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제국

고대 제국, 역사적 국가, 중동 문명

num_of_likes 56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09:40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no image
고대 제국, 역사적 국가, 중동 문명
report
Edit

페르시아 제국은 현재 이란 지역을 기반으로 기원전 6세기부터 20세기까지 이어져 온 여러 제국들을 아우르는 명칭입니다. 아케메네스 왕조는 인류 최초의 인권 선언이라 불리는 키루스 원통을 발표하며 광대한 영토를 통일했고 이후 사산 왕조는 로마와 어깨를 나란히 했습니다. 사파비 왕조는 시아파 이슬람의 거점이 되었으며 카자르와 팔레비 왕조는 근대화와 함께 격동의 역사를 겪으며 오늘날 이란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세계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장대한 문명의 연속입니다.

연관 연혁
  1. 등록된 연관연혁이 없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BC 8C

[메디아 왕조 시작]

페르시아 제국의 전신인 메디아 왕조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날 이란 영토에 근거한 제국들의 시초 중 하나인 메디아 왕조가 기원전 728년에 시작되어 페르시아 지역 역사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BC 6C

[아케메네스 왕조 창시 및 메디아 멸망]

키루스 대왕이 메디아를 정복하고 아케메네스 왕조를 세워 페르시아 제국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기원전 550년, 키루스 대왕은 메디아를 정복하고 아케메네스 왕조를 창시하며 페르시아 제국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로써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 중 하나로 성장할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키루스, 바빌로니아 정복 및 키루스 원통 발표]

키루스 대왕이 바빌로니아를 정복하고 인류 최초의 인권선언문으로 평가받는 '키루스 원통'을 발표했습니다.

기원전 539년, 키루스 대왕은 바빌로니아 제국을 정복하며 당시 최고 강국으로 부상했습니다. 정복 후 그는 '키루스 원통'을 발표했는데, 이는 모든 시민에게 종교의 자유와 노예제 금지, 급여 지급 등을 명시한 인류 최초의 인권선언문으로 평가받습니다. 이 원통은 1879년에 발견되었습니다.

[캄비세스 2세, 이집트 병합]

캄비세스 2세가 이집트를 병합하여 아케메네스 제국의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키루스 대왕의 아들인 캄비세스 2세는 기원전 525년 이집트를 성공적으로 병합하며 아케메네스 제국의 영토를 더욱 넓혔습니다. 이로써 제국은 아프리카 북동부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게 되었습니다.

[다리우스 1세 시기 영토 최고 확장]

다리우스 1세 시기에 아케메네스 제국은 인더스강에서 유럽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확보하여 최고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다리우스 1세의 통치 기간 동안 아케메네스 제국은 인더스강에서부터 유럽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확보하며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자랑했습니다. 이는 중국을 제외한 당시 알려진 대부분의 문명 세계를 통일한 것에 해당합니다.

BC 5C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발발 (마라톤 전투)]

다리우스 1세 시기 아케메네스 제국과 그리스 간에 마라톤 전투를 시작으로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다리우스 1세와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 시기에 아케메네스 제국은 그리스와 대규모 전쟁을 벌였습니다. 기원전 490년 마라톤 전투를 시작으로 테르모필라이 전투, 살라미스 해전 등 유명한 전투들이 이 전쟁 중에 벌어졌습니다.

BC 4C

[아케메네스 왕조 멸망 및 알렉산드로스 점령 시대 시작]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다리우스 3세가 패배하며 아케메네스 왕조가 멸망했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아케메네스 제국을 점령하고 페르시아의 계승자를 자처했습니다.

기원전 330년,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다리우스 3세를 무찌르면서 아케메네스 왕조는 멸망하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점령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자신을 페르시아의 계승자로 칭하며 다리우스 3세에게 장엄한 장례식을 치러주고 그의 딸 스타데이라와 결혼하는 등 페르시아 전통을 존중했습니다. 이 시기는 기원전 330년부터 기원전 250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BC 3C

[알렉산드로스 점령 시대 종료]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점령 시대가 끝나고 이란 지역은 새로운 세력의 부상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기원전 250년을 기점으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점령 시대가 종료되었습니다. 이 시기 이후 이란 지역은 여러 헬레니즘 왕국과 토착 세력의 영향을 받으며 다음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겪게 됩니다.

226

[사산 왕조 건국]

사산 왕조가 건국되어 로마 제국과 대등한 세력으로 중동 지역의 패권을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서기 226년 사산 왕조가 건국되며 고대 페르시아의 영광을 재건했습니다. 이들은 로마 제국과 팽팽한 힘의 균형을 이루며 수세기 동안 영토 전쟁을 지속했고,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와 문화적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651

[사산 왕조 멸망 (이슬람 제국의 정복)]

이슬람 제국의 침략으로 사산 왕조의 마지막 왕 야즈데게르드 3세가 사망하며 왕조가 멸망했습니다.

서기 651년, 사산 왕조는 로마 제국과의 소모전으로 국력이 약해진 상황에서 새롭게 부상한 이슬람 제국의 침략을 받아 멸망했습니다. 마지막 왕 야즈데게르드 3세가 사망하며 이란은 이슬람 제국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1501

[사파비 왕조 건국 및 시아파 국교화]

사파비 왕조가 건국되고 시아파 이슬람교를 국교로 받아들여 오늘날 이란의 종교적 정체성을 확립했습니다.

1501년 사파비 왕조가 건국되며 이란 지역은 다시 한번 강력한 제국의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사파비 왕조는 시아파 이슬람교를 국교로 채택하여 가장 큰 시아파 국가가 되었으며, 이는 오늘날 이란의 시아파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1722

[사파비 왕조 멸망 및 호타키 길자이 왕조 시작]

사파비 왕조가 멸망하며 이란 지역은 호타키 길자이 왕조 등 분열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1722년, 사파비 왕조가 멸망하면서 이란은 잠시 동안 분열의 시기를 겪게 됩니다. 이 시기에 호타키 길자이 왕조가 1729년까지 짧은 기간 동안 존속했으며, 이후 아프샤르 왕조와 잔드 왕조 등으로 이어집니다.

1736

[아프샤르 왕조 건국 (나디르 샤)]

나디르 샤가 아프샤르 왕조를 창건하여 혼란기의 이란을 통합했습니다.

1736년, 투르크계 아프샤르 족의 나디르 샤가 아프샤르 왕조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분열된 이란을 다시 통합하며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국위를 선양했으나, 그의 사후 다시 혼란이 찾아왔습니다.

1750

[잔드 왕조 건국 (카림 칸)]

카림 칸이 잔드 왕조를 세우고 선정을 베풀었으나, 그의 사후 왕위 쟁탈전이 격화되었습니다.

아프샤르 왕조의 나디르 샤 암살 후, 1750년 잔드 부족의 카림 칸이 잔드 왕조를 창건하여 이란 전토를 통일하고 선정을 베풀었습니다. 그는 수도 미화에도 힘썼으나, 1779년 그의 사후 동족 내 왕위 쟁탈전이 격화되었습니다.

1781

[카자르 왕조 건국]

아가 모하마드가 카자르 왕조를 창건하고 테헤란에 수도를 두었습니다.

1781년, 투르크계 카자르 족의 아가 모하마드가 잔드 왕조의 혼란기를 틈타 독립하여 카자르 왕조를 창건했습니다. 그는 테헤란을 수도로 정하고 왕조 초기에 러시아의 침입을 격퇴하는 등 국위를 선양했습니다.

1794

[잔드 왕조 멸망]

잔드 왕조가 카자르 왕조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1794년, 내부의 왕위 쟁탈전으로 약해진 잔드 왕조는 카자르 왕조의 공격을 받아 멸망했습니다. 이로써 카자르 왕조가 이란의 새로운 지배 세력으로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1796

[아프샤르 왕조 멸망]

아프샤르 왕조가 카자르 왕조의 공격을 받아 멸망했습니다.

1796년, 아프샤르 왕조는 카자르 왕조의 공격으로 멸망하며 4대 만에 그 역사를 끝맺었습니다. 이로써 이란은 카자르 왕조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1828

[투르크만차이 조약 체결]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카자르 왕조가 투르크만차이 조약을 통해 치외법권을 인정하며 열강의 이권 침탈이 시작되었습니다.

1828년, 카자르 왕조는 러시아와의 두 번째 전쟁에서 패배하여 투르크만차이 조약을 체결하고 러시아에 치외법권을 인정해주었습니다. 이 조약은 이후 다른 열강들에게도 적용되어 이란의 식민지화가 가속화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1906

[카자르 왕조 입헌군주제 채택]

열강의 침탈에 맞서 바브교 등의 민족 해방 운동이 일어나 카자르 왕조에서 입헌군주제가 채택되었습니다.

열강의 식민주의 팽창에 대항하여 바브교나 아프가니에 의한 민족 해방 운동이 활발히 일어나자, 카자르 왕조는 1906년 입헌군주제를 채택하며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하려 노력했습니다.

1912

[영국·러시아의 이란 분할 협정 승인]

카자르 왕조가 영국과 러시아의 이란 분할 협정을 승인하며 이란은 반식민지 상태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영국과 러시아의 식민주의 팽창이 계속되면서 카자르 왕조는 1912년 두 강대국의 이란 분할 협정을 정식으로 승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이란은 사실상 반식민지 상태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1925

[카자르 왕조 멸망 및 팔레비 왕조 건국]

제1차 세계 대전 후 혼란을 수습하지 못한 카자르 왕조가 국민 의회에 의해 폐위되고 팔레비 왕조가 건국되었습니다.

1925년, 제1차 세계 대전 후의 혼란을 수습할 능력이 없었던 카자르 왕조는 국민 의회에 의해 폐위되었습니다. 이로써 카자르 왕조는 멸망하고 팔레비 왕조가 건국되어 이란의 이권을 회수하고 근대화 운동을 펼쳤습니다.

1979

[팔레비 왕조 멸망 및 이란-이슬람 혁명 발생]

팔레비 왕조의 사치와 친서방 정책에 반대한 이슬람 보수파가 호메이니를 중심으로 이슬람 혁명을 일으켜 왕조를 멸망시켰습니다.

1979년, 팔레비 왕조의 지나친 사치와 친서방적인 진보 정책에 반대한 이슬람계 보수파가 호메이니를 중심으로 이란-이슬람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이 혁명으로 팔레비 왕조는 멸망하고 이란은 신정체가 확립되었습니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댓글 게시판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