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항공 사고, 국제 분쟁, 냉전 시대, 군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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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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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 사고, 국제 분쟁, 냉전 시대, 군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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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9월 1일 미국을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007편이 소련 영공 침범 후 소련 전투기에 의해 격추되었습니다. 탑승자 269명 전원 사망이라는 비극으로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항공 사고로 기록됩니다. 이 사건은 냉전 시기 미·소 관계를 극도로 악화시켰으며 민간 항공기 요격에 대한 국제법 개정과 GPS 민간 개방을 이끄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동시에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혹과 음모론을 남긴 국제적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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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

[대한항공 902편 피격]

본 사건 5년 전, 대한항공 902편이 소련 영공을 침범하여 수호이 전투기에 피격당한 후 무르만스크 인근 얼음 호수에 비상 착륙했습니다.

이 사건은 007편 사태 당시 소련의 즉각적인 대응과 블랙박스 공개 거부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1979

[사고기 B747-200 도입]

대한항공은 본 사건의 사고기인 보잉 747-200을 독일 콘도르 항공에서 중고로 도입했습니다.

이륙 당시 이미 3대의 관성항법장치 중 한 대에 이상이 있는 상태였다고 알려져 비행 경로 이탈의 배경 중 하나로 지목됩니다.

1983

[로널드 레이건, GPS 민간 개방]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민간 분야에 GPS(위성항법장치)를 개방할 것을 전격 공표했습니다.

이는 세계 최초로 군사 목적으로 개발된 첨단 기술이 민간에 전면 개방되는 혁명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007편 이륙 및 영공 침범]

미국 뉴욕에서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007편 여객기가 이륙 후 관성항법장치 오작동 등으로 소련 영공을 침범합니다.

당시 기체의 관성항법장치 중 한 대가 이미 이상이 있는 상태였다는 점이 이후 격추 논란의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소련 전투기 007편 격추]

소련 공군 소속 수호이-15TM 전투기가 영공을 침범한 대한항공 007편에 경고 사격 후 미사일 공격을 가해 사할린 서쪽 해역에 추락시킵니다.

이 비극으로 탑승자 269명 전원이 사망하며,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항공 사고로 기록되었습니다.

격추 조종사는 1996년 민간기임을 알았다고 인정하여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수호이 15 조종사 겐나디 오시포비치는 관제소의 명령을 받고 007편에 300m까지 근접, 경고등과 통상탄으로 유도착륙 신호를 보냈으나 반응이 없자 격추 명령을 받았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는 1993년까지 007편을 정찰기로 믿었으나, 1996년 인터뷰에서 "민간 여객기임을 알았지만, 군사용으로 바꾸기는 쉬운 일"이라고 말해 논란을 증폭시켰습니다. 블랙박스 기록에는 피격 후 38,250피트까지 상승했다가 조종사의 수동 조종으로 하강을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조종실 음성 녹음기(CVR)에는 부기장이 "엔진은 정상입니다, 기장님"이라고 보고하는 내용이 있어 미사일이 엔진을 직접 손상시키지 않았다는 생존설 주장의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유압 계통 손상으로 조종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는 반론도 존재합니다.

[국제사회, 애도 및 소련 제재]

비무장 민간 여객기 격추 소식에 대한민국과 서방 국가들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대한민국은 9월 2일부터 3일간 특별 애도 기간을 선포하고 조기를 게양했으며, 정부는 유엔 안보리 소집을 요청하며 소련에 강력히 항의했습니다.

각국은 소련 항공기에 대한 운항 중지 및 모스크바 취항 거부 등의 강도 높은 제재 조치를 단행했습니다.

[유가족, 시신 없는 현장 방문]

사건 발생 현장에는 유가족 53명을 태운 페리가 방문했지만, 탑승자 269명의 시신 중 단 한 구도 찾지 못했습니다.

이는 이후 탑승자 생존설을 비롯한 다양한 음모론과 의혹을 증폭시키는 주요 요인이 되었습니다.

1984

[ICAO 국제 협정 개정]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민간 항공기 요격을 최후의 수단으로 제한하고 무기 사용을 금지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이듬해에는 국제 민간 항공 협정이 개정되어 영공을 침범한 민간 항공기라도 절대 격추하지 못하도록 명문화되었습니다.

1991

[러시아, 블랙박스 전달]

소련 붕괴 후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격추 당시 통신 내용이 담긴 블랙박스를 전달했으나, 사건의 근본적인 진상은 여전히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이는 다양한 음모론과 진실 공방을 지속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1993

[조종사, 정찰기 확신 발언]

KAL 007편을 격추한 소련 조종사 겐나디 오시포비치는 1993년 인터뷰에서 당시 여객기에 대한항공 마크가 전혀 없어 정찰기라고 확실하게 믿고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이후 그의 발언이 번복되며 큰 논란을 낳는 배경이 됩니다.

1994

[스파이 임무설 책 출판]

로버트 W 알라다이스와 제임스 고린은 《Desired Track: The Tragic Flight of KAL Flight 007》을 출판하며 KAL 007편이 스파이 임무를 띠고 있었다는 음모 이론을 지지했습니다.

이 주장은 당시 심각한 냉전 상태에서 벌어진 미·소 간 첩보전과 맞물려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1996

[격추 조종사, 민항기 인지 인정]

KAL 007편을 격추한 소련 조종사 겐나디 오시포비치가 뉴욕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1996년이 되어서야 007편이 민간 여객기임을 알고 있었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는 "민간 여객기를 군사용으로 바꾸기는 쉬운 일"이라고 덧붙여 전 세계적인 충격과 논란을 재점화했습니다.

2005

[러시아 학자, 첩보기 주장 제기]

러시아 전쟁역사학자 알렉산드르 콜레스니코프 교수는 KAL기 참사 22주년 특별 기고문에서 007편이 나토(NATO) 첩보 정찰기였다고 주장하며, 진짜 블랙박스는 아직 러시아에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대한항공과 한국 정부는 이를 개인의 주장으로 일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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