 확정]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이 유치 건의서를 제출함에 따라 당국은 평가를 거쳐 강정마을을 해군기지 건설 예정지로 최종 확정하였습니다.

[해군기지 건설 계획 발표]

대한민국 해군과 정부는 2014년까지 1조 300억 원을 투입하여 전투함 20여 척과 15만 톤급 크루즈선 2척이 동시에 정박 가능한 45만 제곱미터 규모의 제주민군복합형관광미항 건설 계획을 발표했습니다.약 7천5백 명의 상주 인원이 예상되었습니다.

[제주지사, 찬성 주민 설명회]

김태환 당시 제주특별자치도 지사가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찬성하는 마을 주민들을 모아 설명회를 열었습니다.이는 제주해군기지 최우선 대상지 선정 발표와 함께, 건설을 저지하려는 주민 및 외부 단체와 추진 측 간의 심한 갈등을 유발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유치 결정 감사]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주도를 방문하여 제주 해군기지 유치 결정을 내린 도민과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감사함을 표했습니다.이는 정부의 강력한 건설 의지를 보여주는 발언으로 해석되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건설 당위성 강조]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무장 없이 평화가 유지되지 않는다"며 제주 해군기지 건설의 당위성을 거듭 강조했습니다.그는 "평화의 땅에도 비무장은 없다"며 제주해군기지 건설의 불가피성을 역설했습니다.

[이해찬, 건설 반대 비판]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제주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제주 해군기지 논의가 미군기지나 미국의 미사일 방어(MD) 체제와 연관되었다는 시각을 "왜곡된 시각"으로 비판하며, "제주가 평화의 섬이라는 이유로 군사기지 건설이 안 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유시민, 해군기지 찬성 표명]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당시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예비후보)은 강연회에서 "평화의 섬과 해군기지가 대양의 평화를 지키는 전진기지가 되는 것은 모순이 아니다"라며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적극 찬성 입장을 밝혔습니다.

2008

[해군기지, 국책사업으로 승격]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제주 해군기지 건설 사업이 국책사업으로 공식 승격되었습니다.이는 정부의 강력한 추진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결정이었습니다.

2009

[구럼비 절대보전지역 해제]

제주시가 강정지역을 절대보전지역으로 지정했음에도 불구하고,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마을 일대 10만 제곱미터 부지를 절대보전지역에서 해제했습니다.이 결정은 이후 환경 파괴 논란을 심화시키는 주요 원인이 됩니다.

[공동 생태조사 실시]

2월 9일부터 25일까지 실시된 공동 생태조사 결과, 건설 예정지와 인접한 강정등대 및 기차 바위 주변 해역에서 연산호 군락이 발견되었습니다.

2010

[주민 토지 강제 수용]

국방부가 토지를 강제로 수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토지를 강제로 수용하여 강정마을회의 비판을 샀습니다.이는 정부와 주민 간의 불신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우근민 지사, 건설 수용]

우근민 당시 제주도지사가 제주도의회 본회의 시정연설에서 서귀포시 강정마을에 들어설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수용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이는 전임 지사와는 다른 입장이었으나, 지역 발전 계획 지원 약속을 받으며 입장을 선회한 것입니다.

2011

[국방위, 예산 일부 삭감]

제18대 국회 국방위원회는 2012년 제주해군기지 예산 중 350억 원을 삭감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이는 국회 차원에서의 건설 사업 재검토 요구 움직임을 보여주는 초기 신호였습니다.

[국회, 예산 대폭 삭감 의결]

국회는 제주 민·군복합항 관련 예산을 정부안 1, 327억 원에서 1, 278억 원 삭감된 49억 원으로 의결하였습니다. 국방부는 이월 예산 1, 084억 원 등을 활용해 공사를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2012

[해상 시위대 5명 연행]

제주해군기지 공사 현장에서 해군이 바지선을 이용해 테트라포드 이설 작업을 하려 하자, 카약을 타고 나가 공사를 저지하던 시민활동가와 주민 등 5명이 경찰에 연행되었습니다.주민들은 합의된 공사 중단 약속 위반을 주장했습니다.

[유시민, 건설 중단 입장 선회]

과거 해군기지 건설에 적극 찬성했던 유시민 당시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지금 진행되는 공사는 중단돼야 한다"며 "그 다음 새로운 해군기지 건설이 필요한지 논의해야 한다"는 당론을 옹호하며 입장을 선회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건설 옹호]

이명박 전 대통령이 취임 4주년 특별기자회견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대해 "국가 미래와 경제 발전·안보를 위해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강조하며 민주통합당의 '말 바꾸기'를 비판했습니다.

[제주도, 공사 중단 촉구]

제주도지사와 도의회 의장, 여야 제주도당이 해군기지 건설 공사의 일시적 중단 및 재검토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이는 지역 사회의 건설 반대 여론을 반영한 조치였습니다.

[구럼비 바위 폭파 승인]

서귀포 경찰서가 구럼비 바위 발파를 위한 화약 사용을 허가함에 따라 해군은 최대 5개월간의 발파 작업을 시작하였습니다.

[크루즈선 접안 재검증 합의]

제주도와 국방부는 한국해양대에 의뢰하여 진행된 민군복합항의 '15만 톤 크루즈 선박 2척 동시 접안' 시뮬레이션 결과가 맞는지 확인하는 재검증에 제주도가 참여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재검증 기간 동안 공사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공사 방해 시위자 연행]

서귀포시 강정동 해군기지 사업단 출입구 앞에서 공사차량의 진입을 저지하던 50대 남성 1명이 이를 제지하는 경찰관의 뺨을 폭행한 혐의로 연행되었습니다.

[대법원, 건설 적법 판결]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강정마을 주민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하여 기지 건설 추진이 적법함을 확인하였습니다.

2015

[해군기지 부두 준공]

제주 해군기지 부두가 준공되어 이지스함인 세종대왕함 등 주요 함정들의 시험 입항식이 거행되었습니다.이는 해군기지 건설의 실질적인 완료를 알리는 중요한 단계였습니다.

[기지전대 창설]

제주 해군기지 운영을 위해 약 500~600명 규모의 병력이 배치되는 기지전대가 공식 창설되었습니다.

[전대 이전 완료]

제71기동전대, 제72기동전대, 그리고 제93잠수함전대가 제주 해군기지로 이전을 완료했습니다.이로써 기지는 총 4,000명이 근무할 수 있는 규모로 편성되었습니다.

2016

[해군, 구상권 청구]

해군이 공사 지연에 대한 책임을 물어 전 강정마을회장 등 마을 주민과 5개 단체를 상대로 약 34억 4800만 원 규모의 손해배상(구상권)을 청구했습니다.이는 건설사에게 청구된 공사 지연 피해 일부를 시위 주민에게 전가한 것으로 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제주 해군기지 완공]

제주민군복합형관광미항(제주 해군기지)이 공식적으로 완공되었습니다.2007년 건설 계획 발표 이후 9년 만에 공사가 마무리된 것입니다.

2017

[구상권 청구 취하]

해군이 강정마을 주민 및 단체에 대한 약 34억 원 규모의 구상권 청구 소송을 취하했습니다.이는 정부가 주민과의 갈등 해결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낸 것으로 평가되었습니다.

2018

[도의회, 절대보전지역 해제 사과]

제주도의회가 과거 구럼비 지역의 절대보전지역 해제 내용을 담은 동의안을 일방적으로 가결 처리한 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습니다.이는 과거 행정 절차의 문제점을 인정한 것입니다.

2019

[경찰청, 인권침해 조사 결과 발표]

경찰청이 제주 해군기지 유치 및 결정 과정에서 주민 의견 수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국가기관이 반대 측 주민과 활동가에 대해 폭행, 폭언, 종교행사 방해 등 인권침해 행위를 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제주도의회는 반대 주민들에게 사과하고 정부와 제주도에 인권침해 여부 조사를 촉구했으나, 진상조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2022

[사면/복권 미진행 논란]

해군기지 반대 운동으로 경찰에 연행되었던 696명의 주민과 활동가 중 총 463명이 기소되었으나, 212명은 아직 사면이나 복권이 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어 지속적인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제주 해군기지 건설 문제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