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카혼타스

역사 인물, 아메리카 원주민, 평화 중재자

num_of_likes 67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09:55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no image
역사 인물, 아메리카 원주민, 평화 중재자
report
Edit

• 16세기 말 태어난 포우하탄 추장의 딸이자 아메리카 원주민 여성. • 영국 이주민 존 스미스를 구했다는 일화로 유명하며 양측의 평화 유지에 기여. • 영국인에게 납치된 후 기독교로 개종 존 롤프와 결혼하여 평화의 상징이 됨. • 잉글랜드 사교계에서 문명화된 신세계의 상징으로 환대받았으나 21세에 요절. • 다수의 후손을 남겼으며 대중문화 속 로맨틱한 이미지로도 각인된 역사적 인물.

연관 연혁
  1. 등록된 연관연혁이 없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1596

[포우하탄 추장의 딸, 탄생]

지금의 버지니아주 지역을 지배하던 포우하탄 추장의 딸 마토아카가 태어났다.

어린 시절 자유분방한 성격 때문에 '작은 장난꾸러기'라는 뜻의 별명 '포카혼타스'로 불리게 된다.

그녀의 삶은 아메리카 원주민과 영국 정착민들 사이의 평화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본명은 마토아카(Matoaka 또는 Matoika)로, '작은 눈의 깃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훗날 그녀의 별명인 '포카혼타스'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다.

1607

[존 스미스 구출 사건]

영국 개척자들이 버지니아에 거류지를 세우기 시작했다.

당시 12~14세 정도였던 포카혼타스는 포우하탄 전사들에게 포로로 잡힌 존 스미스의 목숨을 구했다.

스미스의 기록에 따르면, 부족장이 곤봉으로 그의 머리를 내려치려 하자 그녀가 뛰어들어 그를 감쌌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포카혼타스는 존경을 받게 된다.

존 스미스의 목숨을 구한 사건은 그가 남긴 유일한 기록으로, 훗날 그 신빙성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스미스가 자신과 포카혼타스의 인연을 과장했거나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 만남을 계기로 그녀는 제임스타운 식민지에 자주 방문하여 굶주린 이주자들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했다.

1608

[두 번째 스미스 구출]

존 스미스와 이주자들이 포우하탄 추장의 초대를 받아 웨로워코모코에서 머물던 중이었다.

그날 밤 포카혼타스는 스미스에게 아버지가 사람을 시켜 그들을 죽일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경고하며, 미리 대비하여 목숨을 건지게 했다.

그녀는 영국인들이 떠나기를 바랐다.

포카혼타스의 경고 덕분에 영국인들은 음식을 먹는 동안에도 무기를 들고 있었고, 공격받지 않을 수 있었다. 이처럼 그녀는 위기 상황에서 여러 차례 영국인 이주자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1609

[존 스미스 영국 귀환]

화약 폭발 사고로 부상당한 존 스미스는 치료를 위해 영국으로 돌아갔다.

영국인들은 포카혼타스에게 스미스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고, 그녀는 수년 후 영국에 도착하기 전까지 이 사실을 믿고 있었다.

스미스의 부재는 포카혼타스와 영국인 이주민들 사이의 관계에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는 훗날 그녀의 납치 사건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1612

[코코움과 결혼]

윌리엄 스트레이치의 기록에 따르면, 포카혼타스는 포우하탄 전사 코코움과 결혼했다고 한다.

이 결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다.

이 기록 외에는 결혼에 대한 추가 정보가 거의 없어 그 존재 자체가 불분명하다. 다만, 스미스와 포카혼타스 사이에 연인 관계였다는 역사적 기록은 전혀 없으며, 이는 디즈니 영화 등에서 만들어진 허구적인 설정이다.

1613

[영국인에 의해 납치]

포우하탄과 무역을 하던 파타워멕 부족 마을에 머무르던 포카혼타스는 영국인 이주자들에 의해 납치되었다.

그들은 포카혼타스를 몸값으로 삼아 포우하탄 추장이 잡고 있는 영국인 죄수들과 훔친 무기, 도구들을 돌려받으려 했다.

포우하탄 추장은 죄수들을 송환했지만, 영국인들을 만족시킬 만큼의 무기와 도구를 돌려주지 않아 교착 관계는 계속되었다. 납치된 포카혼타스는 버지니아주 헨리쿠스에 억류되었고, 이곳에서 기독교로 개종하고 '레베카'라는 세례명을 받게 된다.

1614

[영국인 잔류 선택]

포카혼타스의 납치로 인한 교착 관계로 영국인과 포우하탄인 사이에 폭력적인 충돌이 발생했다.

포우하탄 마을에서 영국인들은 포카혼타스가 부족 사람들과 대화하도록 허락했으나, 그녀는 부재 중인 아버지를 비난하며 영국인들과 살 것이라고 선언했다.

포카혼타스는 돌아갈 기회가 있었음에도 영국인들 곁에 남는 것을 택했다. 이는 그녀가 기독교로 개종하고 새로운 생활에 적응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존 롤프와 결혼]

헨리쿠스에 억류되어 있던 포카혼타스는 담배 농장주 존 롤프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신앙심 깊었던 롤프는 이교도와의 결혼에 대한 윤리적 고민 끝에 주지사에게 청원했고, 결국 결혼이 성사되었다.

그녀는 이 결혼으로 '레베카 부인'이 되었다.

포카혼타스의 이 결혼은 제임스타운 이주자들과 포우하탄 부족 사이에 수년간 평화로운 관계를 조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는 단순한 개인사를 넘어, 양측 간의 화해와 공존의 상징이 되었다.

1615

[아들 토머스 롤프 출산]

존 롤프와의 결혼 후, 포카혼타스는 이듬해 아들 토머스 롤프를 출산했다.

이 가족의 탄생은 영국인과 아메리카 원주민의 결합을 상징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토머스 롤프는 훗날 영국에서 자라 버지니아로 이주했으며, 수천 명의 미국 백인들이 포카혼타스의 혈통을 물려받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에는 역대 영부인과 유명인사들이 포함된다.

1616

[잉글랜드 공식 방문]

롤프 가족은 런던 버지니아 회사의 전략적 홍보 차원에서 잉글랜드로 건너갔다.

회사는 포카혼타스를 기독교로 개종한 '문명화된 미개인'의 사례로 대중에 소개하며 제임스타운 정착촌 투자를 유도하려 했다.

플리머스 항에 도착한 롤프 부부는 주술사 토모코모를 포함한 11명의 포우하탄 사람들을 동반했다. 포카혼타스는 '가장 강력한 왕자의 딸'로 소개되며 잉글랜드 사교계에서 크게 환대받았고, 화이트홀 궁전의 가면무도회에도 참석할 정도로 유명 인사가 되었다.

1617

[제임스 왕과 조우]

잉글랜드 사교계에서 유명세를 떨치던 포카혼타스는 화이트홀 궁전의 연회장에서 제임스 왕과 왕비를 만나는 영광을 누렸다.

하지만 스미스의 기록에 따르면, 왕이 너무 무뚝뚝하여 나중에 설명해주기 전까지는 누구를 만났는지 깨닫지 못했다고 한다.

이 만남은 그녀의 높은 위상과 잉글랜드 사회 내에서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비록 왕족은 아니었지만, 버지니아 회사는 그녀를 '공주'로 소개하며 신세계 정착의 성공적인 상징으로 활용했다.

[21세의 나이로 사망]

버지니아로 귀향하던 중 템스강의 그레이브젠드에 도달했을 때, 포카혼타스는 원인미상의 병으로 롤프의 품속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녀의 나이 불과 21세였다.

천연두, 폐렴, 결핵 등이 사망 원인으로 추정되나, 일각에서는 독살설도 제기되었다.

그레이브젠드의 세인트 조지 교구에 매장되었으나, 1727년 교회 화재로 인해 정확한 매장지는 알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낭만적 상상을 자극하며 예술, 문학, 영화 등 다양한 형태로 후대에 기억되고 있다.

1622

1622.03.22 사후 5년

[제임스타운 학살 발생]

포카혼타스 사망 이듬해, 그녀의 아버지인 추장 와훈세나카우가 사망하고 삼촌 오페차나카노가 추장이 되었다.

영국 이민자 증가로 백인들이 인디언 땅을 침범하며 갈등이 커지자, 오페차나카노는 제임스타운을 기습하여 347명을 살해하고 마을을 파괴했다.

이는 포카혼타스의 결혼으로 유지되던 평화가 깨지고, '제1차 앵글로-포우하탄 전쟁' 이후 다시금 대규모 충돌이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이어진 영국인의 보복과 평화회담에서의 독살 사건 등 양측의 갈등은 격화되었고, 결국 1644년 '제2차 앵글로-포우하탄 전쟁'으로 포우하탄 족은 세력을 잃게 된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댓글 게시판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