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헌

시인, 작가, 화가, 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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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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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시대를 앞서간 천재 여류 문인 허난설헌. 8세에 신동 소리를 들었으나 불행한 결혼과 연이은 가족 비극 속에서 비운의 삶을 살았다. 죽음을 앞두고 작품을 소각하려 했으나 동생 허균에 의해 명나라와 일본에까지 알려져 세계적인 여성 시인으로 인정받았다. 봉건 사회의 굴레 속에서도 나를 찾아 고뇌했던 그녀의 삶은 오늘날까지 깊은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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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3

[천재의 탄생]

조선 중기, 강원도 강릉의 명문가에서 학자 허엽의 셋째 딸 허초희가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신동이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시재(詩才)와 예술적 재능을 보였으며, 훗날 '난설헌'이라는 호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된다.

1570

[8세 신동, 광한전백옥루상량문]

단 8세의 나이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을 지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딸의 비범한 재능을 알아본 아버지 허엽과 오빠 허봉의 배려로 당대 최고의 시인 이달에게 시와 글을 배우는 특별한 기회를 얻는다.

이는 당시 여성으로서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1577

[불운의 시작, 결혼]

15세 무렵 안동 김씨 가문의 김성립과 혼인했으나, 재주 많은 난설헌을 꺼리는 남편과 시어머니의 냉대 속에서 고통스러운 결혼 생활을 시작한다.

이는 그녀의 시 세계에 깊은 애상적 정서를 드리우는 계기가 된다.

1579

[첫 아이와의 이별]

결혼 생활의 불행에 더해 첫 아이인 딸을 잃는 아픔을 겪는다.

이어진 비극은 그녀의 삶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시를 통해 슬픔을 달래는 계기가 된다.

1580

[아버지의 죽음]

결혼 생활의 불행 속에서 의지할 곳이었던 아버지 허엽마저 객사하는 비극을 겪는다.

연이은 가족의 불행은 그녀의 삶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1582

[애달픈 곡자시의 탄생]

딸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랑하는 아들마저 잃는 비극을 겪는다.

이 깊은 슬픔을 담아 <곡자(哭子)>라는 애절한 시를 지었으며, 뱃속의 아이마저 사산하며 연이은 불행 속에서 삶의 의지를 잃어갔다.

"지난해 귀여운 딸애 여의고 올해는 사랑스런 아들 잃다니 / 서러워라 서러워라 광릉땅이여 두 무덤 나란히 앞에 있구나" 로 시작하는 <곡자>는 그녀의 고통스러운 심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1583

[오빠 허봉의 귀양]

둘째 오빠 허봉이 율곡 이이를 비판하다 귀양을 가게 되면서, 난설헌은 또 다른 가족의 비극을 마주하게 된다.

끊이지 않는 불행 속에서도 그녀는 시와 그림으로 고통을 승화하려 노력했다.

1588

[오빠 허봉의 객사]

귀양에서 풀린 후 방랑하던 오빠 허봉이 금강산에서 객사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삶의 의욕을 잃어가는 난설헌은 죽기 전 자신의 작품 대부분을 소각하라는 유언을 남긴다.

1589

[남편 김성립의 재혼]

난설헌이 세상을 떠난 같은 해, 남편 김성립은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남양 홍씨와 재혼한다.

생전 난설헌을 외면했던 남편의 행보는 그녀의 비극적인 삶을 더욱 부각시킨다.

[27세, 천재의 요절]

불과 27세의 젊은 나이에 한성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명확하지 않으나, 임신 중 아이를 잃고 가족들의 연이은 비극 속에 몸과 마음이 병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녀는 죽기 직전 '부용꽃 스물 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라는 시를 남기며 자신의 짧고 비극적인 삶을 예감했다.

1590

[허균의 헌정, 난설헌집 초고]

동생 허균은 누나의 시재를 아깝게 여겨, 친정에 있던 난설헌의 시들과 기억에 남은 작품들을 모아 《난설헌집》 초고를 만들고 당대 명재상 류성룡에게 서문을 받아 그녀의 예술혼을 세상에 알릴 준비를 시작한다.

1592

[남편 김성립, 전사]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남편 김성립은 전쟁에 참가하여 전사한다.

사후 그 공로로 증 이조참판에 추증되었고, 난설헌 또한 증 정부인으로 추증되어 비로소 정당한 평가를 받게 된다.

1598

[명나라에 전해진 시편]

동생 허균이 정유재란 때 원정 나온 명나라 오명제에게 난설헌의 시 200여 편을 전해주면서, 그녀의 시는 명나라에서 편찬된 《조선시선》, 《열조시선》 등 당대 명망 높은 시집에 실리게 된다.

1606

[중국에 울려 퍼진 이름]

허균이 명나라 사신 주지번, 양유년 등에게 누나의 시를 전하자, 이들은 그녀의 천재성에 탄복하여 적극적인 지원 속에 《난설헌집》이 명나라에서 정식으로 간행된다.

이로써 난설헌은 당대 세계적인 여성 시인으로서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다.

1607

1607.04 사후 18년

[조선에서 빛을 보다]

명나라에서의 간행에 이어, 허균은 조선에서도 《난설헌집》을 목판본으로 출판하여, 누나의 뛰어난 시재가 조국에서도 널리 알려지고 평가받는 계기를 마련한다.

1612

[또 다른 시집, 취사원창]

그녀의 미간행 시집으로 알려진 《취사원창》(聚沙元倡)이 중국에서 발간되었다.

이 시집은 2000년에 이르러 새롭게 발굴되어 그녀의 작품 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가능하게 했다.

1711

1711 사후 122년

[일본을 사로잡은 시인]

명나라에 이어 일본에서도 분다이야 지로베이에 의해 《난설헌집》이 간행되고 널리 애송되면서, 난설헌은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여성 시인으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다졌다.

이는 당시 여성으로서는 전례 없는 일이었다.

2000

2000.09 사후 411년

[잃어버린 시집의 재발견]

청나라 만력 40년(1612년)에 중국에서 간행된 시집 ≪취사원창≫(聚沙元倡)이 2000년 9월, 새롭게 발굴되었다.

이 발견은 허난설헌의 작품 세계를 더욱 풍부하게 이해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그녀의 위상이 다시금 주목받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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