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안 시대

일본 역사, 고대 일본, 시대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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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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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사, 고대 일본, 시대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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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390년간 일본의 황금기로 불리는 시대. - 간무 천황의 헤이안쿄 천도에서 시작. - 율령정치 섭관정치 인세이 등 다양한 통치 형태 변화. - 귀족 문화와 미신(모노노케 음양사) 성행. - 무사 계급의 성장을 촉발하며 가마쿠라 막부 시대로 전환된 격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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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4

[나가오카쿄 건설 시작]

간무 천황이 새로운 수도로 나가오카쿄 건설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헤이안 시대 직전의 중요한 천도 준비 과정입니다.

785

[나가오카쿄 책임자 암살]

나가오카쿄 건설 책임자 후지와라노 다네쓰구가 암살되고, 황태자 사와라 친왕이 용의자로 지목되어 폐위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787

[나가오카쿄 천도]

간무 천황이 나가오카쿄로 수도를 옮겼으나, 곧이어 헤이안쿄로 재천도하는 과도기적 수도였습니다.

788

[사이초, 엔랴쿠사 창건]

일본 천태종의 창시자인 사이초가 히에이 산에 엔랴쿠사를 세웠습니다.

이는 헤이안 시대 불교 발전의 중요한 이정표가 됩니다.

794

[헤이안쿄 천도]

간무 천황이 헤이안쿄로 수도를 옮기면서 약 390년간 지속될 헤이안 시대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807

[이요 친왕의 변]

이요 친왕을 둘러싸고 벌어진 정치적 사건으로, 헤이안 시대 초기의 권력 투쟁을 보여줍니다.

810

[구스코의 변]

황태자 지위를 둘러싸고 벌어진 구스코의 변은 헤이안 시대 초기 조정의 불안정한 상황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836

[견신라사 파견 중단]

일본이 신라와의 외교 사절 파견을 중단하고 발해와의 동맹을 강화하며 동아시아 외교 관계에 변화를 주었습니다.

838

[견당사 파견 중단]

일본이 당나라와의 교류를 중단하고 견당사를 폐지하며, 발해 문화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외교적 전환을 맞이했습니다.

840

[조와의 변]

헤이안 시대 초기의 정치적 불안정을 보여주는 사건 중 하나로, 조정 내부의 권력 다툼을 드러냈습니다.

858

[최초의 섭정 취임]

후지와라노 요시후사가 신하로서 최초로 섭정(셋쇼)에 취임하며 셋칸 정치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이는 천황 중심 정치에서 귀족 중심 정치로의 전환점입니다.

866

[오텐몬의 변]

오텐몬의 변으로 고대부터 이어져온 명문 씨족 오토모 가문이 몰락하며, 후지와라 씨의 권력 기반이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880

[후지와라노 모토쓰네 간파쿠]

후지와라노 모토쓰네가 간파쿠에 취임하며 셋칸 정치의 또 다른 축을 형성했습니다.

887

[아형 사건]

후지와라노 모토쓰네의 간파쿠 직위에 대한 논란으로, 천황과 섭관 가문 사이의 정치적 긴장을 보여주었습니다.

894

[견당사 폐지]

838년 파견이 중단되었던 견당사가 894년 완전히 폐지되면서 일본은 당나라와의 직접적인 외교 관계를 공식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901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좌천]

후지와라노 도키히라의 모함으로 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스가와라노 미치자네가 다자이후로 좌천되는 사건으로, 귀족 간의 권력 다툼이 심화되었음을 보여줍니다.

902

[엔기 장원정리령]

정부가 장원의 확대를 억제하고 세입을 확보하기 위해 발령한 장원정리령으로, 중앙집권 체제를 강화하려는 노력이었습니다.

927

[엔기시키 성립]

율령 체제의 최종 집대성인 《엔기시키》가 성립되었습니다.

이는 헤이안 시대 법률 및 행정 제도의 중요한 기록입니다.

939

[덴교의 난 발발]

데와 지역의 봉기와 간토에서 다이라노 마사카도가 '신황'을 칭하며 여러 쿠니를 장악했습니다.

동시에 서해에서는 후지와라노 스미토모가 해적들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켜 헤이안 조정의 통제력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940

[다이라노 마사카도 전사]

간토에서 반란을 일으켰던 다이라노 마사카도가 조정군에 패배하여 전사하며, 덴교의 난이 진압되기 시작했습니다.

941

[후지와라노 스미토모 진압]

서해에서 반란을 일으켰던 후지와라노 스미토모의 해적들이 조정군에 의해 진압되며, 덴교의 난이 완전히 마무리되었습니다.

967

[엔기시키 시행]

927년 성립된 《엔기시키》가 공식적으로 시행되면서 율령 체제의 행정 시스템이 본격 가동되었습니다.

969

[안나의 변 발생]

후지와라 가문의 모함으로 유력 귀족 미나모토노 다카아키라가 실각하는 안나의 변이 발생하며, 후지와라 씨의 독재적 권력이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996

[후지와라노 미치나가 권력 장악]

후지와라노 미치나가가 내람의 지위를 얻고, 형의 가문을 정계에서 배척하는 조토쿠의 변을 일으키며 셋칸 정치의 정점에 올랐습니다.

1016

[미치나가 셋쇼 취임]

후지와라노 미치나가가 섭정(셋쇼)에 취임하며 후지와라 씨 셋칸 정치의 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1019

[도이의 입구]

여진족 해적들이 일본 해안을 대대적으로 약탈하는 사건(도이의 입구)이 발생하여 지방의 방위 체계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켰습니다.

1028

[다이라 다다쓰네의 난]

간토 지역에서 다이라 다다쓰네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는 무사 세력의 성장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건입니다.

1031

[다이라 다다쓰네 항복]

다이라 다다쓰네의 난이 미나모토노 요리노부에 의해 진압되었습니다.

이는 미나모토 가문의 무사 세력이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051

[전9년의 역 시작]

도호쿠 지방에서 미나모토노 요리요시와 아베 씨족 간에 전9년의 역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무사 가문의 대두와 중앙의 통제력 약화를 보여줍니다.

1062

[전9년의 역 종결]

아베노 사다토가 패사하며 12년간 이어진 전9년의 역이 종결되었습니다.

이 전쟁은 미나모토 가문의 무사 세력 입지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1068

[고산조 천황 즉위, 셋칸 정치 폐막]

고산조 천황이 즉위하며 약 200년간 지속되었던 후지와라 씨 중심의 셋칸 정치 시대가 막을 내렸습니다.

이는 천황 중심의 정치가 부활하는 계기가 됩니다.

1072

[엔큐젠지마스 제정]

국가 공인 도량형 규격인 《엔큐젠지마스》가 제정되어 경제 질서를 확립하고 중앙의 통제력을 강화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1083

[후3년의 역 시작]

도호쿠 지방에서 미나모토노 요시이에와 기요하라 씨족 간에 후3년의 역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전9년의 역에 이어지는 또 다른 무사 간의 대규모 분쟁입니다.

1086

[시라카와 상황 인세이 개시]

시라카와 상황이 태상천황으로서 인세이(상황정치)를 시작했습니다.

이는 셋칸 정치를 대체하는 새로운 정치 형태로, 중세 일본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1087

[후3년의 역 종결]

미나모토노 요시이에의 승리로 후3년의 역이 종결되었습니다.

이 전쟁을 통해 미나모토 가문의 무사들이 더욱 확고한 세력을 형성했습니다.

1108

[미나모토노 요시치카의 난 진압]

다이라노 마사모리가 미나모토노 요시치카의 난을 진압하며 다이라 가문의 무사 세력이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111

[기록장원권계소 설치]

장원의 소유권과 관련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기록장원권계소가 설치되었습니다.

이는 복잡해지는 장원 문제에 대한 조정의 대응입니다.

1129

[도바 상황 인세이 개시]

시라카와 법황 사망 후 도바 상황이 인세이를 계승하며, 상황(上皇)이 실질적인 통치권을 행사하는 체제가 이어졌습니다.

1156

[호겐의 난]

도바 법황 사망 후 고시라카와 천황과 스토쿠 상황 사이에 무력 충돌(호겐의 난)이 발생했습니다.

이 난에서 천황측이 승리했지만, 무사들의 개입이 결정적이었습니다.

1159

[헤이지의 난]

호겐의 난 이후 다이라 씨와 미나모토 씨의 무사 세력이 권력을 놓고 다투는 헤이지의 난이 발생했습니다.

이 난에서 다이라 씨가 승리하며 헤이케 정권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1167

[다이라노 기요모리 다이조다이진]

다이라노 기요모리가 최고 관직인 다이조다이진에 취임하며 일본 역사상 최초의 무가 정권인 헤이케 정권을 수립했습니다.

1177

[시시가타니 음모 사건]

고시라카와 법황을 중심으로 한 반헤이케 세력이 헤이케 정권 전복을 꾀했으나 사전에 발각되었습니다.

이는 헤이케 정권에 대한 저항을 보여줍니다.

1179

[고시라카와 법황 유폐]

다이라노 기요모리가 고시라카와 법황을 도바덴에 유폐하며, 헤이케 정권의 강력한 권력을 과시하고 조정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했습니다.

1180

[겐페이 전쟁 시작]

모치히토왕의 헤이케 타도 명령에 호응하여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와 요시나카 등이 거병하며 겐페이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다이라 씨와 미나모토 씨 간의 전국적인 대규모 충돌입니다.

1181

[다이라노 기요모리 사망]

헤이케 정권의 실질적 수장 다이라노 기요모리가 사망했습니다.

그의 사망으로 헤이케 세력은 구심점을 잃고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1183

[다이라 씨 교토 퇴각]

다이라 일문이 교토를 버리고 서국으로 후퇴하고, 미나모토노 요시나카가 교토로 입성하며 겐페이 전쟁의 흐름이 미나모토 씨에게 유리하게 바뀌었습니다.

[고토바 천황 즉위]

겐페이 전쟁 중 고토바 천황이 즉위했습니다.

이 시기는 혼란 속에서도 조정의 명맥이 이어지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요리토모 도고쿠 지배권 인정]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조정으로부터 도고쿠(關東) 지역의 지배권을 합법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이는 가마쿠라 막부 설립의 발판이 됩니다.

1184

[미나모토노 요시나카 전사]

미나모토노 요시나카가 요리토모의 동생 요시쓰네에게 패하여 전사하며, 미나모토 가문 내부의 권력 다툼이 정리되었습니다.

[요리토모 행정기관 설치]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가마쿠라에 몬쥬쇼(문의소)와 구몬쇼(공문소)를 설치하며, 무가 정권의 행정 기반을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1185

[단노우라 전투, 헤이케 멸망]

역사적인 단노우라 전투에서 헤이케(다이라 씨)가 미나모토 씨에게 완전히 패하며 멸망했습니다.

이는 겐페이 전쟁의 종결이자 무가 정권 시대로의 확실한 전환을 알립니다.

[지토·슈고 설치(분지의 칙허)]

단노우라 전투 후 조정과 가마쿠라의 협상 끝에 각 지방에 지토(장원 관리)와 슈고(수호)가 설치되는 분지의 칙허가 내려졌습니다.

이는 가마쿠라 막부의 전국적 지배 체제를 확립하는 중요한 조치입니다.

1189

[오슈합전, 오슈 후지와라 멸망]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오슈 후지와라 씨를 토벌하는 오슈합전을 벌여 이들을 멸망시켰습니다.

이는 요리토모의 전국 통일 기반을 강화했습니다.

1190

[요리토모 고위직 취임]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교토에 입성하여 곤노다이나곤 등 고위 관직에 취임하며, 조정과의 관계를 정립하고 무가 정권의 입지를 공고히 했습니다.

1192

[고시라카와 법황 사망]

오랜 기간 일본 정계를 지배했던 고시라카와 법황이 사망했습니다.

이는 인세이 시대의 종언을 고하고 새로운 무가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가마쿠라 막부 개창]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세이이다이쇼군에 임명되며 일본 역사상 최초의 막부인 가마쿠라 막부를 개창했습니다.

이로써 헤이안 시대는 막을 내리고 무사 정권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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