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

기녀, 시인, 예술가, 조선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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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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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녀, 시인, 예술가, 조선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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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중기 개성을 대표하는 기녀이자 시인 서예가 음악가 무희였다. - 뛰어난 재주와 출중한 미모로 당대 최고 선비들과 교류하며 수많은 일화를 남겼다. - 성리학적 지식까지 해박하여 시대를 앞서간 독보적인 지식인이자 예술가였다. - 생불(生佛) 지족선사를 파계시키고 왕족 벽계수를 유혹하는 등 대담한 행보로 유명하다. - 서경덕 박연폭포와 함께 송도 3절로 불리며 전설적인 존재로 남아있다. - 조선시대 내내 음란함의 상징으로 여겨졌으나 오늘날 뛰어난 문학적 재능으로 재조명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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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6

[황진이, 개성에서 태어나다]

조선 중종 연간에 개성에서 황씨 진사의 서녀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기생 또는 천민 출신으로 추정된다.

황진이는 조선 중종 연간인 1506년 전후로 개성에서 황씨 성을 가진 진사의 서녀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기생 또는 시각장애인인 천민 출신으로 추정되어, 아버지가 양반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신분제인 종모법에 따라 천출이 되었다. 어릴 적부터 양반집 딸 못지않게 학문을 익히고 예의범절을 배웠으며, 여덟 살에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열 살에는 한문 고전을 읽고 시를 지을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1521

[짝사랑 청년의 죽음, 황진이 기생이 되다]

짝사랑하던 동네 청년의 죽음을 계기로 평범한 삶을 포기하고 기생이 되기로 결심한다.

황진이가 15세 무렵, 그녀를 짝사랑하던 한 동네 청년이 상사병으로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장례 행렬이 황진이 집 앞에서 멈춰 움직이지 않자, 그녀의 속적삼을 상여 위에 올리니 비로소 움직였다고 전해진다. 이 사건을 통해 황진이는 자신이 평범한 여자로 살 수 없음을 깨닫고 기생의 길을 걷게 된다.

1530

[당대 명사들과의 파격적인 교류]

당대 최고의 왕족 벽계수의 콧대를 꺾고, 10년간 수도에 정진하여 생불이라 불리던 지족선사를 파계시키는 등 대담한 행보로 명성을 떨친다.

황진이는 뛰어난 재주와 미모로 당대의 명사, 한량들과 교류하며 시문을 주고받았다. 왕족인 벽계수를 유혹하여 콧대를 꺾고, 10년 동안 수도에 정진하여 생불로 불리던 천마산 지족암의 승려 지족선사를 유혹해 파계시키는 등 사회적 통념을 뒤흔드는 대담한 행보로 명성을 떨쳤다. 이와 같은 일화들은 그녀의 뛰어난 지략과 대담한 성격을 잘 보여준다.

1535

[서경덕과의 지적 교류]

당대 최고의 은둔학자 서경덕을 유혹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오히려 그의 인품에 탄복하여 사숙하며 학문을 배운다.

황진이는 당대 최고의 은둔학자 화담 서경덕을 유혹하려 시도했으나, 그의 고고한 학문과 인품에 굴하지 않는 모습에 감복한다. 이후 서경덕을 사숙하며 거문고와 술을 가지고 그의 정사를 자주 방문하여 당시(唐詩)를 배우는 등 단순한 남녀 관계를 넘어 지적인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맺었다. 이들은 박연폭포와 함께 송도삼절로 불리게 된다.

1540

[명창 이사종과의 사랑]

명창 이사종과 함께 그의 집에서 3년, 자기 집에서 3년, 총 6년간 동거하며 깊은 애정을 나눈다.

황진이는 명창 이사종과 특별한 관계를 맺었다. 그의 집에서 3년, 자신의 집에서 3년, 도합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함께 살다가 헤어졌다고 전해진다.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연인 관계였으며, 그녀의 자유분방한 애정관을 엿볼 수 있는 일화이다.

1567

[황진이의 죽음과 파격적인 유언]

1567년 무렵 사망했으며, 죽기 전 "내가 죽거든 관을 쓰지 말고 동문 밖 개울가에 시체를 두어 여인들로 하여금 경계로 삼게 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황진이의 정확한 사망 일자와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1567년 무렵 병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죽음을 앞두고 "나 때문에 천하의 남자들이 자애하지 못하였으니 내가 죽거든 관을 쓰지 말고 동문 밖 개울가에 시체를 두어 여인들로 하여금 경계로 삼게 하라"는 파격적인 유언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이는 그녀가 생전에 겪었던 사회적 시선과 자신의 삶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녀의 묘소는 경기도 장단군 구정현 판교동에 있다.

1957

1957 사후 390년

[대한민국 최초 영화 '황진이' 개봉]

대한민국 최초로 도금봉 주연의 영화 '황진이'가 개봉하여 큰 흥행을 기록하고 대만으로 수출되는 등 대중에게 황진이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된다.

1957년, 황진이의 일생을 다룬 대한민국 최초의 영화 '황진이'가 도금봉 주연으로 개봉했다. 이 영화는 국내에서 큰 흥행을 거두고 중화민국(대만)으로 수출되는 등 황진이의 이야기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는 20세기 이후 황진이를 소재로 한 소설,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들의 시작점이 되었다.

2006

2006 사후 439년

[KBS 드라마 '황진이' 방영]

KBS에서 김탁환의 소설을 각색한 하지원 주연의 드라마 '황진이'가 방영되며, 황진이 열풍을 다시 한번 불러일으킨다.

2006년, 한국방송공사(KBS)에서 김탁환 작가의 소설 '나, 황진이'를 각색한 드라마 '황진이'가 방영되었다. 하지원이 주연을 맡아 큰 인기를 끌었으며, 황진이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열풍을 다시 한번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심은경도 아역으로 출연하여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였다.

2007

2007.06.06 사후 440년

[송혜교 주연 영화 '황진이' 개봉]

홍석중 원작의 영화 '황진이'가 송혜교 주연으로 개봉하며 다시 한번 황진이의 삶과 예술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킨다.

2007년 6월 6일, 북한 작가 홍석중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 '황진이'가 송혜교 주연으로 개봉했다. 이 영화는 황진이의 삶과 예술, 그리고 사랑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며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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