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먼 멜빌
소설가, 시인, 미국 문학가, 선원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13:17
- 미국의 대표적인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해양 소설의 대가. - 생전에는 초기작으로 인기를 얻었으나 대표작 백경은 사후에 재평가되어 세계 문학사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 태평양 항해 포경선 생활 등 파란만장한 경험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 삶의 고난과 불운 속에서도 끊임없이 창작에 매진하여 인간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아냈다. - 난해한 작풍으로 사후 30년이 지나서야 뒤늦게 진가를 인정받은 비운의 천재이다.
1819
[허먼 멜빌 탄생]
미국의 대표적 문학가 허먼 멜빌이 뉴욕에서 앨런과 마리아 갱스부르 멜빌 부부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보스턴 차 사건에 참여했고, 외할아버지는 스탠윅스 요새를 방어한 장군으로, 멜빌은 유서 깊은 가문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1830
[가문의 파산과 이사]
직물 수입 사업을 하던 멜빌의 집안이 파산했다.
이로 인해 가족은 뉴욕주 올버니로 이사했고, 멜빌은 올버니 아카데미에 입학하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이는 어린 멜빌에게 큰 변화와 고난의 시작이었다.
1832
[아버지의 죽음과 책임]
멜빌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8남매를 포함한 가족들은 뉴욕주 랜싱버그로 이사했다.
허먼과 그의 형제 갱스부르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을 시작해야 했고, 이는 멜빌의 방랑 기질과 모험 정신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1837
[교사 생활의 시작]
멜빌은 1837년부터 3년간 학교 교사로 일하며 안정적인 생활을 보냈다.
이 시기는 그의 방랑과 모험 정신이 잠시 억눌렸던 때였으나, 이후 그의 문학적 상상력의 밑거름이 될 다양한 경험을 쌓는 전환점이기도 했다.
1840
[첫 항해와 '레드번']
멜빌은 에리 운하 측량사 일을 구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형의 도움으로 뉴욕에서 리버풀로 가는 여객선의 선실 승무원 일을 얻었다.
그는 런던까지 항해하며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1849년 소설 《레드번》을 출판하게 된다.
이는 훗날 위대한 해양 소설가로 성장할 그의 첫 해양 경험이었다.
[운명을 바꾼 태평양 항해]
모험심에 불타오른 멜빌은 태평양으로 향하는 포경선에 몸을 실었다.
그는 이 시점에서 자신의 인생이 시작되었다고 회고할 만큼 열여덟 달간의 파란만장한 항해를 경험했다.
혹독한 환경에 염증을 느낀 그는 1842년 7월 마라케스 제도의 누크히바에서 탈주하여 원주민 타이피족과 만났고, 이후 호주 포경선에 구조되었다가 타히티에서 승조원 폭행 사건에 휘말려 체포되는 등 드라마틱한 사건들을 겪었다.
1843년 4월 하와이에 닿기까지 이 모든 경험은 훗날 그의 위대한 저작들에 깊은 영감을 주었다.
멜빌은 포경선 생활의 혹독함에 염증을 느껴 1842년 7월 9일 마라케스 제도의 누크히바에서 도망쳤고, 원주민 타이피족과 만나 색다른 경험을 했다. 8월에는 오스트레일리아 포경선 루시안 호에 구조되었으나, 타히티 섬에서 승조원 폭행 사건에 연루되어 영국 영사관에 체포되었다. 10월에 다시 도망쳐 에이메오 섬으로 달아났으며, 1843년 4월 미국 포경선에 구조되어 하와이에 도착할 때까지 18개월간의 항해, 탈주, 체포의 과정을 겪었다. 이 모든 경험은 그의 인생과 문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843
[해군 수병과 귀환]
호놀룰루에 있던 멜빌은 미국 해군의 수병으로 채용되어 이듬해 1844년 랜싱버그로 돌아왔다.
그의 부재 동안 집안의 생계가 나아져 형제들이 독립하는 등 상황이 호전되었고, 멜빌은 삶의 여유 속에서 글쓰기에 다시 몰두하게 된다.
1845
[첫 소설 '타이피 족' 발표]
해양 소설이 유행하던 시류에 발맞춰, 멜빌은 마라케스 제도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첫 작품 《타이피 족》(Typee)을 발표했다.
이 소설에는 원주민 여인과의 사랑 등 파격적인 내용이 담겨 당시 독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작품으로 그는 작가로서의 성공적인 데뷔를 알렸다.
1850
[호손과의 운명적 만남]
멜빌은 존경하던 선배 문호 너대니얼 호손과 만났다.
이 만남은 그에게 깊은 영향을 주어, 집필 중이던 역작 《모비 딕》에 호손에게 헌정한다는 헌정사를 넣을 정도였다.
두 문학가의 교류는 멜빌의 작품 세계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1851
[대작 '모비 딕' 발표]
멜빌은 역작 《모비 딕》을 발표하며 정력적인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작품은 당시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문인으로서의 명성도 얻지 못했다.
시대를 앞서간 그의 작품은 살아생전에는 빛을 보지 못했다.
1866
[뉴욕 세관 근무 시작]
문인으로서 성공하지 못하고 생활고에 시달리던 멜빌은 뉴욕 세관의 검사계 일을 얻어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이는 작가로서의 삶보다는 현실적인 어려움에 직면한 그의 모습을 보여주며, 작품 활동과 더불어 험난했던 그의 삶을 짐작하게 한다.
[개인적 불행의 연속]
세관 근무 중 멜빌은 맏아들 말콤이 권총 자살하고, 자택이 화재로 소실되며, 둘째 아들 스탠웍스가 가출 후 샌프란시스코에서 객사하는 등 연이은 비극을 겪었다.
이러한 깊은 개인적 슬픔과 좌절은 그의 문학 세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을 것이다.
뉴욕 세관 검사계에 근무하던 시기에 멜빌은 혹독한 개인적 불행에 시달렸다. 맏아들 말콤이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자택이 화재로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으며, 둘째 아들 스탠웍스마저 집을 나가 2년 뒤 샌프란시스코에서 객사했다. 이러한 참혹한 비극들은 그의 노년과 창작 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1891
['빌리 버드' 완성 및 사망]
생의 마지막 해, 멜빌은 그의 걸작 중 하나인 《빌리 버드》를 완성하고, 그 해 확장성 심근병증으로 인한 심장 발작으로 사망했다.
그는 평생 고독한 창작 활동을 이어갔으나, 생전에는 대중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1921
[사후 재평가의 시작]
멜빌이 사망한 지 30년이 지난 1921년, 레이몬드 위버가 쓴 《허먼 멜빌 - 뱃사람 그리고 신비주의자》가 발표되면서 그의 작품은 비로소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이 책을 기점으로 멜빌은 잊혀진 작가에서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의 진가를 알아본 것은 사후의 일이었다.
['모비 딕'의 세계적 명성]
재평가 이후, 『멜빌 저작집』이 간행되고 『모비 딕』이 그레고리 펙 주연으로 영화화되는 등 멜빌은 미국을 넘어 세계 문학계에서 중요한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세계 10대 소설 중 하나로 《모비 딕》이 꼽힐 만큼, 그의 작품은 시대를 초월한 걸작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레이몬드 위버의 전기가 발표된 후, 멜빌에 대한 재평가에 불이 붙어 『멜빌 저작집』(전16권)이 간행되었고, 특히 『모비 딕』은 그레고리 펙 주연으로 영화화되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살아생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명성을 사후에 얻게 된 멜빌은, 이제 미국을 대표하는 문학인이자 세계 문학사의 거장으로 추앙받고 있다. 서머셋 몸은 세계의 10대 소설 중 하나로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을 꼽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