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공업 사태

노동쟁의, 정리해고, 사회 운동,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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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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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쟁의, 정리해고, 사회 운동,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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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맞선 노동자들의 길고 긴 투쟁. 김진숙 지도위원의 상징적인 고공농성으로 전국민의 이목 집중. 희망버스 운동으로 사회적 연대와 지지를 이끌어내며 노동운동의 새 지평을 열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노동권 보호의 중요성을 일깨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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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정리해고 결정 발표]

한진중공업이 경영 악화를 이유로 생산직 근로자 400명에게 희망 퇴직을 결정하며 대량 해고의 시작을 알렸다.

이는 이후 장기간에 걸친 격렬한 노동 쟁의의 불씨가 되었다.

[대규모 농성 돌입]

회사의 정리해고 결정에 맞서 한진중공업 노조는 '정리해고 전면 철회'를 요구하며 나흘간의 강력한 농성에 들어갔다.

이는 한진중공업 사태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대규모 저항의 서막이었다.

2011

[김진숙 고공농성 시작]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에 저항하며 민주노총 김진숙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에 올라 역사적인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이는 장기간 이어지며 전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한진중공업 사태의 상징적인 장면이 되었다.

[17호 크레인 고공농성]

85호 크레인의 고공농성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진중공업 측의 입장 고수에 반발하여 또 다른 17호 크레인에서도 고공농성이 시작되었다.

노동자들의 절박한 외침이 더욱 높아졌다.

[17호 크레인 농성 종료]

한진중공업 17호 크레인에서의 고공농성이 87일 만에 기자회견을 통해 종료되었다.

하지만 85호 크레인의 김진숙 지도위원 농성은 계속되었다.

[1차 희망버스 출정]

김진숙 지도위원의 고공농성을 지지하고 정리해고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희망버스' 16대가 한진중공업에 도착했다.

시민들의 촛불행진과 공장 진입 시도가 있었고, 이 과정에서 용역 직원과 노조원 다수가 부상당했다.

전국적 연대의 상징이 된 '희망버스' 운동의 시작이었다.

[수빅조선소 시위 격화]

한진중공업 필리핀 수빅 조선소에서 발생한 다수의 산재 사망 사고에 대한 노동자들의 시위가 격화되었다.

노동 조건 개선과 불법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한국의 '희망버스'와 연대한 국제적인 노동 문제로 주목받았다.

[2차 희망버스 및 충돌]

약 만 명의 시위대가 참여한 '2차 희망버스' 집회는 부산 시내를 행진하며 한진중공업으로 향했다.

야당 의원들까지 함께한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하고 공장 진입을 시도하자 경찰은 최루액을 사용하여 진압했고, 50여 명이 연행되는 등 격렬한 충돌이 발생했다.

[2차 희망버스 후폭풍]

2차 희망버스 시위 후, 부산 경찰은 위법행위 엄정 처벌 방침을 밝혔다.

한편, 보건의료단체연합은 경찰의 최루액 사용을 비판하는 성명을 냈고, 일부 지역 정치인들은 3차 희망버스 저지를 주장하며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었다.

[손학규 대표 방문]

2차 희망버스 이후 정치권의 관심이 높아지며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를 방문했다.

이는 사태 해결을 위한 정치적 압박으로 해석될 수 있었으나, 사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3차 희망버스 출정]

1만여 명의 시위대가 참여한 '3차 희망버스' 행사가 부산에서 열렸다.

동시에 '대한민국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 300여 명으로 구성된 '참희망버스'가 시위대 저지에 나서면서 양측 간의 마찰과 충돌이 발생, 한 명이 부상당했다.

[3차 희망버스 자진해산]

대규모 인원이 참여했던 3차 희망버스 시위대가 다음날 기자회견을 통해 자진 해산을 결정했다.

큰 충돌 없이 마무리된 점은 이전 시위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조남호 회장 성명]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이 해외 출장 후 귀국하여 부산시청에서 대국민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외부 세력 개입 자제를 호소하며 사태 해결을 위한 입장을 밝혔다.

[5차 희망버스 계획 논란]

5차 희망버스가 10월 8일로 계획되자 허남식 부산시장과 부산시의회 의장 등이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방해를 이유로 강력히 반대하며 논란이 일었다.

자유선진당 또한 '역주행하는 희망버스'라며 비판했다.

[고공농성 309일 만에 종료]

309일간 이어진 85호 크레인의 고공농성이 드디어 노사 합의로 막을 내렸다.

이는 길고 긴 한진중공업 사태의 핵심적인 상징이었던 김진숙 지도위원의 투쟁이 마무리되었음을 의미한다.

[마지막 희망버스 운행]

85호 크레인 농성 종료를 기념하여 부산 영도에서 마지막 희망버스가 개최되었다.

한진중공업 해고자와 지지자 200여 명이 참가하며 한진중공업 사태의 사회적 연대 운동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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