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슈베르트

작곡가, 음악가, 오스트리아인, 낭만주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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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14- 01: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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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슈베르트
작곡가, 음악가, 오스트리아인, 낭만주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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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낭만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 31년의 짧은 생애 동안 600여 곡의 가곡 13편의 교향곡 등 1 200곡이 넘는 방대한 작품을 남겨 가곡의 왕이라 불린다. 가난과 병고 속에서도 끊임없이 명작을 탄생시키며 특히 리트 형식의 세계를 확장해 19세기 독일 리트의 창시자로 손꼽힌다. 그의 음악은 후대 음악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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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7

[출생 및 음악 교육 시작]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 오스트리아 빈 리히텐탈에서 초등학교 교장인 아버지와 요리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나다.

5살부터 아버지와 형에게 악기 교육을 받으며 음악에 대한 재능을 일찍이 드러냈다.

1804

[살리에리에게 음악 지도를 받다]

당대 세계적인 음악가 안토니오 살리에리에게 음악 지도를 받으며 그의 천부적인 재능을 인정받았다.

1808

[궁정신학원 장학생 입학]

궁정신학원에 장학생으로 입학해 모차르트의 서곡과 교향곡, 베토벤의 작품을 접하며 큰 음악적 영향을 받았다.

특히 모차르트를 좋아하고 베토벤을 존경했다.

1810

[궁정학교 자퇴]

13세 무렵, 변성기와 저조한 학업 성적 때문에 궁정학교를 그만두었다.

이는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학업을 소홀히 한 결과였다.

1814

[조교사 근무 및 첫사랑]

아버지의 뜻에 따라 아버지가 근무하는 초등학교에서 조교사로 일하며 본격적으로 작곡 활동을 시작했다.

이 해에 바 장조의 미사곡을 작곡했고, 이 곡의 독창을 부른 테레제 그로브는 슈베르트의 첫사랑이 되었다.

1815

['마왕' 등 명작 가곡 대거 작곡]

18세의 젊은 나이에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수백 곡의 가곡을 썼다.

특히 괴테의 시에 곡을 붙인 《마왕》, 《휴식 없는 사랑》, 《들장미》 등의 명작들을 대거 작곡하며 19세기 독일 리트 형식의 창시자로 등극했다.

1816

[작곡에 몰두하며 방랑 시작]

시인 친구 프란츠 폰 쇼버의 권유로 그의 집에 머물며 작곡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그의 방랑 생활이 시작되었으며, 평생 그를 괴롭힐 매독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1817

[유명 성악가 포글과 인연]

당시 최고의 성악가이자 25세 연상인 요한 미하엘 포글을 만나 그의 음악 활동에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1818

[가곡 '죽음과 소녀', '송어' 작곡]

가곡 《죽음과 소녀》와 《송어》를 작곡하며 다시 한번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을 선보였다.

에스테르하지 공작 집안의 두 딸 가정교사로 초빙되어 한여름을 바가에서 보냈다.

1819

[첫 공개 연주회와 슈베르티아드]

요한 미하엘 포글과 함께 북오스트리아 각지로 연주 여행을 떠났고, 그의 음악이 처음으로 공개 연주되어 큰 호평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친구들을 중심으로 '슈베르티아드(Schubertiads)'라는 후원 모임이 결성되기 시작했다.

가곡 《방랑자》와 《교향곡 제5번》을 작곡했다.

1822

[매독 발병]

머리에 매독진이 생기는 등 매독 발병의 확실한 증거가 나타났다.

이로 인해 머리를 깎고 가발을 착용해야 하는 등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1823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처녀' 작곡]

《방랑자의 환상곡》, 《로자문데》 등을 발표하고, 뮐러의 시에 감동하여 전 20곡으로 구성된 가곡집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처녀》를 작곡하며 다시 한번 가곡의 깊이를 보여주었다.

1824

[에스테르하지 가 교사 재직]

다시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음악 교사로 일하며 전원 생활을 즐겼고, 이 시기에 아름다운 선율의 《현악 4중주곡》을 작곡했다.

1825

['아베 마리아' 작곡]

성악가 포글과 함께 서부 오스트리아로 다시 여행하며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가곡 《아베 마리아》를 작곡했다.

1827

['겨울 여행' 작곡]

30세가 되던 해, 자신의 인생이 겨울을 맞았음을 암시하는 듯한 음울한 가곡집 《겨울 여행》을 작곡했다.

이는 빌헬름 뮐러의 시에 붙여진 24곡으로 된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이다.

[존경하던 베토벤과의 만남]

평소 존경하던 음악의 거장 베토벤을 그의 집으로 찾아가 만났다.

불과 2km 떨어진 곳에 살면서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루어진 이 만남은 베토벤이 사망하기 일주일 전이었다.

소심한 성격 탓에 오랫동안 망설였던 슈베르트는 지인들의 권유로 용기를 내어 베토벤을 방문했지만, 베토벤의 합병증으로 인한 병든 모습과 청력 상실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후회와 자괴감에 휩싸여 방을 뛰쳐나갔다. 베토벤은 슈베르트에게 "자네는 분명 세상을 빛낼 수 있는 훌륭한 음악가가 될 것이네. 그러니 부디 용기를 잃지 말게…"라는 유언 같은 말을 남겼다.

[베토벤 장례식 참여]

베토벤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장례식에 참여하여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이는 슈베르트에게 큰 슬픔과 함께 음악적 동기 부여가 되었다.

1828

[자작 연주회 성공 및 '대교향곡' 완성]

자작 연주회를 열어 큰 성공을 거두며 절정에 달한 작곡 실력을 선보였다.

이 해에 그의 마지막 교향곡인 《대교향곡(교향곡 9번)》을 완성했다.

[마지막 가곡집 '백조의 노래' 완성]

그의 마지막 가곡집이 된 《백조의 노래》에 수록된 대부분의 곡들을 완성했다.

이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창작의 열정을 불태웠음을 보여준다.

[갑작스러운 병으로 투병 시작]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대위법을 다시 공부하던 중,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몸져눕게 되었다.

병세는 빠르게 악화되어 기억력 감퇴, 정신 이상 증세 등을 보였다.

[31세, 요절하다]

31세의 젊은 나이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요절했다.

평소 존경했던 베토벤의 유언대로 빈 중앙 묘지의 베토벤 무덤 옆에 나란히 묻혔다.

사망 원인은 매독의 악화로 추정된다.

1829

[유작 '백조의 노래' 출판]

슈베르트 사망 후, 빈의 출판업자 하즈링거가 그가 죽기 전 작곡된 14곡을 모아 《백조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이는 백조가 죽음 직전에 운다는 전설에 따라 붙여진 이름으로, 슈베르트의 유작 중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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