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르 브뤼헐 더 아우더
화가, 르네상스 예술가, 풍경화가, 북유럽 미술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11:53
북유럽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 농민의 브뤼헐로 불리며 미술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다. 평범한 농민의 일상부터 사회 비판 성경 속 서사까지 폭넓은 주제를 자신만의 통찰력과 유머로 그려냈다. 특히 자연 풍경과 인물을 조화시킨 독특한 화풍은 후대 풍경화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걸작을 남겼으며 그의 예술적 유산은 두 아들에게로 이어졌다.
1525
[브뤼헐, 세상에 첫걸음을 떼다]
북유럽 르네상스의 문을 연 거장, 피터르 브뤼헐 더 아우더가 브라반트 공국에서 태어났다.
그의 성 '브뤼헐'은 태어난 마을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1551
[화가의 길, 유럽을 유랑하다]
예술적 역량을 키우기 위해 안트베르펀의 화가 조합에 이름을 올린 브뤼헐은 이후 이탈리아와 프랑스로 유학길에 올라 서구 미술의 정수를 경험하며 자신만의 화풍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1558
['농민의 브뤼헐', 걸작 시대를 열다]
브뤼헐은 이 시기부터 '네덜란드 속담' 같은 민간 전설과 속담, '바벨탑'처럼 당시 네덜란드를 억압하던 에스파냐를 종교적 제재로 표현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특히 농민들의 삶을 애정과 유머가 담긴 시선으로 그려내며 '농민의 브뤼헐'이라는 독특한 별명을 얻었다.
그는 작품에 서명과 날짜를 기입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1559년부터 서명에서 'h'를 뺀 'Bruegel'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의 독창적인 풍경 묘사는 훗날 풍경화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시기 대표작으로는 〈장님〉, 〈농부의 혼인〉, 〈눈 속의 사냥꾼〉 등이 있다.
1569
[거장, 영원의 잠에 들다]
북유럽 르네상스의 위대한 화가 피터르 브뤼헐 더 아우더가 짧고 강렬했던 예술혼을 불태우며 세상을 떠났다.
그는 평생 45점의 작품을 통해 시대를 초월한 메시지를 남겼다.
그의 두 아들 피터르 브뤼헐 더 용어와 얀 브뤼헐 더 아우더 또한 아버지의 예술적 재능을 물려받아 각각 '지옥의 브뤼헐', '꽃의 브뤼헐'로 불리며 유명한 화가가 되었다. 아버지로부터 직접적인 미술 교육은 받지 않았으나, 그들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