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YS-11기 납북 사건
항공 사고, 납북, 남북 관계, 테러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21:33
1969년 12월 11일 대한민국 역사상 초유의 항공기 납치 사건이 발생했다. 북한 간첩 조창희에 의해 대한항공 YS-11기가 납치되어 51명의 탑승객과 승무원이 북한에 억류되었다. 한국 정부와 국제사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승객 39명만 송환되었으며 승무원 4명과 승객 8명은 50년 넘게 미귀환 상태다. 이 사건은 남북 이념 대립의 비극적인 단면을 보여주며 대한민국 항공 보안 강화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969
[대한항공 YS-11기 납북]
강릉을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YS-11 국내선 여객기가 이륙 10여분 만에 승객으로 위장한 북한 고정 간첩 조창희에 의해 공중 납치됐다.
그는 권총으로 조종사를 위협해 비행기를 북한 함흥 인근의 선덕비행장에 강제 착륙시켰다.
승객 47명과 승무원 4명, 총 51명의 탑승객이 일순간 북한에 억류되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대관령 상공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대한민국 항공 역사상 전례 없는 대규모 납북 사건으로 기록됐다. 당시 탑승한 승객들 중에는 가족을 만나러 가거나 사업상 이동 중이던 일반 시민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며 남북 대치 상황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일깨웠다.
[북한, 자진 입북 주장]
사건 발생 약 30시간 뒤, 북한 평양방송은 납북된 대한항공 YS-11기가 '조종사 2명의 자진 입북'에 의해 북한에 도착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항공기 납치라는 명백한 테러 행위를 자발적인 입북으로 둔갑시키려는 북한의 왜곡된 선전이었다.
북한의 이 같은 주장은 대한민국과 국제사회의 강한 비난을 불러왔다. 유엔사는 즉각 납북된 사람들과 여객기 송환을 요구했으나, 북한은 이를 유엔군이 개입할 사안이 아니라며 거부했다.
[한국 정부, 오보 발표]
대한민국 내무부 치안국은 사건 직후 제대로 된 수사 없이 월남민 출신 의사 채헌덕과 부조종사 최석만을 주범으로 지목하고, 이들이 치밀한 계획으로 여객기를 납치했다고 오인 발표했다.
이는 성급하고 졸렬한 수사로 국민적 혼란과 비판을 야기했다.
치안국은 이들이 '용공' 사찰을 받은 적이 있는 등의 이유로 범인으로 지목했으나, 이는 증거가 부족한 '짜맞추기'식 수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 발표는 이후 중앙정보부의 공식 발표로 뒤집히게 된다.
[KAL 사장, 수사 반박]
조중훈 당시 대한항공 사장은 내무부의 초기 수사 발표 다음 날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 발표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치안국장이 확증 없는 추정이라고 말했다'며 부조종사 최석만이 납북 사건에 결코 관련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이는 정부의 초동 대응에 대한 불신을 심화시켰다.
항공사 최고 경영자가 정부의 공식 수사 발표를 공개적으로 반박하는 이례적인 상황은 당시 사건의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대변한다. 조 사장의 주장은 약 두 달 후 송환된 피랍자 조사를 통해 사실로 확인되었다.
[유엔사, 송환 요구]
유엔군사령부가 판문점에서 군사정전위원회 비서장회의를 요청하며 납북된 사람들과 여객기 기체의 즉각적인 송환을 강력히 요구했다.
하지만 북한은 이를 유엔군이 개입할 사안이 아니라며 송환 요구를 단호히 거부하여 국제사회의 비판을 자초했다.
한국 정부는 일본 적십자사 및 국제적십자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북한과의 협상을 성사시키려 노력했지만 북한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사건 이후 대한민국 각지에서는 북한 규탄 시위가 벌어졌고, 12개국 주요 항공사들도 이 사건에 대해 북한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며 국제적인 공분을 샀다.
1970
[북한, 일부 송환 발표]
국제사회의 압력이 커지자 북한은 돌연 납북자들을 송환하겠다고 공표했다.
그러나 승무원 4명(조종사 2명 포함)과 승객 8명(범인 조창희 포함)은 송환하지 않겠다고 밝혀 논란을 일으켰다.
한국 정부는 전원 송환을 요구하며 북한과 끈질긴 협상을 벌였다.
북한의 부분 송환 방침은 납북자 가족들에게 큰 희망과 함께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정부는 남은 미송환자들의 생사 확인과 송환을 위해 국제적인 노력을 계속했으나, 북한은 일관되게 협상에 응하지 않았다.
[승객 39명 송환]
북한에 억류되었던 대한항공 YS-11기 탑승 승객 39명만이 사건 발생 약 2개월 만에 판문점을 통해 극적으로 송환되었다.
하지만 승무원 4명과 간첩 조창희를 포함한 승객 8명은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사건은 결국 미완의 상태로 종결되었다.
송환된 승객들은 오랜 억류 생활로 인해 심신이 지쳐 있었으나,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는 안도감을 표했다. 그러나 미송환자들의 가족들은 여전히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 고통을 겪게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대한민국 정부는 항공기 보안 대책을 대폭 강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범인 조창희 정체 공개]
중앙정보부와 치안국은 송환된 피랍자들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육군 헌병 준위 출신 고정 간첩 조창희가 권총으로 조종사를 위협해 비행기를 납치한 '단독범행'임을 공식 발표했다.
이로써 사건 직후 발표됐던 초기 수사 결과의 오류가 바로잡히며, 정부의 졸렬한 초동 수사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당시 야당이었던 신민당은 '이 사건이 간첩 조창희의 단독 범행임이 드러남으로써 그동안 당국이 벌였던 수사나 납북 직후의 발표가 얼마나 졸렬했느냐는 것이 증명되었다'며 내무장관과 수사 책임자들의 문책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 발표는 초기 수사에서 주범으로 지목됐던 채헌덕 의사와 부조종사 최석만의 누명을 벗겨주었다.
2001
[미송환자 가족 상봉]
납북된 승무원 중 한 명이었던 성경희 씨가 제3차 이산가족 방북단으로 평양을 방문한 자신의 어머니와 극적으로 상봉했다.
이 상봉은 30여 년 만의 재회였으며, 미송환자 가족들이 겪는 오랜 고통과 기다림을 세상에 다시 한번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성경희 씨의 어머니는 오랜 세월 딸의 생사조차 알지 못한 채 애타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이 감동적인 재회는 납북 사건이 단순한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현재까지도 가족들의 삶에 깊은 아픔과 상처로 남아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여전히 많은 미송환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