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만

소설가, 평론가, 수필가, 단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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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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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 토마스 만. 깊이 있는 사상과 탁월한 문체로 <부덴브로크가> <마의 산> 등 시대를 초월한 명작들을 남겼다. 1929년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나치 독재에 용감히 맞서 싸우며 민주주의와 휴머니즘의 가치를 옹호한 지식인이었다. 그의 작품들은 오늘날에도 수많은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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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사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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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

[토마스 만 출생]

독일 뤼베크에서 평의원이자 곡물 상인인 토마스 요한 하인리히 만과 부분적 독일계 브라질인 율리아 다 실바 브룬스 부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891

[아버지 사망 및 가업 청산]

아버지가 사망하며 가업이었던 회사가 청산되었다.

이는 그의 삶과 문학적 여정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1893

[뮌헨 이주 및 문단 데뷔]

뮌헨으로 이주하여 보험 회사의 견습 사원으로 일하며 첫 작품 <호의>가 잡지에 실리면서 문단에 정식으로 데뷔했다.

1898

[첫 소설 <꼬마 프리데만 씨>]

그의 첫 소설인 <꼬마 프리데만 씨>를 출판하며 작가로서의 기반을 다지기 시작했다.

1901

[<부덴브로크가> 발표]

부유한 상인 가문이 4대에 걸쳐 몰락하는 과정을 그린 장편소설 <부덴브로크가>를 발표하여 독일 문단에서의 확고한 자리를 굳혔다.

이 작품은 그에게 큰 명성을 안겨주었다.

1905

[카티아 프링스하임과 결혼]

카티아 프링스하임과 결혼하여 6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의 자녀 중 에리카, 클라우스, 고로는 훗날 독일의 중요한 작가로 성장한다.

1914

[1차 세계대전과 정치 논설]

제1차 세계 대전 발발과 함께 <프리드리히와 대동맹> 등 정치적 논설을 발표하며, 구낭만주의적 반 지성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휴머니즘 사상을 품기 시작했다.

1924

[<마의 산> 발표]

12년간의 집필 노력 끝에 장편소설 <마의 산>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독일 문학사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발전 소설로 평가받는다.

1929

[노벨 문학상 수상]

문학적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했다.

이는 그의 생애 가장 영예로운 순간으로 기록된다.

1930

[나치 비난 연설]

베를린에서 '이성에 호소하는 연설(An Appeal to Reason)'을 통해 나치 중심 사회주의를 강력히 비난하고 반대 운동을 독려했다.

이는 나치 정권에 대한 그의 분명한 반대 입장을 천명한 중요한 사건이다.

[<요셉과 그의 형제들> 집필 시작]

리투아니아 니덴(Nida)의 오두막에서 대작 <요셉과 그의 형제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이 오두막은 현재 토마스 만 문화 중심으로 보존되어 있다.

1933

[나치 피해 망명]

나치스 정권 성립으로 조국 독일을 떠나 남프랑스와 스위스를 거쳐 망명길에 올랐다.

아들의 권유로 독일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나치즘 비판 편지 작성]

개인적인 편지에서 나치즘에 대한 강력한 비판적 견해를 표명했다.

이 견해는 후에 그의 소설 <파우스투스 박사>에도 반영된다.

1936

[독일 시민권 박탈]

나치 정권에 의해 공식적으로 독일 시민권을 박탈당했다.

이는 그의 반나치 활동에 대한 정권의 보복이었다.

1938

[미국 망명 및 교수 활동]

미국으로 이주하여 프린스턴 대학에서 강연하며 교수 활동을 시작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높은 휴머니즘의 입장에서 민주주의 옹호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1942

[캘리포니아 이주]

가족들과 함께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의 팔리세이즈(Pacific Palisades)로 이사하여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1944

[미국 시민권 취득]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며 새로운 조국을 얻었다.

그는 전쟁 동안 반나치 라디오 연설 시리즈 '독일 청취자들에게(Deutsche Hörer!)'를 만들어 BBC를 통해 독일에 방송했다.

1949

[괴테 200주년 기념 독일 방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독일을 방문했다.

이는 그가 망명 이후 가장 유명했던 독일 방문 중 하나이다.

1952

[스위스 재정착]

스위스 취리히 근처의 킬히베르크(Kilchberg)로 이사하여 여생을 보냈다.

그는 이후에도 독일을 규칙적으로 여행했지만, 다시는 그곳에서 살지 않았다.

1955

[토마스 만 별세]

취리히의 한 병원에서 아테롬선 동맥 경화증으로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스위스 킬히베르크에 안장되었으며, 많은 협회들이 그의 이름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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