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크 록

록 음악 장르, 문화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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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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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음악 장르, 문화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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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중반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시작된 록 음악의 하위 장르이자 대중문화 운동입니다. 단순하고 짧은 곡 구조에 사회 비판적이고 반항적인 가사를 담아 기존 음악에 저항했습니다. 섹스 피스톨스 라몬스 등이 대표적이며 모히칸 헤어스타일과 징 박힌 패션 등 독특한 스타일을 창조했습니다. 1990년대에는 팝 펑크로 상업적 성공을 거두며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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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

[펑크 록 용어 최초 사용]

1971년 5월, 록 비평가 데이브 마시가 잡지 '크림'에서 밴드의 음악을 묘사하며 '펑크 록'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습니다.

이 용어는 이후 1970년대 초 록 음악 저널리스트들 사이에서 널리 퍼졌으며, 1972년에는 기타리스트 레니 케이가 60년대 개러지 록 그룹을 설명할 때도 사용하며 음악계에 스며들었습니다.

1975

[패티 스미스 'Horses' 발매]

1975년, 아방가르드 시인 패티 스미스가 레니 케이와 함께 결성한 밴드를 통해 앨범 'Horses'를 발매했습니다.

이 앨범은 1970년대 중반 수많은 펑크 록커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며 초기 펑크 록 사운드와 정신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펑크라는 용어가 음악으로 자리 잡는 데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뉴욕 펑크 음악 태동]

1975년 뉴욕 시에서 '펑크'라는 이름이 붙은 음악이 처음 등장했습니다.

맥스 캔자스 시티와 CBGB 같은 클럽에서 라몬스, 텔레비전, 블론디, 토킹 헤즈 등 밴드들이 활발히 활동하며 뉴욕 펑크 씬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이들은 단순하고 거친 사운드로 기존 록 음악에 반기를 들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섹스 피스톨스 결성]

1975년, 뉴욕 펑크 씬에 영감을 받은 말콤 맥라렌이 런던에서 자신의 옷가게 'SEX' 단골들을 모아 '섹스 피스톨스'를 결성했습니다.

이 밴드는 곧 브롬리 패거리 같은 열정적인 추종자들을 끌어모으며 런던 펑크 문화의 상징으로 급부상했습니다.

기존 질서에 대한 강렬한 반항 정신으로 영국 펑크 록의 핵심을 이루었습니다.

1976

[최초의 펑크 잡지 창간]

1976년 초, 펑크 록의 역사를 기록하고 확산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최초의 펑크 잡지가 창간되었습니다.

이 잡지는 루 리드와 패티 스미스 같은 선구적인 아티스트들을 새로운 그룹의 본보기로 제시하며, 막 태동하던 펑크 록 씬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펑크 문화를 대중에게 알리는 데 기여했습니다.

[라몬스 런던 공연, 영국 펑크 촉발]

1976년 7월 4일, 런던의 원형 극장에서 열린 라몬스의 역사적인 공연은 영국 펑크 록의 불씨를 지폈습니다.

이 공연은 섹스 피스톨스 멤버들을 비롯한 수많은 영국 젊은이들에게 엄청난 영감을 주었고, 이후 더 클래시, 수지 앤 더 밴시스 등 밴드 결성으로 이어지며 영국 펑크 씬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나키 투어 및 미디어 논란]

1976년 11월, 섹스 피스톨스, 클래시, 댐드 등이 참여한 '아나키 투어'가 영국 전역을 돌았습니다.

그러나 밴드와 팬들의 파격적인 행태가 타블로이드 신문에 선정적으로 보도되며 많은 공연이 취소되는 등 큰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특히 섹스 피스톨스의 스티브 존스가 생방송 TV에서 욕설을 퍼부어 밴드의 악명을 떨치며 펑크 록의 반항적 이미지를 각인시켰습니다.

[영국 펑크 밴드 대거 결성]

1976년 말, 라몬스 공연과 섹스 피스톨스의 영향으로 수많은 팬들이 직접 밴드를 결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클래시, 수지 앤 더 밴시스, 어드버츠, 제너레이션 X 등 펑크 록 역사에 길이 남을 밴드들이 이때 탄생하며 영국 펑크 씬은 전례 없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펑크 문화의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977

[제2의 펑크 조류 시작]

1977년, 1세대 펑크 밴드들의 영향 아래 제2의 펑크 조류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미스피츠, 블랙 플래그, 크래스 등 새로운 밴드들이 등장하여 펑크 록의 사운드와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들은 기존 펑크의 에너지를 계승하면서도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하며 펑크 록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978

[펑크 록의 다양화와 진화]

1978년경, 펑크 록은 더욱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습니다.

미국에서는 미스피츠, 블랙 플래그가, 영국에서는 와이어, 크래스 등이 새로운 펑크 조류를 이끌었습니다.

이들은 기존 펑크의 공격성을 유지하면서도 복잡한 연주와 다양한 사운드 요소를 도입했으며, 하드코어 펑크 같은 하위 장르를 발전시켰습니다.

또한 클래시, 폴리스 등은 레게, 스카 음악과 결합하며 '투 톤 스카' 부흥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1990

[팝 펑크의 세계적 상업 성공]

1990년대, 오프스프링, 그린 데이, 섬41 등 이른바 '네오 펑크' 또는 '팝 펑크' 밴드들이 대거 등장했습니다.

이들은 MTV와 같은 미디어를 통해 대중적,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며 펑크 록을 전 세계적인 인기 장르로 만들었습니다.

5도 코드 기반의 발랄하고 경쾌한 곡들이 큰 인기를 끌었으며, 이는 펑크 록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지만 '셀 아웃'이라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1995

[한국 펑크 록 인디 씬 태동]

1995년, 홍대의 첫 라이브 클럽 '드럭'에서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 추모 1주년 공연이 열리면서 한국 인디 음악 씬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펑크 문화도 함께 성장했습니다.

이 시기에 크라잉넛, 노브레인 등 한국 펑크 밴드의 선구자들이 등장하며 한국 펑크 록의 역사를 열었습니다.

이는 국내 음악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8

[스컹크 레이블, 한국 인디 펑크 개화]

1998년, 홍대 클럽 '하드코어 펑크'에서 시작된 '스컹크 레이블'의 등장은 한국 인디 펑크 문화를 활짝 꽃피웠습니다.

럭스, 지랄탄99, 닥터코어 911 등 다양한 밴드들이 출현하며 소규모 공연을 통해 활발히 활동했고, 이는 한국 펑크 씬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확립하고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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