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
바다, 해역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14:53
황해는 대한민국 북한 중국에 둘러싸인 태평양의 일부로 황하의 토사 유입으로 이름처럼 누런빛을 띤 바다입니다. 평균 수심이 얕고 조수간만의 차가 커 세계적으로도 갯벌이 잘 발달했으며 난류와 한류가 만나 수산자원이 풍부한 황금 어장입니다. 또한 유전과 천연가스 등 지하자원도 상당량 매장되어 있으며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수많은 교역과 해전이 벌어진 역사적 요충지이기도 합니다.
BC 10m
황해는 중생대 백악기 말기부터 군산분지 등 대륙지각의 리프팅(rifting)이 활발하게 발생하며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는 한반도보다 훨씬 발달된 퇴적분지로 구성되어 지진활동이 활발했다.
BC 10k
약 2만 년 ~ 1만 2천 년 전 빙하기에는 해수면이 현재보다 120m가량 낮아, 황해 전 지역이 큰 강이 흐르는 평야였다. 이후 해수면이 상승하며 점차 바다로 넓어졌다.
BC 2C
고조선과 전한 간의 전쟁 중 황해에서 해상 전투가 벌어졌다. 이 해전은 고조선의 멸망에 영향을 미쳤다.
BC 1C
삼국시대 이전부터 한국은 황해를 통해 중국과 활발하게 교역을 시작했으며, 이는 문화와 경제 교류의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645
고구려와 당나라 간의 전쟁 기간 동안 황해에서 해전이 발생했다. 당나라 군대가 해상 보급로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고구려군과 충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828
신라 말기, 장보고는 황해를 중심으로 한 해상 무역로를 독점하며 청해진을 설치하고, 해적을 소탕하여 안정적인 교역 환경을 조성했다. 그는 동아시아 해상 무역을 장악하며 '해상왕'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1231
몽골의 침입에 맞서 고려는 강화도로 천도하며 해상 방어에 주력했다. 이 과정에서 황해를 무대로 고려 수군과 몽골군 간의 치열한 해전이 여러 차례 벌어졌다.
1592
임진왜란 기간 동안 조선 수군과 왜군 사이에 황해에서도 해전이 발생하여 전세에 영향을 미쳤다.
1737
[황해, 국제 표준 명칭으로 등재]
프랑스 지도 제작자 당빌이 만든 '신중국지도첩'에 'Hoang Hai ou Mer Jaune'가 표기되며 황해가 국제 표준 명칭으로 자리 잡았다.
1737년 프랑스 지도 제작자 당빌이 제작한 《신중국지도첩》에 'Hoang Hai ou Mer Jaune' (황해 또는 누런 바다)라는 명칭이 표기되면서, 이 명칭은 국제적으로 황해를 지칭하는 표준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1866
1866년 프랑스 함대가 조선 침략을 위해 황해를 거쳐 강화도에 상륙하며 병인양요가 발생했다. 이는 조선의 통상수교 거부 정책에 대한 프랑스의 무력 시위였다.
1894
1894년 청일 전쟁 중 황해에서 청나라 북양함대와 일본 연합함대 간에 대규모 해전이 벌어졌다. 이 전투는 동아시아 해상권의 향방을 결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904
1904년 러일 전쟁 중 황해에서 러시아 발트 함대와 일본 연합함대 간에 대규모 해전이 벌어졌다. 이 해전은 러일 전쟁의 중요한 국면을 형성했다.
1950
1950년 한국 전쟁 발발 후 황해를 무대로 인천상륙작전 등 유엔군과 북한군 간의 중요한 해상 작전이 전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