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미사일 위기
국제 위기, 냉전, 핵 위기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3:06:34
1962년 10월 미국과 소련 간의 핵무기 배치 대립으로 전 세계를 핵전쟁 위협에 몰아넣었던 냉전의 정점. 쿠바 내 소련 미사일 기지 건설로 촉발된 위기는 미국-터키 미사일 철수 및 쿠바 불침공 합의로 외교적 해결. 이후 미소 직통 전화선 개통 등 대화 채널의 중요성을 각인시킨 역사적인 사건.
1961
[미소 미사일 배치 경쟁 심화]
1961년, 미국은 이탈리아와 터키에 중거리 탄도 미사일을 배치하고, 쿠바 침공을 시도하며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켰다.
이에 소련은 뒤쳐진 핵 전력을 만회하고 쿠바의 신생 공산 정권을 보호하며, 서방 세계와의 협상 카드로 활용하기 위해 쿠바에 장거리 미사일 기지 설치를 비밀리에 추진했다.
이는 세계 최대의 핵 위기를 예고하는 배경이 되었다.
1962
[위기 이후 외교 채널 개설]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미·소 양국은 유사시 신속한 소통을 위해 세계 최초로 직통 전화선(핫라인)을 개통했다.
이는 전 세계적인 핵전쟁 재발을 막기 위한 중요한 조치였다.
또한, 피그스만 침공에서 붙잡혔던 쿠바 출신 망명자들은 미국이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나며, 위기의 여파가 마무리되었다.
세계 최초의 핫라인은 극한 대립 속에서도 대화의 창구를 남겨두는 선례를 남겼다.
[미국, 선전포고 경고]
미사일 기지 발견 후, 미국 정부는 소련의 미사일 기지 건설을 무력시위로 규정하며 완공 시 선전포고로 간주하고 제3차 세계대전도 불사하겠다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케네디 대통령의 과격한 발언에 전 세계는 핵전쟁의 불안감에 떨었고, 학교와 가정에서 대피훈련과 방공호 건설이 실시되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인류 역사상 가장 핵전쟁에 가까웠던 시기였다.
[U-2, 쿠바 미사일 기지 발견]
미국의 첩보기 록히드 U-2가 쿠바에서 건설 중이던 소련의 SS-4 준중거리 탄도 미사일 기지의 사진을 촬영하며, 건설 현장으로 부품을 운반하던 선박의 모습도 포착했다.
이 결정적인 사진은 미국에게 소련의 비밀 계획을 밝히는 충격적인 증거가 되었고, 전 세계를 핵전쟁의 위기로 몰아넣을 쿠바 미사일 위기의 직접적인 시작을 알렸다.
[핵전쟁 위기 극적 타결]
미국과 소련 간의 필사적인 외교적 노력 끝에 소련은 쿠바 미사일 기지 건설을 중지하기로 합의했다.
그 대가로 미국은 터키에 배치된 주피터 중거리 탄도 미사일 기지를 은밀히 철수하고, 앞으로 쿠바를 침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로써 전 세계는 전면 핵전쟁의 위기에서 극적으로 벗어날 수 있었고, 냉전 시대 인류 생존의 갈림길에서 외교의 중요성을 각인시켰다.