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제1제국

제국, 군주국, 프랑스 역사, 나폴레옹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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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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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군주국, 프랑스 역사, 나폴레옹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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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제1제국은 나폴레옹 1세가 프랑스 혁명 이후 혼란을 수습하고 수립한 군주 정권이다. 나폴레옹의 뛰어난 군사적 능력에 전적으로 의존해 유지된 군사 국가였으며 유럽 전역을 호령하며 제국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대외 전쟁의 실패로 몰락의 길을 걸었으며 프랑스 역사와 유럽 질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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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

[황제 즉위의 발판 마련]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국민투표에서 압도적인 찬성표를 얻으며 제국 수립의 정당성을 확보했습니다.

이는 혁명 이후 혼란을 수습하고 강력한 지도자로 부상한 나폴레옹에 대한 대중적 지지의 증거였습니다.

[나폴레옹 1세 황제 즉위]

국민적 지지 속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스스로 황제관을 쓰고 나폴레옹 1세로 즉위했습니다.

그는 부르봉 왕조가 아닌 로마 제국의 계승자임을 선포하며 강력한 권력을 과시했습니다.

이 즉위는 유럽 열강의 대프랑스 동맹 결성을 촉진했습니다.

1805

[파리 대대적인 개조 시작]

나폴레옹 1세는 수도 파리를 세계 제일의 도시로 만들기 위한 대대적인 근대화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도시에 분수를 설치하고 묘지를 정리했으며, 광장과 회관, 시장 등 공공시설을 정비하고 위인들의 동상을 세우는 등 도시의 위상을 높이는 데 집중했습니다.

[아우스터리츠 대승과 독일 장악]

나폴레옹 1세는 영국 침공 계획을 보류하고 오스트리아-러시아 연합군을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격파하며 완승을 거뒀습니다.

이 승리로 신성로마제국을 해체하고 친프랑스 성향의 라인 동맹을 성립시켜 독일 서남부 지역의 패권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1806

[프로이센, 러시아 격파 및 베를린 입성]

프랑스의 패권에 대항한 프로이센과 러시아 연합군을 상대로 프랑스는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 승리하며 프로이센의 수도 베를린에 입성했습니다.

이듬해 러시아군까지 격파하며 유럽 대륙의 군사적 우위를 확고히 다졌습니다.

1807

[틸지트 조약, 유럽 지배 완성]

아일라우와 프리틀란트 전투에서 러시아군을 굴복시킨 나폴레옹은 러시아 황제와 틸지트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이로써 폴란드를 바르샤바 공국으로 분립시키고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국력을 약화시키는 등 프랑스의 유럽 지배를 완성했습니다.

이 승리를 기념하여 개선문 건설을 명령했습니다.

[대륙봉쇄령 발동]

나폴레옹은 영국을 경제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해 대륙봉쇄령을 발동했습니다.

당시 산업혁명의 중심이었던 영국 경제를 마비시키려 했으나, 오히려 대륙 각국의 경제를 피폐하게 만들어 프랑스 제국에 대한 불만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1808

[이베리아반도 침공과 게릴라전]

나폴레옹은 스페인 왕실 내분을 틈타 군대를 파병, 이베리아반도를 침공했습니다.

그러나 강한 민족주의를 가진 스페인 국민들이 영국 지원 아래 끈질긴 게릴라전을 펼치며 프랑스군에 큰 부담을 안겨 제국의 취약점을 드러냈습니다.

1809

[오스트리아 재굴복과 정략결혼]

이베리아반도의 불안한 정세 속에서 오스트리아가 다시 프랑스에 항거했으나, 나폴레옹은 즉시 격파하고 빈을 점령했습니다.

그는 후계자 문제를 해결하고 오스트리아의 반항을 막기 위해 프란츠 황제의 딸 마리 루이즈와의 정략결혼을 강요했습니다.

1810

[황실 후계자 나폴레옹 2세 탄생]

조제핀과의 이혼 후 마리 루이즈와 재혼한 나폴레옹 1세는 마침내 적자인 나폴레옹 2세를 얻었습니다.

그는 갓 태어난 아들에게 '로마왕' 칭호를 부여하며 제국의 확고한 세습과 정권 안정을 위한 기반을 다지는 데 성공했습니다.

1812

[운명의 러시아 원정 시작]

러시아가 스웨덴과 공조하며 프랑스에 항전, 틸지트 조약을 파기하자 나폴레옹은 대규모 러시아 원정을 감행했습니다.

프랑스군은 러시아군을 격파하며 수도 모스크바를 점령했으나, 러시아인들의 끈질긴 저항과 게릴라전에 직면했습니다.

[러시아 원정의 비극적 실패]

모스크바 점령 후 러시아의 항복을 기대했던 나폴레옹의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러시아인들의 강력한 저항과 농민 게릴라, 혹독한 추위 속에서 철군 시기를 놓친 프랑스군은 100만 명에 달하던 대군이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습니다.

나폴레옹은 파리 쿠데타 미수 소식에 병사들을 버리고 귀환했습니다.

1813

[드레스덴 전투 승리 및 연합군의 역습]

러시아 원정 대패 후 나폴레옹은 군을 재편하여 드레스덴 주변에서 프로이센-러시아 연합군의 진격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정전 교섭 지연으로 오스트리아마저 프랑스의 적이 되면서 전세는 더욱 불리해졌습니다.

[라이프치히 전투 대패, 제국 붕괴 가속화]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 스웨덴 등 4개국 연합군과 프랑스군이 라이프치히에서 벌인 역사적인 대접전에서 나폴레옹은 결정적인 패배를 당했습니다.

이 패배로 라인 동맹이 붕괴되는 등 프랑스 제국의 유럽 지배가 급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1814

[파리 함락과 나폴레옹의 첫 퇴위]

연합군의 파리 침공전에서 프랑스군이 패배하자, 프랑스 제국 의회와 장군들은 나폴레옹의 퇴위를 요구했습니다.

결국 그는 저항을 포기하고 퇴위 문서에 서명한 후, 지중해의 엘바섬으로 유배되었습니다.

[부르봉 왕정 복고와 빈 회의 개막]

나폴레옹 퇴위 후 프랑스에서는 부르봉 왕가의 루이 18세가 왕으로 즉위하며 왕정 복고가 이루어졌습니다.

한편 유럽 열강은 나폴레옹 이후의 유럽 질서를 논의하기 위해 빈 회의를 열었으나, 각국의 이해관계 대립으로 교착 상태에 빠졌습니다.

1815

[나폴레옹의 엘바섬 탈출과 귀환]

빈 회의의 혼란과 루이 18세에 대한 국민적 불만을 틈타 나폴레옹 1세는 엘바섬을 탈출, 프랑스 남해안에 상륙했습니다.

그는 파리 시민과 병사들의 열렬한 환영 속에 순식간에 파리로 입성하며 다시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워털루 전투, 제국의 최후]

나폴레옹의 귀환에 유럽 열강은 재빨리 동맹을 맺고 프랑스에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벨기에 워털루에서 영국-프로이센 연합군과 프랑스군이 대결했고, 나폴레옹은 이 전투에서 결정적으로 패배하며 그의 제국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나폴레옹의 마지막 유폐]

워털루 전투 패배 후, 나폴레옹 1세는 다시 퇴위하고 대서양의 외딴섬 세인트헬레나에 유폐되었습니다.

이로써 프랑스 제1제국은 완전히 종식되었고, 나폴레옹 시대는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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