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전쟁, 역사, 국제 관계, 통일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11:22
스페인 왕위 계승 문제를 시작으로 프로이센과 프랑스 제2제국이 맞붙은 대규모 전쟁. 이 전쟁으로 프로이센은 독일 통일을 완성하고 독일 제국을 수립 유럽 최강국으로 부상. 프랑스는 제2제국이 붕괴하고 제3공화국이 세워졌으며 알자스-로렌을 잃고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 로마 교황청의 세속권력 붕괴 등 유럽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제1차 세계 대전의 불씨를 지폈다.
1867
[프랑스-오스트리아 동맹 제의]
프랑스가 프로이센의 세력 확장을 견제하기 위해 오스트리아에 동맹을 제의했으나, 오스트리아는 발칸반도에 더 관심이 많아 거절하며 프랑스는 외교적으로 고립된다.
1868
[스페인 이사벨 2세 축출]
스페인에서 혁명이 일어나 이사벨 2세 여왕이 쫓겨나면서 새로운 왕위 계승자를 물색하게 된다.
이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발발의 중요한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1870
[레오폴트 스페인 왕위 제안]
스페인 혁명 정부가 프로이센 국왕 빌헬름 1세의 사촌인 레오폴트에게 왕위를 제안한다.
프랑스는 이를 자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행위로 간주해 강력히 항의하며 긴장감이 고조된다.
[레오폴트 왕위 수락 발표]
스페인 왕위 계승을 공식 거절했던 레오폴트 공이 비스마르크의 지시로 왕위 수락을 발표하며 프랑스의 격렬한 반응을 이끌어낸다.
비스마르크는 이를 프랑스와의 전쟁 명분으로 활용하려 했다.
[베네데티 대사, 재발 방지 요구]
휴양 중인 프로이센 빌헬름 1세에게 독일주재 프랑스 대사가 스페인 왕위 계승 문제의 재발 방지 보장을 재차 요구하는 외교적 결례를 범한다.
빌헬름 1세는 이를 거절하며 양국 관계는 더욱 악화된다.
[레오폴트 왕위 수락 취소]
프랑스의 강력한 항의와 압박으로 레오폴트 공은 스페인 왕위 수락을 공식적으로 취소한다.
이는 프랑스 외교의 작은 승리로 보였지만, 곧 비스마르크의 교묘한 술책에 의해 전쟁의 빌미가 된다.
[엠스 전보 사건 발생]
빌헬름 1세와 프랑스 대사의 회동 소식을 비스마르크가 프랑스 국민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발표했다.
이른바 '엠스 전보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양국 국민의 분노를 격화시키며 전쟁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다.
비스마르크가 회동 내용을 의도적으로 편집하여 프랑스에 대한 모욕적인 내용을 담은 것처럼 보이게 했고, 이는 프랑스 언론을 통해 확산되며 국민적 공분을 샀다.
[프랑스 군 동원령 선포]
엠스 전보 사건으로 국민적 분노가 극에 달하자, 프랑스는 프로이센에 대한 선전포고를 앞두고 군대 동원령을 내린다.
이는 전쟁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프랑스, 전쟁 선포]
프랑스가 프로이센에 공식적으로 전쟁을 선포하며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시작된다.
비스마르크는 이를 '방어 전쟁'으로 규정하며 남부 독일 국가들의 군사적 지원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프랑스군 대패]
프랑스군이 마르스라투르 전투와 그라블로트 전투에서 프로이센군에 참패하며 사실상 괴멸적인 타격을 입는다.
이는 프랑스의 전쟁 초기 패배를 결정짓는 중요한 전투였다.
[나폴레옹 3세 생포]
스당 전투에서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가 프로이센군에게 생포된다.
이 소식은 프랑스에 충격을 주며 제2제국의 몰락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다.
[프랑스 제3공화국 수립]
나폴레옹 3세의 생포 소식이 파리에 전해지자, 공화주의자들이 봉기하여 제2제정을 폐지하고 프랑스 제3공화국을 선포한다.
황제는 포로 생활 후 영국으로 망명한다.
[프로이센군의 파리 포위]
프랑스 임시 국민방위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프로이센군이 프랑스의 수도 파리를 포위하기 시작한다.
포위된 파리는 극도로 비참한 겨울을 보낸다.
[이탈리아 로마 점령]
프랑스군이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참전을 위해 로마에서 퇴각하자, 이탈리아군이 로마를 점령하여 교황청의 천 년 이상 이어져 온 세속권력이 완전히 붕괴한다.
1871
[독일 제국 수립 선포]
파리 외곽 베르사유 궁전에서 독일 역사상 최초로 통일된 '독일 제국'의 수립이 선포되고, 프로이센 국왕 빌헬름 1세가 초대 독일 황제로 추대된다.
이는 유럽의 정치 지형을 완전히 바꾸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탄생한 독일 제국은 4왕국, 18공국, 3자유시 등 25개의 국가와 2제국령(알자스-로렌)으로 구성된 연방 국가였다.
[프랑스 정부 항복]
프로이센군의 파리 포위로 비참한 겨울을 보낸 프랑스 공화국 정부가 결국 프로이센에 항복하며 휴전 조약이 체결된다.
독일은 대표성 있는 정부와의 종전 협상을 요구한다.
[프랑스 총선거 실시]
독일군의 점령 하에 조급하게 치러진 프랑스 선거에서 왕당파가 임시정부의 의회를 장악한다.
티에르가 행정수반으로 선출되지만 파리 시민들의 반감이 거세게 일어난다.
[독일군 파리 개선 행진]
독일군이 승전 행사를 위해 파리 시내로 입성하는 치욕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파리 시민들은 이에 분노하여 검은 조기를 내걸고 밤에도 불을 켜지 않는 방식으로 저항했다.
[파리 국민방위대 해산 시도]
행정수반 티에르가 파리 시민들의 무장봉기를 막기 위해 국민방위대(시민 의용군)가 보유한 대포 회수 및 강제 해산을 시도한다.
대포가 시민 기부로 마련된 것이라 시민들은 강력히 거부한다.
[파리 중앙위원회 결성]
티에르 정부의 무장 해제 시도에 반발하며,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벌어진 혼란 속에 장군들이 총살당하자 티에르와 정부는 베르사유로 퇴각한다.
파리 시민과 노동자들은 중앙위원회를 결성하여 사실상 파리를 장악한다.
[파리 코뮌 설립 선포]
선거를 통해 평의회 의원을 선출한 파리 시민과 노동자들이 인류 역사상 최초의 노동자 자치정부인 '파리 코뮌'의 설립을 선포하며 독자적인 행보를 시작한다.
이는 봉건적 잔재와 자본주의적 모순에 저항하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프랑크푸르트 조약 체결]
독일과 프랑스 간에 프랑크푸르트 조약이 체결되며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공식적으로 종료된다.
프랑스는 알자스-로렌을 독일에 할양하고 50억 프랑의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지불하게 된다.
조약의 주요 내용은 프랑스의 알자스-로렌 할양, 50억 프랑의 전쟁 배상금 지불, 배상금 완료 시까지 프로이센군 주둔, 알자스-로렌 주민의 잔류 또는 이민 선택 등이었다.
[파리 코뮌 진압 작전 시작]
베르사유로 후퇴하여 전력을 보강한 티에르 정부군이 파리 코뮌을 진압하기 위한 총공격을 시작한다.
5월 28일까지 이어진 양진영의 무력충돌은 '피의 일주일'이라 불릴 정도로 처절하고 잔인했다.
[파리 코뮌 진압 완료]
베르사유 정부군의 공격으로 '피의 일주일' 끝에 파리 코뮌이 진압된다.
최소 2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4만 명 이상이 군사재판에 기소되는 등 인류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시가전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1873
[독일군 프랑스 최종 철수]
프랑스가 독일이 요구한 50억 프랑의 막대한 전쟁 배상금 지불을 완료하자, 독일군이 프랑스에서 마지막으로 철수한다.
이는 프랑스에 엄청난 재정적 부담을 주었지만, 놀라운 속도로 경제가 회복되는 계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