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예프 루스

국가,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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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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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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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에 존재했던 루스인들의 강력한 국가. - 초대 대공 올레크 베시가 키이우를 수도로 삼아 건설했으며 이후 동슬라브족 영토를 정복하며 세력을 확장했다. - 정교회를 국교로 선언하고 동로마 제국의 선진 문물을 수용하여 전성기를 맞았다. - 볼가강 무역로 장악으로 번성했으나 십자군 전쟁과 몽골 침략으로 멸망하며 현재의 우크라이나 러시아 벨라루스 역사의 기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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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키예프 루스 분열 심화]

블라디미르 모노마흐 사후 키예프 루스는 다시 쇠퇴하기 시작하여, 류리크 왕조 출신의 제후들이 다스리는 여러 공국으로 분열되어 사실상 이름만 남은 상태가 되었다.

862

[류리크, 노브고로드 건설]

루스인들의 수장 류리크가 노브고로드에 정착하며 루스 카간국의 전신인 노브고로드 공국을 건설했다.

이는 키예프 루스 형성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882

[올레크 베시, 키이우 천도]

류리크의 후계자 올레크 베시가 드니프르강 유역의 전략적 중요성을 깨닫고 노브고로드에서 키이우로 수도를 옮겼다.

이로써 키예프 루스가 본격적으로 형성되었으며, 올레크는 동슬라브족 영토를 정복하며 세력을 확장했다.

907

[동로마 제국 통상 조약]

키예프 루스의 올레크 베시 대공이 동로마 제국 원정을 성공적으로 이끈 후, 제국과의 중요한 통상 조약을 체결하며 경제적 기반을 강화했다.

912

[이고리 류리코비치 즉위]

강력한 통치자였던 올레크 베시가 사망하고, 류리크의 아들이자 올가의 남편인 이고리 류리코비치가 키예프 대공으로 즉위했다.

945

[이고리 사망, 올가 섭정]

동로마 제국과의 평화 조약 체결 후 돌아오던 이고리 류리코비치가 과도한 세금 정책에 반감을 품은 드레블랴네인에게 살해당했다.

어린 아들 스뱌토슬라프 1세 대신 그의 아내 올가가 섭정 통치를 시작했다.

올가는 남편을 살해한 드레블랴네인들을 응징하며 강력한 통치력을 보였다.

957

[올가, 최초 정교회 개종]

키예프의 올가 섭정 여대공이 정교회로 개종했다.

이는 루스 지역에서 최초로 정교회 신자가 된 중요한 사건으로, 후대에 루스의 기독교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965

[스뱌토슬라프 군사 원정]

성년이 된 스뱌토슬라프 1세가 본격적인 군사 원정을 시작, 볼가강 유역의 볼가 불가르를 복속시켜 무역로를 장악하고, 강력했던 하자르 카간국을 공격하여 세력을 크게 약화시켰다.

발칸반도의 불가리아 제1제국도 공격하는 등 키예프 루스의 세력을 광범위하게 확장했다.

972

[스뱌토슬라프 사망]

불가리아 원정 도중 스뱌토슬라프 1세가 사망하고, 그의 뒤를 이어 야로폴크 1세가 키예프 대공으로 즉위했다.

980

[블라디미르 1세 집권]

야로폴크 1세의 동생인 블라디미르 1세가 반란을 일으켜 형을 살해하고 키예프 루스의 정권을 장악했다.

989

[정교회 국교 선언]

블라디미르 1세가 동로마 제국 황제의 여동생 안나와 결혼한 후, 안나의 영향으로 정교회로 개종하고 정교회를 키예프 루스의 국교로 선언했다.

이는 동로마 제국의 선진 문물을 대대적으로 수용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루스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블라디미르 1세는 국경 지역의 여러 부족을 정벌하며 국경을 안정시키고, 바실리오스 2세에게 바랑기아인 용병 6천 명을 보내주는 등 동로마 제국과의 관계를 강화했다. 또한 손녀들을 서유럽 왕들에게 시집보내며 국제적 관계를 넓혔다.

1018

[야로슬라프 1세 최전성기]

블라디미르 1세 사후, 가톨릭을 믿고 형제들을 살해하여 민심을 잃었던 스뱌토폴크 1세가 야로슬라프 1세의 반란으로 살해되었다.

키예프 대공이 된 야로슬라프 1세는 키예프 루스의 최전성기를 이끌며 국력을 향상시키고, 동슬라브족 최초의 성문법전인 《루스카야 프라우다》를 편찬했다.

키이우에 대규모 정교회 성당인 스뱌토고소피아 대성당을 건립하는 등 건축 분야에서도 큰 업적을 남겼다.

1054

[야로슬라프 사망, 쇠퇴 시작]

키예프 루스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야로슬라프 1세가 사망하면서 키예프 루스는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류리크 왕조의 분할상속제와 볼가강 무역의 쇠퇴가 겹치며 여러 군소 공국으로 분열되기 시작했다.

1095

[쿠만족 침략, 키예프 약탈]

흑해의 유목 민족인 쿠만족의 침략으로 키예프 루스의 수도인 키예프가 약탈당하는 치욕을 겪었다.

이는 쇠퇴기에 접어든 국가의 약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113

[모노마흐의 일시적 중흥]

블라디미르 모노마흐가 키예프 대공으로 즉위하여 블라디미르 등의 신도시를 건설하고 내치를 안정시켰다.

또한 키예프 루스를 위협하던 쿠만인을 정벌하는 등 군사 활동에도 힘써 잠시나마 중흥기를 이끌었다.

1237

[킵차크 칸국 침공 시작]

분열된 키예프 루스에 킵차크 칸국(몽골 제국)의 대규모 침공이 시작되었다.

노브고로드를 제외한 대부분의 루스 공국들이 점령당하며 멸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1240

[키이우 함락과 멸망]

킵차크 칸국의 침공 끝에 수도 키이우가 함락되면서, 882년부터 동유럽을 호령했던 키예프 루스는 멸망의 역사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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