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전쟁, 핵무기 사용, 세계대전, 일본 항복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19:01
- 제2차 세계 대전을 종결시킨 결정적 사건입니다. - 1945년 8월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인류 최초로 실전 사용한 원자폭탄을 투하했습니다. - 이 폭격은 두 도시에 막대한 인명 피해와 파괴를 가져왔으며 일본의 무조건 항복과 비핵 3원칙 수용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 전 세계 핵무기 정책과 국제 정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역사적 비극입니다.
1945
[독일, 연합군에 항복]
유럽에서 독일이 연합군에 항복하며 제2차 세계 대전 유럽 전선이 종식됩니다.
일본만이 남은 전선에서 전쟁을 지속했습니다.
[원폭 목표 도시 선정]
로스알라모스 연구소의 목표 설정 위원회가 원자폭탄 투하 도시를 결정하기 위해 회의를 개최합니다.
지름 3마일 이상 중요 표적, 폭풍파 효과, 다른 공격 가능성 적음 등 세 가지 기준을 바탕으로 니가타, 요코하마, 교토, 히로시마, 고쿠라를 1차 후보지로 선정했습니다.
위원회는 폭격의 정신적 충격과 국제적 파장을 중요하게 고려했습니다. 교토는 일본인의 '정신적 고향'으로, 도쿄는 천황의 궁이 있다는 점에서 거론되었으나, 최종적으로 교토는 미국의 정치적 판단(소련과의 대립 우려)에 따라 제외되었고 나가사키가 추가되었습니다.
[세계 최초 핵폭탄 실험]
미국은 핵 개발 계획인 맨해튼 계획을 통해 뉴멕시코주 앨라모고도에서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인 '트리니티'를 성공적으로 수행합니다.
이는 나가사키에 투하될 '팻 맨'과 같은 내폭형 핵무기의 성능을 검증하는 중요한 단계였습니다.
맨해튼 계획은 미국의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와 미 육군 공병사령부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이 총 책임자를 맡았습니다. '리틀 보이'는 우라늄 235로, '팻 맨'과 '트리니티'는 플루토늄 239로 제작되었습니다.
[포츠담 선언, 일본에 항복 요구]
트리니티 실험 후 10일 뒤, 미국, 중화민국, 소련 등 연합국 대표가 포츠담 선언을 발표하며 일본에 민주주의 국가로 이행하고 무조건 항복할 것을 강요합니다.
그러나 일본은 이를 묵살하며 전쟁 완수를 고집합니다.
일본 스즈키 간타로 총리는 포츠담 선언이 카이로 회담의 재탕이며 중대한 가치가 없다고 평가, 전쟁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이에 연합군은 원자폭탄 투하를 집행하기로 결정합니다.
[나가사키, 재래식 폭격 피해]
원폭 투하 전, 나가사키에 수많은 재래식 고성능 폭탄이 투하되어 조선소, 부두, 미쓰비시 중공업 공장 등이 피해를 입습니다.
이로 인해 나가사키 시민들이 안전을 위해 시골로 이주하며 인구가 감소했습니다.
[히로시마, 첫 원폭 투하]
미국은 일본의 무조건 항복 거부에 따라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명령으로 히로시마에 인류 역사상 최초로 실전 사용된 원자폭탄 '리틀 보이'를 투하합니다.
B-29 '에놀라 게이'가 08시 15분에 투하한 '리틀 보이'는 43초 후 히로시마 상공 580미터에서 폭발, TNT 13킬로톤에 상응하는 폭발력으로 반경 1.6km를 파괴하고 대규모 화재를 일으켰습니다.
도시의 30%에 해당하는 7만~8만 명이 즉사했으며, 1945년 말까지 총 9만~16.6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됩니다.
특히 조선인 사망자가 3만명에 달했습니다.
히로시마는 일본 육군 제2총군 사령부가 위치한 중요 군사 거점이자 대규모 산업도시였습니다. 폭격 후 도시의 69% 건물이 파괴되었고, 대부분의 의사와 간호사가 사망하거나 다쳤습니다. 이 사건은 전 세계 핵무기 개발 및 사용에 대한 경종을 울렸습니다.
[소련, 일본에 선전포고]
얄타 협정에 근거하여 소련이 소-일 불가침 조약을 파기하고 일본에 선전포고를 합니다.
이는 일본 히로히토 천황이 기도 고이치에게 즉시 상황을 수습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계기가 됩니다.
[나가사키, 두 번째 원폭 투하]
히로시마 원폭 투하 사흘 뒤, 미국은 B-29 '벅스카'를 통해 두 번째 원자폭탄 '팻 맨'을 나가사키에 투하합니다.
당초 목표는 고쿠라였으나 기상 악화로 나가사키로 변경되어, 11시 01분 미쓰비시 중공업 공장과 어뢰 제작 공장 상공 439미터에서 폭발했습니다.
TNT 21킬로톤에 상응하는 폭발력으로 4만~7.5만 명이 즉사했으며, 1945년 말까지 총 8만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측정됩니다.
폭발 반경 1~2km가 초고온과 후폭풍으로 파괴되었습니다.
나가사키는 일본 남부 최대 항구 도시이자 군수품, 선박, 무기 생산의 중요 산업 거점이었습니다. 나가사키는 지형적 특성상 우라카미 계곡에 폭발이 한정되어 도시의 주요 부분이 언덕으로 보호받았지만, 미쓰비시-우라카미 어뢰 제작공장이 파괴되는 등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 폭격은 일본의 항복을 촉진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일본,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
나가사키 원폭 투하 6일 후, 히로히토 천황은 원자폭탄의 참혹함을 언급하며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합니다.
이로써 아시아의 일본 식민지들이 자동적으로 독립하게 됩니다.
이후 일본은 핵무기를 만들지 않고, 갖지 않으며, 들여오지 않겠다는 '비핵 3원칙'을 수용했습니다. 추가 원폭 투하 계획은 일본의 항복으로 종식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공식 종전]
일본이 연합군과의 항복 문서에 공식적으로 사인하면서 태평양 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됩니다.
이로써 전 세계는 기나긴 전쟁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1996
[히로시마 평화 기념관, 세계유산 등재]
히로시마 원폭 투하에도 붕괴되지 않았던 히로시마 산업 전시관이 '히로시마 평화 기념관'으로 명명된 후, 1996년 미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됩니다.
이는 원폭 피해의 상징이자 인류 평화의 중요성을 전 세계에 알리는 유산으로 인정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